"AI 예방에 닭 5만여마리 살처분..수억 빚더미 처지" 양계농들의 한숨 [청와대 앞 사람들]

이윤식 2021. 4. 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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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 사람들]
양계농 한진열 씨와 금영수 씨
"정부 AI 예방적 살처분에 협조..보상금 턱없이 낮아"
닭값 1.5~2배로 올랐지만 보상금은 AI 이전 수준 그쳐
보상금 위해 증빙 요구.."인건비 등 현실적으로 어려워"
경북 경주에서 양계업을 하는 한진열 씨(67)가 지난 14일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살처분 보상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대한양계협회 릴레이 1인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이윤식 기자]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으로 키우던 닭 5만2000마리를 묻었어요. 그 사이 알에서 나온 지 10주 되는 중추(생후 75일 즈음 중병아리) 가격이 3500원에서 7500원으로 뛰었어요. 다시 예전 수준으로 양계장을 채우려면 몇 억원 빚을 내야 하는 셈이죠(한진열 씨)."

지난 14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양계농 한진열 씨(67)와 금영수 씨(69)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부터 유행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대한 정부의 방역 활동에 협조해 각자 키우고 있던 5만2000마리, 6만마리의 닭을 예방적 살처분 했다고 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10일까지 전국 가금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103건 검출됐고 산란계, 육계, 종계, 육용오리, 관상조 등 총 2904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습니다.

방역대가 해제된 양계농들은 이제 다시 어린 닭을 사와 키워야하지만 정부 보상금으로는 이전 수준을 회복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AI가 유행하면서 닭값이 1.5~2배로 올랐지만 보상금은 그에 맞춰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대한양계협회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이어오고 있는 릴레이 1인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이날 새벽부터 각각 경북 경주와 포항에서 상경했습니다.

경북 포항에서 양계업을 하는 금영수 씨(69)가 지난 14일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살처분 보상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대한양계협회 릴레이 1인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이윤식 기자]
2003년부터 양계업을 하고 있다는 한씨는 "우리 지역은 정부 방역대에서 해제돼 재입식(닭은 다시 양계장에 들이는 것)을 해야 하는데, 아직 보상금이 정확히 얼마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표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2018년 개정된 '가축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이 농가에 불리하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이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예방적 살처분 조치에 대한 보상금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종전에는 알에서 나온 지 21주되는 산란계를 기준으로 생산비와 잔존가치를 정액으로 계산해 보상금을 산정했습니다. 하지만 개정 후에는 농가가 가축구입비, 사료비, 인건비, 연료비 등 생산비를 일일이 영수증으로 증빙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씨는 "닭, 사료, 소독약품 구입비 정도는 증빙할 수 있지만 기계 수리비처럼 증명이 어려운 것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양계업계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해 현실적으로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현금 주고 고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인건비 증빙이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AI로 인해 공급이 줄면서 중추 값이 크게 올랐지만 보상금에는 이 점이 제대로 반영 안됐다는 점도 양계농의 불만사항입니다. 양계협회에 따르면 병아리 값은 이번 AI 발생 직전인 지난해 10월 1200원선에서 현재는 1800원선으로 1.5배, 알에서 나온지 70일 되는 중추는 3500~3800원에서 7500~8000원으로 2배정도 값이 올랐습니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3월 살처분을 했다면 잔존가치를 따질 때 그 닭이 정상적으로 낳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계란 값을 2월 계란 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해야 하는데, AI 최초발생 직전인 작년 10월 기준으로 보상금이 산정되는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양계농이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소요 비용이 더 있습니다. 영계농이 보상금을 받아 어린 닭을 산다고 해도 그 닭들이 바로 달걀을 낳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닭은 알에서 나온지 147일이 돼야 알을 낳는 산란계가 되기 때문에 중추를 들여와도 77일은 달걀 생산 없이 키워야 합니다. 이 기간 드는 사료값과 인건비가 한씨의 경우 1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금영수 씨는 인근 농장에서 AI가 발생하는 바람에 지난 2월 4일 6만마리의 닭을 살처분했다고 합니다. 살처분 당시 연령이 54주였던 4만마리에 대해서는 마리당 5000원가량을 보상받을 것으로 보지만, 78주였던 2만마리에 대해서는 마리당 보상 금액이 120원가량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닭의 연령이 78주가 넘으면 노계로 분류돼 잔존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라네요. 금씨는 "닭 2만마리를 키울 수 있는 농장을 청소, 소독하는 데만 800만원은 드는데 보상비가 240만원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2014년 AI 발생 당시에는 예방적 살처분에 따른 보상금이 한마리당 21주 된 산란계를 기준 1만3587원가량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때는 실제 손해 금액보다 보상금을 더 많이 받긴 했다는 게 양계업계 관계자의 전언입니다. 현재의 보상금 규정이 과거에 비해 많이 투명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양계업계에서는 "실제 양계업을 예전 수준으로 회복할 정도의 보상금은 나와야 한다"며 규제 개정을 주장합니다.

한편, 국회에서는 현행 예방적 살처분 범위와 정도를 낮추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송옥주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오는 19일 서울 여의도 산림비전센터에서 국제회의장에서 토론회를 열고 합리적인 가축방역을 위한 살처분 정책 개선 방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그는 최근 예방적 살처분 제도를 명확히 하고 살처분 유예 요건을 구체화한 '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 139, 청와대 앞 분수대에는 매일 갖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찾습니다. 집회금지구역인 이곳에서 피켓을 하나씩 들고 청와대를 향해 '1인시위'를 합니다. 종종 노숙농성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요? 매주 토요일, 청와대 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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