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박물관에 간 소녀상, 또 시작된 일본의 철거 로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침묵 깨기' 상징
-"매우 유감"..주독 일본대사관 철거 요구
‘평화의 소녀상’이 박물관에 들어갔습니다.
독일 작센주의 주도 드레스덴 민속박물관 안뜰에 영어와 독일어로 된 비문과 함께 소녀상이 설치됐습니다. 드레스덴 민속박물관은 작센주가 운영하는 공공박물관인데, 유럽에서 공공박물관 안에 소녀상이 전시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소녀상은 침묵 깬 위안부 피해자 상징”
소녀상은 4월 15일부터 8월 1일까지 진행되는 ‘말을 잃다-큰 소리의 침묵’ 전시회의 일부로 설치됐습니다.
전시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유럽 국립박물관에서 이 주제를 다룬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와 함께 나치의 유대인 학살, 독일 제국의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의 민족 학살,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유고슬라비아의 전쟁범죄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의 참상,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에 말을 잃은 피해자들이 결국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 ‘진실’을 증언해 세상을 깨웠다는 게 전시의 주제입니다.
오랜 침묵을 깬 피해자, 그리고 그 증언의 상징물이 바로 ‘평화의 소녀상’인 겁니다.
관람객은 전시실에 들어서기 전 청동 소녀상을 한 번 보고 지나갈 겁니다. 하지만 전시실에 들어서면 피해자들의 고통과 희망을 따라가게 됩니다.
14살 때 일본군에게 위안부로 끌려갔던 필리핀 여성 리메디오스 펠리아스의 수예 작품을 먼저 마주칠 겁니다. 1942년 필리핀을 침공한 일본군에 끌려간 펠리아스가 겪은 고초를 옮겨 놨습니다.
이 작품 뒤론 동영상이 설치돼있습니다. 지난해 KBS가 발굴해 보도했던 ‘만삭의 위안부’ 영상이 계속 재생됩니다. 식민지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을 전시한 겁니다.
그런데 그 바로 옆 스크린에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최초 증언을 보도한 그 날의 KBS 9시 뉴스 리포트가 나옵니다. 전쟁이 끝나도 고통 속에 살았던 피해자들이 거의 반세기 만에 ‘침묵’을 깬 역사적 사건을 나타낸 겁니다.
피해자들에게 강요됐던 ‘침묵’이 깨짐으로 인해 세상에도 균열이 생깁니다. 세계 곳곳에서 피해 증언은 계속됐고, 전시 여성 피해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하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런 전시물을 둘러보고 난 뒤 다시 박물관 안뜰로 나와 소녀상을 보게 되면 입장 전과는 감정이 다를 겁니다.
단순한 조형물도 아니고, 한일 간 갈등의 요인은 더더구나 아니고, 정의와 인권,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도 있습니다.
■“소녀상 철거해야”…또다시 시작된 일본의 로비
사실 드레스덴 소녀상을 취재하며 가장 궁금했던 건 일본의 반응, 즉 설치 반대나 철거 요청이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을 말하면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소녀상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전시회 개막을 전후에 일본대사관은 소녀상 전시가 유감이라며 공식적인 통로로 철거를 요청했다고 NHK가 보도했습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광장관은 드레스덴 소녀상 전시가 “일본 정부의 입장과 양립하지 않으며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논평하며 소녀상 철거를 위해 관계자와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물관 측에 확인을 해보니 “일본 측의 요청이 온 건 사실”이라며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물관 측이 말한 ‘진행되고 있는 논의’는 박물관 측이 철거를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직접 만나 본 박물관 책임자들은 이번 전시회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1년 시한으로 전시된 소녀상이 계속 자리에 있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마리온 아커만 드레스덴 박물관 연합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공공 플랫폼(박물관)으로서 우리는 일본 등 다른 목소리에 의견을 밝힐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레온티네 마이어 판 멘쉬 드레스덴 민속박물관 관장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나는 무언가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무언가, 촉발하는 무언가는 항상 갈등으로 가득 차 있고 당신은 그것을 견뎌야 하고 또한 그것을 조절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를 위한 대화형 박물관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곳 박물관에 초대하여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입장과 태도가 달라도.”
완곡한 표현이지만 일본을 향한 메시지로 읽힙니다. 이 전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이 자리에서 논쟁을 해보자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증언에 나선 피해자가 점점 세상을 떠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계약에 의한 ‘매춘부’였다는 주장을 계속하는 일본이 ‘입장과 태도가 달라도’ 위안부에 대해 공개된 자리에서 ‘대화’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김귀수 기자 (seowoo1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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