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發 재건축 '불장' 우려..민관 합동 공급대책이 답"
"오세훈 시장이 풀 수 있는 규제는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오 시장이 정부안 가운데 받을 건 받으면서 민관이 함께 주도해가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들썩거리자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정부가 발표한 공급정책의 큰 틀은 유지하되,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SH(서울주택도시공사) 외에도 민간이 참여하는 민관(民官) 합동 공급대책을 마련하라"는 주문이 나온다.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1·2차아파트 131㎡(이하 전용면적 기준) 호가는 40억 원까지 올랐고, 현대7차아파트 245㎡는 80억 원에 거래되면서 최고가를 기록했다. 강남구 은마아파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도 호가가 1억~2억 원가량 올랐다. 이러다 2·4 부동산대책 이후 보합세를 유지하던 서울 집값이 재건축 이슈로 또다시 껑충 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장기적 관점에서 공급을 늘리려면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는 게 맞으나, 현재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갑작스러운 규제 완화도 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순균 서울 강남구청장도 최근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오 시장의 부동산 공약과 관련해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하고 싶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방향이 맞다면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방법'이다.
공급 부족 불안감 높아지면 집값 또 올라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서울시가 강남이 아닌 강북부터 우선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원장은 "서민 주택 공급 확대 효과가 크면서 집값은 크게 자극받지 않는 강북지역을 우선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남 재건축이 활성화할 경우 집값 상승은 물론, 전세대란도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다음은 고 원장의 말이다."재건축은 1~2년이 아닌, 적어도 4~5년을 내다보고 향후 전체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전세대란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선제 대책을 마련한 뒤 이주를 진행해야 한다. 재건축 아파트 거주자 70%가 세입자인데, 지금 같은 전세대란 시기에는 누가 이사를 하면 그 여파가 최소 5가구에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예를 들어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던 세입자가 멀리 못 가고 인근 빌라로 이사하면 빌라에 살던 세입자는 잠실이나 송파로, 송파 살던 사람은 그 옆 동작구로, 동작구 살던 사람은 관악구로, 관악구 살던 사람은 금천구로, 금천구 살던 사람은 경기 광명으로 이렇게 밀려날 수밖에 없다. 전셋값이 오르면 집값이 오른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또한 고 원장은 "오 시장이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울 시민들에게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정부나 시의회, 여당 구청장들의 반대로 재건축이 시행되지 못할 경우 정부의 공공 주도 정책도, 오 시장의 민간 주도 정책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고 원장은 "이 경우 공급 부족 불안감으로 부동산시장은 또다시 '불장'으로 변해버리는 등 더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결국 그는 '민관 합동 개발'을 해답으로 제시한다. 당장 4월 7일 정부가 발표한 관악구 미성건영, 광진구 중곡, 용산 강변강서 아파트와 중랑구 망우1구역, 영등포구 신길13구역 등 공공재건축 선도 사업 후보지 5곳을 '공조정책 1호'로 정하라는 제안이다. 고 원장은 "설계나 커뮤니티 조성에서는 LH나 SH보다 민간 건설사가 더 낫지 않나. 공익과 사업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도 민관 합동 방식을 제안했다. 권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재개발·재건축, 역세권 개발에 대한 인허가는 서울시가 쥐고 있는 만큼 이 부분을 오 시장이 흔쾌히 수락하고, 서울시도 중앙정부나 여당으로부터 민간 주도 개발과 관련해 확실한 뭔가를 받아내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부동산시장에서는 오 시장이 미니 재건축으로 공급에 시동을 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오 시장은 4월 13일 '가로주택정비사업'(가로주택)을 통해 공동주택으로 탈바꿈한 강동구 성내동 라움포레아파트를 방문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방문 하루 전 서울시 담당자가 코로나19 확진을 받아 일정이 취소되긴 했으나, 오 시장의 주택 공급 방향이 미니 재건축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아주택'으로 스타트 끊나
실제로 오 시장은 보궐선거 당시 핵심 공약으로 '스피드 주택 공급'을 내세우며 그 실행 방안 중 하나로 '모아주택'을 언급했다. 새 아파트 36만 가구 중 절반가량을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사업 정상화를 통해 공급하고 나머지 17만5000가구는 기존 서울시가 밝힌 공급 계획 7만5000가구와 상생주택 7만 가구, 모아주택 3만 가구를 통해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모아주택은 4~6개 이웃 토지주 가구를 모아 신청하면 용적률 인센티브 등을 '더(more)' 줘 소규모 공동주택을 비롯해 '도심형 타운하우스'를 지을 수 있게 해주는 재건축이다. 가로주택보다 규모가 작아 사업 진행 속도가 더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미니 재건축으로 공급에 시동을 걸 경우 정부나 시의회와 불협화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 1년 3개월이라는 짧은 임기에 여당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울시의회의 협조 없이 유명 대단지 재건축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같은 재건축 규제들은 중앙정부의 권한이다. 한강변 35층 규제를 풀기 위해서도 서울시 조례상 3종 일반주거지역 용적률을 최대 250%에서 300%까지 상향해야 하는데, 이 또한 시의회 의결이 필요하다.
부동산 포털 '직방'의 함영진 데이터랩장은 "모아주택은 대규모 재건축과 비교하면 공급 물량이 매우 적지만, 가격 불안 요인을 줄이면서 도심 노후지역의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오 시장이 부동산정책 1호로 모아주택이나 가로주택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밝혔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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