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담은 최북단의 봄

2021. 4. 1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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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길가 여기저기 활짝 핀 봄꽃,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북한과 맞닿은 접경지역도 완연한 봄을 맞고 예쁜 꽃들이 피었답니다.

◀ 차미연 앵커 ▶

접경지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카메라에 담는 한 작가가 있다는데요.

전시회도 열고 유명한 사진첩도 냈다는 이 사진작가의 촬영 현장으로 이상현 기자가 안내합니다.

◀ 리포트 ▶

남한의 최북단에도 봄은 찾아왔습니다.

강원도 철원의 대표적 관광지로 꼽히는 고석정.

그 절경 옆으로 한탄강 계곡물에 떠있는 부교, 물윗길을 따라 올라가면 은하수교라는 새로운 다리가 나타납니다.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제가 지금 서있는 이곳이 지난해말 이곳 철원 한탄강에 새로 만들어진 은하수교입니다. 이곳에 서있으니까요 보시는 것처럼 한탄강의 아름다운 주상절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모양으로 굳어졌다는 주상절리와 물윗길, 그리고 은하수교.

이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 앞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한 사진작가를 만났습니다.

15년을 함께 했다는 커다란 필름카메라를 품에 안은채 한탄강이 내려다보이는 유리판 다리를 건너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길을 내딛는 올해 쉰여섯살의 이동근 작가.

[이동근/사진작가] "이것은 이제 초점 잡는데 쓰는거고요. 이거는 상이 보이거든요. 이렇게 거꾸로 보이거든요. 사진도 거꾸로 찍히게 되는거죠."

부산의 한 대학에서 사진학과 학생들에게 강의도 하고 있다는 작가는 틈만 나면 이렇게 남북의 접경지역을 찾아다닙니다.

이번엔 경기도 파주에서 임진각 등을 돌아본뒤 철원을 찾은건데요.

은하수교를 떠나 좀더 북쪽으로 향해 노동당사에 도착했습니다.

해방 직후 북한 노동당이 철원 지역을 관장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한국전쟁때 파괴됐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1994년 서태지와아이들이 평화를 노래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발해를 꿈꾸며(서태지와 아이들)] "시원스레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와 나갈 길을 찾아요."

이곳에도 봄은 왔습니다.

앞쪽엔 주렁주렁 달린 태극기가 아직 덜 핀 벚꽃을 대신하고 있었고, 뒤편에선 활착 핀 목련꽃이 작가를 반겼습니다.

역사의 잔해물과 절정의 봄꽃, 그 처연한 아름다움은 작가로 하여금 렌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이동근/사진작가] "사진을 만들어내는건 빛이거든요. 빛에 의해 사진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빛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첫번째로 중요하고요, 그 다음엔 내가 무엇을 찍으려고 하는가 내 머리속에 무엇이 들어서 무엇을 형상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중요하죠."

한국전쟁 당시 남북의 치열한 격전지였던 백마고지도 이곳에 올때면 빼놓을수 없는 촬영지입니다.

어릴적 우연히 가본 전시장에서 사진 한컷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때 그 기억이 서른을 넘긴 뒤늦은 나이에 사진의 세계에 뛰어들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평소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결혼이주여성과 탈북민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비교적 소외된 경계인과 그 경계들을 찍기 시작했다는 작가.

디지털영상이 대세인 시대, 사진은 여전히 그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이동근/사진작가] "사진은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게 되면 그 시간을 멈추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에 찍힌 대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사진을 통해서 다시한번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들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여년간 탈북민들과 함께 두만강의 북중 접경지역을 수차례 돌아다니며 그들의 스토리,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아냈고, 탈북예술인들이 공연하는 곳이면 지역을 마다않고 쫓아다니며 쉴새없이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을 엄선해 최근엔 책도 한권 냈는데요.

지난 1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책 10권'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요즘은 조그마한 사진전시회도 열고 독자와의 대화도 이어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데요.

작가에게 사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이동근/사진작가] "사진이 세상을 바꿀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진 않습니다. 근데 제가 촬영을 하다보니까 제가 바뀌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것들을 알게 되고 내가 뭘 해야 할지를 알게 되고 그리고 나의 역할들을 찾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내가 바뀌면 나의 세상이 바뀌는 거니까 아 이거는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경기도 하남에 있는 조그마한 연습실.

코로나19 여파로 오랫동안 중단됐던 한 탈북예술단의 공연 연습이 모처럼 이뤄지고 있었는데요.

이날 반가운 손님이 한명 찾아왔습니다.

"애들아 인사해." "오랜만에 오셨네요." "진짜 오랜만이에요, 1년?" "아, 한 1년 넘었다, 1년 반 되었어요."

자신의 책에 등장하는 사진속 주인공들이 공연연습을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도 한걸음에 달려간건데요.

책속의 사진들은 즐거웠던 그때의 추억을 마구마구 소환해냈습니다.

[김영옥/북한백두-한라예술단 단장] "특히나 지금은 저희뿐이 아니고 문화예술인들이 다 힘들어요. 근데 그렇게 행복했던 순간들을 사진이 있어서, 교수님이 남겨주신 그 스토리가 있어서 그때로 다시 돌아간, 7~8년 전으로 또 3년 전으로 막 돌아간 기분?"

연습무대였지만 이 역시 작가에겐 또 하나의 작업장.

몸짓 하나하나, 시선 하나하나를 놓칠새라 작가는 또다시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그들은 그렇게 사진을 통해 또한번 하나가 됐습니다.

렌즈로 본 경계.

렌즈로 본 경계인들.

작가의 렌즈 속 세상은 따스한 봄 햇살, 화려한 봄꽃과 함께 또한번 활짝 피어나고 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152049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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