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혐오논란' 윤지선 논문, 다수 결함에도 불성실 해명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2021. 4. 1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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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루 논란' 윤지선 교수 '관음충 발생학'
본지 수일간 철학계 관계자와 논문 검토
오기·오류·누락 등 허점 숭숭, 답변은?
민망한 수준, 철학연구회 검증은 했나

[파이낸셜뉴스] 논문을 통해 유튜버 보겸의 인사말이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혐오표현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된 윤지선 세종대학교 교수의 논문에서 다수 결함이 추가 발견됐다.

기본적인 수준에 미달하는 연구임에도 KCI(한국학술지인용색인)급 학술지에 버젓이 실리고 제대로 된 비판조차 없는 상황은 한국 철학연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논문 결함에 대한 본지 지적에 대해 윤 교수는 “학술지논문을 학술적으로 판단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임의적으로 인터넷 서칭 논문들을 조악한 근거로 들어 논문에 대해 폄하하는 의도를 지녔다는 것을 이번 사안으로 확인했다”며 “양심과 사실에 근거해서 기사를 쓰라”고 권했다.

본 기사는 지난 기사와 마찬가지로 양심과 사실에 입각해 쓰였음을 밝힌다.

윤지선 교수의 연구 '관음충의 발생학'은 한국 남아들을 한남유충으로 표현하며 이들이 성적혐오를 학습해 한남충으로 분화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한국 남성과 어린 아동들에 대한 모욕적 표현으로 보기 충분하다. 사진=서동일 기자

근거 없는 사실왜곡, 또 다른 혐오 조장

본지가 지난 수일 간 철학계 관계자들과 함께 윤 교수의 논문 ‘관음충의 발생학: 한국남성성의 불완전변태과정의 추이에 대한 신물질주의적 분석’을 검토한 결과 다수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개중에선 KCI급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초보적 결함부터 논의의 중추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결함, 특정 성별과 연령대에 대한 혐오 등 용납하기 어려운 결함이 두루 확인됐다.

우선 해당 논문은 ‘남성 놀이 문화’의 일종으로 초등학교 남아들 사이에서 ‘보이루, 느금마, 멧퇘지’ 등의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이중 보겸이라는 유튜버의 인사말인 ‘보이루’가 ‘보X+하이루’의 합성어라고 명시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자 “보겸이 ‘보겸+하이루’를 합성하여 인사말처럼 사용되며 시작되다가. 초등학생을 비롯하여 젊은 2,30대 남성에 이르기까지 여성 성기를 비하하는 표현인 ‘보X+하이루’로 유행어처럼 사용, 전파된 표현”이라고 바꾸며 여성혐오 용어라는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해당 논문의 결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본지가 지난 보도를 통해 지적했듯 한국 남성의 ‘한남충’으로의 변화를 곤충군집체의 분화과정과 비교하는 과정에서 인용한 외국 곤충학자의 논문을 그 출처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본지 4월 12일. ‘[단독] '보이루 논란' 윤지선 논문, 인용누락 결함 확인’ 참조>

분석철학 대가 비트겐슈타인은 철학학위가 없는 상태에서 버트런트 러셀의 문하로 들어와 철학계 대가로 성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또한 자신의 대표작 <논고>에 학술적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뒤 스스로 비판해 더 나은 성취를 거둔 것으로도 유명하다.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을 참고했다고 주장한 윤지선 교수가 진정으로 참고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fnDB

자격 없는 기자에게도 귀 열어야 학자

이 같은 기초적인 실수는 여러 부분에서 반복된다. △‘그로스(2019), 74’라고만 나와 있고 정확한 출처가 언급되지 않은 부분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출간연도를 잘못 적은 부분 △아예 각주번호만 적혀 있고 내용이 누락돼 있는 대목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인용하며 출처로 스피노자 관련 외국 동영상 강의명만 언급한 부분 △De Landa를 De land로 오기한 부분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한 본지의 질의에 윤 교수는 “학술지논문을 학술적으로 판단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임의적으로 인터넷 서칭 논문들을 조악한 근거로 들어 논문에 대해 폄하하는 의도를 지녔다는 것을 이번 사안으로 확인했다”며 “논문반박은 학술적 자격이 있는 이가 논지와 논의에 대한 반박논문으로 이어진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윤 교수는 일부 질의에 대해서만 취사 선택해 답변을 해왔다. 윤 교수는 △그로스의 저서 명을 확인해주었고 △각주에서 외국 강의영상 제목만을 달랑 출처로 달아놓은 부분에 대해선 “강의영상이기에 책쪽수가 없는 건 당연하다”고 답했다. △각주번호만 있고 실제 각주가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본문논의의 상세설명도 각주기능”이라며 “논문각주 판정하기 앞서 논문이 어떻게 쓰이는지부터 아셔야 한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답을 보내왔다.

비트겐슈타인 저서의 출간연도를 잘못 적은 데 대해서는 아예 답을 보내오지 않았다.

동서문화사에서 2008년과 2016년 출간한 비트겐슈타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철학탐구/반철학적 단장>은 학계에선 해적판으로 학술적 가치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태다. 동서문화사.

"터질 게 터졌다" 철학도 반발 일어

더욱 황당한 건 비트겐슈타인의 저서로 인용했다며 참고문헌에 적은 <철학적 탐구>란 책도 오기란 것이다. 참고문헌엔 2016년 동서문화사에서 김양순씨 번역으로 출간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가 적혀 있는데, 2008년 <논리철학논고/철학탐구/반철학적 단장>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있을 뿐 참고문헌에 언급된 저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철학계에선 김양순이란 옮긴이가 실재하지 않고, 일본 이와나미 문고에서 나온 판본과 주석 등이 완전히 일치해 해적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권위 있는 학술지에 기명으로 발표된 논문으로선 있을 수 없는 수준의 실수가 적지 않지만 논문은 철학연구회 편집위원이 추천한 3인의 심사위원이 심사해 게재가 판정을 받았다. 철학연구회는 보겸에 대한 거짓서술이 문제가 되자 각주를 살짝 수정했으나 다른 오류에 대한 수정은 전혀 없었다.

철학연구회는 대한철학회, 철학사상과 함께 철학계 유력 학술단체다.

철학계 관계자들은 대체로 황당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철학 석사 김모씨는 “유튜버와 관련된 사건이라 이렇게 커진 것이지, 폐쇄적인 등재학술지의 심사 과정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며 “철학계에서도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철학 석사 김모씨 역시 “윤지선씨의 강의 테러는 분명히 처벌받아야 할 잘못된 일”이라면서도 “논문의 학술적 측면의 문제와 학계의 잘못된 관행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윤지선 교수 사태 이후 수많은 언론이 윤 교수에게 쏟아진 비난을 비판하고, 여러 단체에서 윤 교수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윤 교수 논문에 대한 검토 및 그에 대한 정당한 비판, 그안에 담긴 혐오에 대해 되짚은 목소리는 미미했다. 본지는 언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해당 논문을 검토했음을 밝힌다. f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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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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