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의 취재진담] 시정잡배 말이면 어때, 쉽고 친절하면 되지

김도연 기자 입력 2021. 4. 17.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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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방송말 전도사' 김상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시청자 입말 외면하는 방송은 오만"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김상균(73)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입말이 구수하다. 광주 출신인 그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다가 해직됐다. 민주화를 쟁취한 1987년에야 복직한 그는 MBC 워싱턴 특파원, 보도국장, 기획실장(이사) 등을 지냈다. 마산 MBC와 광주 MBC 사장까지 역임하며 평생 방송기자로 살았다. 현 MBC 보도본부 임원들은 그의 밑에서 초년 기자로 생활했다. 그는 “방송기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말한다.

그의 마지막 바람은 '방송말의 안착'이다. 보다 쉬운 입말이 보도 전파를 타고 안방에 전해지는 일이다. 2019년 방송문화진흥회가 구성한 '방송말연구회'는 MBC 안팎의 전문가들이 모여 시청자의 일상 언어를 연구하고 이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해왔다. “방송말은 더 쉽고 더 친절해야 한다”는 사명에서 시작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방문진 사무실에서 만난 김 이사장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뭣이 힘들다고 '이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을 쓰냐는 말이여. 그냥 '이명박씨'로 쓰면 되는 것을. 타이틀 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기사 텍스트로는 '허벌나는' 그의 입담을 생생하게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내내 아쉬웠다.

▲ 김상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방문진 이사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1980년 신군부가 주도한 언론인 대량해직 사태 때 해고됐다가 1987년 11월 복직했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요즘 사람들은 관심 없는 이야기인데 뭘…. (기자 질문: 그래도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1980년 7월 잘렸다. 7년 5개월 뒤 복귀하긴 했다. 작년이 40주년이었네. 그 당시 허문도가 난리 치던 때였다. MBC는 '1번 타자' 격으로 깨졌다. 1980년 7월 '일괄사표, 선별수리'한다는 방이 붙었고 전 사원 사표를 받아갔다. MBC가 정동에 있을 때다.”

- 명분상 해고 사유는 있었을 것 같은데?

“문화방송 기자협회 분회 간부였다. 정치부 선수들 눈치는 아주 귀신 아닌가. 정치부 기자들은 분회 활동 안 한다고 다 내뺐다. 내가 졸병 기자일 때 시경 캡(언론사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을 총괄 지휘하는 기자)하던 양반이 분회장을 맡고선 나보고 들어오라고 하니 별 수 있겠소? 신군부 검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많이 냈다. 우리 활동이 위에 그대로 전달되지 않았겠나? 시청 앞에 기자들이 줄 서서 기사 검열을 받던 때다. 5·17 비상계엄이 터지면서 당시 한국기자협회장 김태홍 선배도 도망가고 우리도 박살 났지. 해직된 뒤 1985년인가 MBC에서 다시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때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근무할 때다. MBC에 들어가기 참 싫었다. 명동 건물 위에서 방송에 안 나는 거 실컷 보고 있었으니까. 백골단이 학생들 쥐어패는 거 말이다. 정나미가 아주 뚝 떨어졌다. 보도국장의 제안을 바로 거절했다.”

- 1980년 7월 서울신문 출신 이진희가 MBC 사장에 취임하자 대규모 강제 해직이 이뤄졌다.

“이진희 취임사가 인상 깊었다. 평생 안 잊힌다. '소설은 줄거리가 있다. 조직에도 줄거리가 있다. 이 회사 줄거리에 동의하지 않으면 회사를 떠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1980년 7월19일 '의원면직' 형식으로 해직됐다. 전날 전원 사표를 싹 받아갔다. 당시 출장 등 이유로 회사에 없던 친구들도 있었다. 전화해 '야, 너라도 살아서 다행이다'라고 말을 건넸더니 '나도 사표 냈어'라고 하더라. 다 지나간 이야기다. 그만합시다.(웃음)”

- 방송말 연구에 천착해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975년 입사 때 MBC와 경향신문은 같은 회사였다. 신문기사를 갖다주는 대로 방송 기자가읽어 제치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었다. 난 방송하러 온 사람인데 신문을 그냥 읽고들 있었으니…. 아직도 기억에 남는 기사 멘트가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오늘 오후 747 서북 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이 리드를 읽는데 신문 표현대로 쉼표(,)를 그대로 읽어버린다. 글과 말은 다른 것인데도 방송이 신문을 철저하게 따라가던 시절이다. '삐딱선'을 탈 수밖에 없었다.”

- 2014년에 쓴 책 '누구를 위한 뉴스였나'를 보면, 주어 다음에 '는', '은'만 붙이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무부 출입을 할 때다. 청와대 기사가 넘치면 내가 입을 빌려주곤 했다. 원고를 대신 읽어주는 역할이다. 청와대 기자 원고를 봤더니 1분10초 동안 '박정희 대통령은'으로 시작해 '박정희 대통령은'으로 끝났다. 입만 빌려줘야 하니 원고도 못 고친다. '박정희 대통령' 대신 '그리고' '이어' 표현으로 주어를 생략했더니 데스크는 다시 원고를 읽으라고 닦달이다. 신문기자 출신인 청와대 대변인이 방송사에 팩스를 보내면 그걸 그냥 읽어야 했던 시절이다. 방송을 이렇게 개판으로 해도 되는가 좌절했다.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 김상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책 '누구를 위한 뉴스였나'(나남)

- '글'에 비해 '말'을 낮춰보는 것에 문제의식이 큰 듯하다.

“'말'이 들어가는 우리 표현 가운데 좋은 뉘앙스가 있나? 딱 하나 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나머지 것들은 부정적이다. '말이 많다', '얻다 대고 말대꾸야', '말은 잘하네.' 우리 사회에 말이 필요했나? 독재하고 권위 있는 놈들이 지시하면 다 끝나는 사회였다. 대화나 소통 수단으로서 말은 외면받기 일쑤였다. 아랫것들이 쓰는 말이라며 입을 틀어막기 바빴다. 지금 정치판도 마찬가지 아닌가? 거짓말을 그렇게 해도 가책이 없다. 듣는 사람마저 접어서 듣는다. 반면 정치인에게 문건을 들이밀면 꼼짝 못한다. 글의 힘은 인정하면서도 말은 대충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가끔 하는 말이 'MBC라도 공영방송답게 시험을 면접으로만 보자'는 것이다. (논술 시험에) 하버마스가 어쩌고 저쩌고 쓰는 것보다 말이 대접받는 자리를 MBC부터 만들자는 이야기다.”

- 법원과 검찰 용어에도 문제의식이 큰 것으로 안다.

“검찰 용어 가운데 우리도 잘 모르는 일본식 한자가 참 많다. '신병을 확보했다.' '신병'의 '병'자가 무엇인지 아나? 사람을 짐승처럼 끌고 다닐 때 쓰는 도구가 병(柄)이다. 전봉준을 서울로 압송할 때 머리에 씌운 도구가 병이라는 거다. 이런 표현 모르고 써도 되나? 방송말연구회에서 정민영 변호사는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는 표현을 두고 '검찰에는 소환권이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출석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소환권은 판사만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자들이 없는 권한도 검찰에 주고 있다. 지난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다툴 때 시청자들은 알 수 없는 법조 용어들이 보도에 난무했다. 소위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기자들이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단어를 해체하고 분해해서 설명해줘야 할 것 아닌가? 자기들도 모르는 단어를 그렇게 열심히 써야 하나? 내 생전에 검찰 개혁은 포기했다. 보도하는 놈들도 못 고치는데 검찰 개혁이 어떻게 가능한가. 검찰 개혁이 시대적 화두라면 그곳에 종사하는 이들의 정신 상태에 자극과 변화를 줘야 한다. 그들이 당연하다고 쓰는 '폼 잡는 말'을 우리가 먼저 뭉개버리면 된다. 영장 발부? 그냥 '영장을 쳤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파기환송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돌려 보냈다'고 하면 된다. 박근혜 탄핵안이 인용됐다는 보도에 태극기 부대가 박수 쳤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박근혜가 탄핵됐다'고 보도하면 된다.”

- 한자어에 대한 반감인가?

“우리 입말을 저평가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다. 압수수색이라는 표현도 귀에라도 편하게, 집을 뒤졌다거나 정 안 되면 수색했다고만 쓰면 될 것이다. 가격이 저렴하다? 그냥 '값이 싸다'고 하면 되지 않나? 우리말을 쓰면 싼 티가 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방송은 방송말을 써야 한다. 더 쉽고 알아들을 수 있게. 물론 처음에는 힘들 것이다. 압수수색을 '집을 뒤졌다'고 표현하면 검경에서 '시정잡배나 쓰는 말'이라고 반발하겠지. 그런데 시정잡배가 쓰는 말이 어디가 어때서?”

- 요즘에는 '자살' 대신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우리 때는 자살을 못 쓰게 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풀어썼다. 요새는 극단적 선택이라고 쓰던데, 누가 일상 생활에서 말을 나눌 때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쓰나?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죽은 것인데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이 말이 되는가? 차라리 그럴 바에는 오히려 '자살'을 쓰는 게 낫다. 아니면 세상을 등졌다거나, 우리 식으로 얼마든지 알아듣기 좋고 편하게 쓸 수 있는 표현이 있다. 영문도 모를 표현인 극단적 선택을 다 따라 쓰고 있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가 '대통령 당선인'이라고 써달라고 요청하니까 '당선자'를 다 '당선인'으로 표현했다. 실제 사람들이 쓰는 입말에 맞춰야지, 원칙과 기준 없이 쓰라는 대로 쓰면 시간이 지나고 붕 뜨기 마련이다.”

- '사회적 거리두기' 표현에는 호평했다. 그 이유는?

“기모란 교수가 쓴 표현으로 안다. 난 방송 표현으로서 하나의 사건이라고 봤다. 한자를 못 써서 안달인 관료들이 있는데, 어떻게 저런 표현이 가능했을까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MBC도 '드라이브 스루'를 쓰더라. 무슨 뜻인지 이해되나? 축약하면 '드수'라고 부를 건가? 우리 연구회에서 신지영 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탑승 검역' '승차 검역'이라는 표현을 제안했는데, 나는 '차 타고 검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시청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방송은 오만하다.”

▲ 김상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방문진 이사장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보도국에 방송말을 무리하게 강제하지 않는 대신 마음에 드는 방송말을 하는 기자들에게 밥을 산다고 들었다.

“지난해 6월 뉴스데스크가 다시 8시 시간대 편성됐을 때부터 모니터를 했다. 내가 말을 한다고 해서 알아먹는 것도 아니고, 다들 귓등으로 듣는다. 나도 더는 큰 기대가 없다.(웃음) 다만, 영감을 줬던 MBC 기자들과 식사를 해보려 했다. 보통 기자들은 '어쨌습니다', '저쨌습니다' 말끝에 '다다다다'를 붙이기 바쁘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 이야기할 때 '다'로만 끝내나? 아닌데요? 그런데요? '요'로도 끝나고, '죠'로도 끝난다. 아무개 기자는 다른 기자들과 달리 일상 말로 보도를 이어가더라. 함께 식사하며 칭찬하기도 했다. 글 보고 읽는 것에서 벗어나 진짜 방송말을 하라는 취지였다.”

- 기자들의 방송말 실력은 앵커와의 스튜디오 대담에서 드러나는데?

“JTBC로 간 손석희가 뉴스를 처음 하는 날 깜짝 놀랐다. 기자를 불러다 생방송을 하고 있더라.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녹화 테이프를 틀어 보도하는 방송사와 생방송을 하는 방송사 가운데 시청자들은 어디를 선택하겠나? JTBC 기자들도 처음에는 버벅댔지만 훈련이 되니까 말 표현이나 말투가 달라졌다. 같은 축구시합도 녹화 경기로 보면 재미가 없다. 예전과 비교하면 MBC도 무지하게 좋아졌다. 내가 기자들 이름을 기억할 정도니까. 갇혀 있을 땐 틀을 깨기 어렵지만 한번 깨고 나오면 그다음은 쉽다.”

- 후배 입장에서 빨간펜 선생님 같은 느낌 아닐까? 간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더 고치기 어려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지. 기분 나쁠 수도 있다.(웃음) 클럽하우스인가, 음성 SNS가 유행이라고 들었다. '말'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대접을 받고 있다. AI에 문 열어달라고 하면 열어주는 시대다. 박정희 시대 때 무슨 후보 토론회가 있었나? 써 놓은 거 읽기만 했지. 요즘 1인 미디어들 보면, 방송 리포트보다 훨씬 잘한다. 그들 말 가운데 어려운 말이 없다. 심하다 할 정도로 편하게 써버린다. 그렇게 입말이 익숙한 이들과 우리 방송의 거리감은 없을까? 쉬운 우리 표현과 우리말을 더 고민해야 한다. 물난리가 났는데 '제방이 붕괴하고 지반이 침하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껴 대피할까? '둑이 무너져 물이 넘치고 있다'고 해야 사태의 위급함을 전달할 수 있다. 세종대왕이 왜 한글을 만들었나? 상놈들은 자기가 무슨 죄를 지어서 매를 맞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거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고서 매를 맞아야 그나마 덜 억울하지 않나? 오늘이라도 재판에 들어가 보면 안다. 판사와 검사만 아는 표현만 오간다. 한성우 인하대 교수 표현을 빌리면, 이제 우리에게는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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