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만 바라봐도 눈물.. 7번째 봄도 여전히 아프네요" [세월호 7주기]

김유나 입력 2021. 4. 17. 08:01 수정 2021. 4. 1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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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세월호'를 물어보다
20~70대 70명 중 대부분 "기억 생생"
며칠 전 일처럼 상세하게 풀어내기도
저마다 아픔 느끼며 참담함·분노 교차
당시 고교생 20대 "안산에 살았다면.."
50대 교사 "수개월간 우울감에 고통"
"삶 돌아보는 계기.. 인생에 큰 영향줘"
정치적 사안으로 흘러가는 데는 반감
일부 "지겹다" "이제 그만" 말하기도
세월호 7주기인 16일 전남 목포시 달동 목포신항만에 거치된 선체를 희생자 유족들이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쉬는 시간이었어요. 친구가 ‘수학여행 가는 배가 가라앉았다’고 해서 깜짝 놀랐죠. 수업하러 온 선생님들한테 계속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어요. 그러다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이 들려서 안심했는데….” 대학생 김모(25)씨에게 ’그날’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는 마치 며칠 전 일을 말하듯 세세한 기억을 이야기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 갔을 때 났던 향 냄새까지도 기억나요.” 김씨에게 세월호 참사는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알려줬다. 그는 “나도 언제든지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 순간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제가 안산에 살았다면 죽은 아이들이 제 친구였을 수도 있잖아요.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시 4월이다. 과거 4월은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따뜻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7년 전 세월호가 가라앉은 뒤 한국 사회에서 4월은 또 다른 슬픔의 상징이 됐다. 누군가는 바다만 바라봐도 눈물짓고, 낡은 노란 리본을 가방에서 떼지 못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지겹다고, 이제 그만하라 말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우리 모두에게 크고 작은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해 봄을 살아낸 이들에게 세월호는 그저 흘러간 기억이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20∼70대 70명에게 각자 저마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세월호를 물었다. 이 중 14명은 2014년 봄, 팽목항에 머물렀던 자원봉사자나 공무원이다.

◆7년 지났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날

“친한 동기랑 메신저로 얘기하는데 속보 떴다고 알려주더라고요. 그때 사무실 공기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요.”(30대 직장인 이모씨) “대입 준비 중이었는데 그날 늦잠을 자서 학원에 안 갔어요. 집에서 아침을 먹다 뉴스를 봤어요.”(20대 직장인 김모씨)

세계일보가 인터뷰한 이들 대부분은 세월호 참사를 처음 접한 순간을 비교적 명료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70명 중 그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람은 7명뿐이었다.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휴가 중이어서 집에서 TV를 봤다’ 등 저마다 비보를 들었던 장소와 상황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우리 모두가 목격자였던 셈이다.
모두 저마다의 아픔을 느꼈다. 교사 서모(56)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많이 갔기에 세월호 참사는 피부에 와닿는 공포였다. 수개월간 우울감을 떨치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종종 세월호를 떠올린다. 김모(29)씨는 “책을 읽다가 ‘상실’이란 단어만 마주해도 생각난다. 바다를 보면 기쁘다가도 문득 세월호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는다”고 말했다. 노지운(24)씨는 ‘흉터’에 비유했다. 그는 “전 국민이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봤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감이 깊은 상흔을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남긴 것은… 공포 그리고 또 다른 삶

세월호는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세월호 참사가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람은 6명뿐이었다. 특히 ‘바다와 배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다’는 이들이 많았다. 강미숙(59)씨는 “바다가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다. 배 타는 게 무섭다”고 말했다. 교사 김모(26·여)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체험학습을 가야 하는데 걱정돼서 잠을 못 잔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전지원(26)씨는 비상구를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4·16생명안전공원 선포식 16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7주기 기억식 및 4·16생명안전공원 선포식’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안산=뉴시스
국가에 대한 분노도 컸다. 고병찬(24)씨는 “국가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은 것에 참담함과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황모(30)씨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부정적 인식만 남은 것은 아니다. 팽목항에서 시신 확인 관련 업무를 했던 보건복지부 공무원 A씨는 근무하던 책상과 시신 안치 장소가 천 하나로 가려져 있어 유가족이 오열하는 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었다. 그는 “깊은 슬픔을 느꼈지만 동시에 삶과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에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며 “가족을 더 사랑하고 지금 상황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했다”고 기억했다. 홍윤기(26)씨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집회에 나가고 사회현상에 적극 나서게 됐다”며 “타인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7주기인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기억공간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세겨져 있다. 연합뉴스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

정치적인 사안으로 흘러가는 데 대한 반감도 컸다. 김모(25)씨는 “매년 추모를 넘어 정치적 이슈가 되는 것을 보면 싫증이 난다”고 털어놨다. 임모(57)씨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지겹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계속 기억하려는 이들도 많다. 9개월간 실종자 가족을 돕는 봉사활동을 했던 조왈현씨는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닌다. 이유를 묻자 “기억하려고”란 답이 돌아왔다. 그는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는데 지겨워할 수 없다.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모(39)씨에게 노란 리본은 위로를 건네는 방식이다. “지나가는 사람 중에 세월호 유족이 있을 수 있잖아요. 노란 리본을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나도 당신처럼 아직 잊지 않았다, 같이 힘을 내서 살아가자는 인사예요.”
주현숙 감독. 남제현 선임기자
◆ “참사 목격한 우리도 모두 당사자”

“우리 모두 세월호 참사로 많이 슬퍼했고, 또 슬퍼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마음 아파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는 많이 나왔지만, 희생자나 그 가족이 아닌 ‘보통 사람’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없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담담하게 자신의 삶 속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꺼낸다. 영화를 만든 주현숙 감독은 정작 2014년에는 ‘지켜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뉴스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3년이 지난 어느 날,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을 보고 영화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왜 사람들은 여전히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닐까, 나는 내 지인을 잃은 것도 아닌데 왜 슬플까란 질문이 떠올랐어요. 세월호 참사는 그날 뉴스를 본 우리 모두의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사의 피해자가 희생자와 유족 등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라는 의미다.

“트라우마란 과도한 위험과 공포,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일컫는다. 타인이 죽음이나 상해의 위험에 놓이는 사건을 목격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겪는다.” 영화가 주디스 허먼의 저서 ‘트라우마’ 속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주 감독은 “아픈 것을 아프다고 얘기하는 것이 중요한데, 세월호 참사 이후 ‘난 목격자인데 아파도 되냐’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우리 모두 세월호로 아팠고 트라우마를 겪었다, 아파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7주기인 16일 전남 목포시 달동 목포신항만에 거치된 선체 앞에서 희생자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
영화에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기록관리학을 전공한 대학생과 해마다 세월호 참사 행사를 하는 교사, 유족을 도왔던 카페 사장, 유족의 이야기를 기록한 인권운동가, 사고 해역에서 시신을 수습했던 진도 어민 등이 등장해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는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다. 유족이 울부짖는 소리나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조차 나오지 않는다. 주 감독은 “일부러 ‘슴슴하게’ 찍었다. 영화가 뜨거운 감정을 보여주기보다, 관객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가 영화를 봤으면 하는 이들은 ‘그날을 기억하고 그날을 생각하면 먹먹한 사람들‘이다. 주 감독은 “사람이 너무 미안하면 외면하고 싶다. 슬픈 감정에 압도될까 봐 세월호 얘기를 다시 보지 못했다는 이들이 많은데, 그런 이들이 영화를 보며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건강하게 참사를 대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슬픔’보다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과 고민’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유나·김병관·이정한·구현모·조희연·장한서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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