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리포트]모바일 세상에서 장애인이 차별을 겪는 순간들

이영애 기자 2021. 4.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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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료수가 로고 없이 똑같이 생겼다면 어떨까? 시각장애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현실이다. 캔 뚜껑 위에 새겨진 점자는 ‘음료’인지 ‘맥주’인지를 구분할 뿐 음료가 콜라인지 사이다인지는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음성인식, 문자인식 등 정보통신 기술은 충분하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온라인 쇼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장애인은 의식조차 못하겠지만 스마트폰 안에는 다양한 사람을 위해 접근성을 높이는 기술이 들어있다. 시각장애인(맹인)을 위한 화면 확대, 색 반전 기능이나 청각장애인(농인)을 위한 실시간 자막 기술이 대표적이다. 앞을 아예 못 보는 전맹의 경우 스크린리더 기술을 이용해 텍스트를 소리로 들을 수 있다. 스마트폰 보급 초기에는 이런 기능이 없거나 유료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제공됐지만, 2009년부터 iOS에는 ‘보이스 오버’, 안드로이드에는 ‘톡백’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있다. 

하드웨어 디자인에도 접근성이 고려된다. 진동 모드로 바꾸는 똑딱이 버튼이나 홈버튼은 스마트폰을 직접 보지 않고도 위아래를 구분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미세한 손가락 움직임이 힘든 지체장애인을 돕기 위해 스마트폰에 별도의 장치를 연결하는 ‘스위치 제어’ 기능도 있다.

접근성 기술 뛰어난 스마트폰, 활용이 못 따라가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 대부분 불편 없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을까. 대부분은 아니라고 답한다.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크린리더로 텍스트는 읽을 수 있지만, 광고 배너나 쇼핑몰 제품 사진, 유튜브 섬네일 등은 보지 못한다. 이미지로 돼 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 화면을 보면 생각보다 많은 글자가 그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스크린리더 기술로 이미지를 읽어내려면 ‘대체 텍스트’가 필요하다. 이미지로 된 글씨를 텍스트로 바꾸거나 그림을 텍스트로 설명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에서는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A사 온라인 쇼핑몰에서 ‘인기품목 특가’라고 적힌 배너의 대체 텍스트는 ‘오른쪽 배너’로 뜬다. 이것만으로는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다. 

상품 사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상품명만 텍스트로 돼있을 뿐 원산지, 주의사항, 반품 정보 등은 제품 사진을 그대로 찍은 이미지로 제공해 시각장애인은 상세 정보를 전혀 알 길이 없다. 수많은 ‘우유’ ‘우유’ ‘우유’ 속에서 마치 뽑기를 하듯 골라야 하는 실정이다.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쓸 때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대화는 음성인식과 스크린리더를 이용하면 가능하지만 이모티콘은 거의 사용할 수 없다. 안동한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총괄팀장은 “처음에는 아무리 요청해도 개선되지 않다가, 언론 보도 이후 무료 이모티콘에 한해 대체 텍스트가 마련됐다”며 “기술적으로 전혀 어렵지 않은데 그동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되려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다. 청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정진범 한국농아인협회 이사는 “농인들이 평소 영상통화를 주로 사용하는데 아이폰과 갤럭시 간 통화 호환이 안 된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금융 앱 로그인이나 비밀번호 분실 시 반드시 ARS로 본인인증을 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농아인협회 기획부 신민상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신청할 때에도 ARS 인증을 대체할 방법이 없어 수령하지 못한 농인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 접근성 배려가 아닌 의무

장애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겪는 불편함은 기술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스크린리더가 읽을 수 있는 대체 텍스트 기술을 도입할 수 있고, 광학 문자 인식 등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이미지 속에서 텍스트를 추출할 수도 있다. ARS 인증은 휴대폰, 아이핀 인증 등 대체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이런 기술이 상업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당장 수익을 내거나 소비자를 늘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기업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법제화는 잘 돼 있는 편이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과 국가정보화기본법을 통해 장애인의 스마트폰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다. 웹사이트는 대체 텍스트 입력, 캡션 입력 등 24개 평가항목이, 모바일은 18개 평가항목이 국가 표준으로 정해져 있다. 준수하지 않을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수위도 높다. 다만 실제 강력한 처벌로 이어지거나 소송까지 간 사례가 없기 때문에 일반 사기업에서는 신경써서 준수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안 총괄팀장은 “우리와 똑같은 표준을 사용하는 미국에서는 하나만 어겨도 소송감”이라며 “일례로 미국의 모든 뉴스는 자막이 나온다”고 말했다.

최근 변화 움직임도 있다. 2017년 시각장애인 963명이 대체 텍스트 제공 불이행을 이유로 SSG닷컴, 이베이코리아(G마켓), 롯데마트 등 쇼핑몰 세 곳을 상대로 1인당 2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내 지난 2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시각장애인의 불편을 인정받은 첫 판결이다. 재판부는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는 것은 법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일 뿐, 배려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시각장애인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은 해외 소송 사례와 차이가 있는 기업의 대처에 한편으로 아쉬움을 전했다. 미국의 경우 2006년 미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대형마트 ‘타깃’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소송에서 600만 달러(약 68억 원)를 받아낸 사례가 있다. 안 총괄팀장은 “당시 기업은 먼저 사과하고 합의를 통해 해결하며 기업 이미지를 향상시키려 애썼다”라며 “반면 국내에서는 소송의 당사자인 기업이 법규를 지키지 않겠다며 끝까지 싸웠다. 이겨도 이긴 기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좋은 기술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스마트폰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꼭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필요한 기술은 이미 충분히 확보돼 있다. 중요한 것은 적용이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의 도덕성에 기댈 필요가 없도록 규제를 반드시 이행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청각장애인이 쓰는 실시간 자막은 처음부터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기능이 아니다. 외국 영화에 넣은 한글 자막이 청각장애인에게도 도움이 됐다. 특정 상황에서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과 청각장애인이 똑같은 입장이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액정이 깨진 사람은 일시적으로 시각장애를, 팔이 골절된 사람은 지체장애를 겪는다. 접근성은 장애인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비대면 사회가 되면서 많은 일들이 스마트폰으로 이뤄진다. 장애인과 고령자, 어린이들까지 소외 되지 않고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기술은 본래 사람들을 돕기 위한 수단이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잘 쓰일 수 있는 것이 좋은 기술이다. 

청각장애인은 주로 영상통화를 사용하는데 갤럭시와 아이폰 간 영상통화 호환이 안된다. 동아사이언스DB

장애인 접근성 향상 스마트폰 기술 3

세계적 기술 기업과 스타트업이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려 노력 중이다. 대표 기술 3가지를 소개한다. https://m.site.naver.com/qrcode/view.nhn?v=0LtLR

1. 열려라 참깨! ‘오픈 세서미’

중증 운동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스마 트폰 제어 기술이다. 스마트폰에 ‘열려라 참깨(open sesame)’를 외치면 사용자의 얼굴을 스캔해 동작한다. 머리 움직임만으 로 원하는 부분을 클릭할 수 있다.

2. 점자 스마트 시계 ‘닷워치’

화면 대신 점자가 뜨는 스마트 시계다. 24 개의 돌기를 이용해 메시지를 점자로 표현 한다. 스마트폰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음악 재생, 건강 체크도 가능하다. 무게는 33g 으로 휴대성이 높다.

3. ‘음성 자막 변환 및 소리 알림’

구글이 2019년 출시했다. 인공지능이 음 성을 인식해 글자로 보여준다. 키보드를 활 용한 양방향 소통도 가능하다. 80개 이상 의 언어를 지원하며 경보음 등도 자막화할 수 있다.

*기사 본문을 읽을 수 없는 독자를 위해 오디오로 제공한다. 아래 URL을 이용해 음성 기사에 접속할 수 있다. 

https://m.site.naver.com/qrcode/view.nhn?v=0Lt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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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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