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이즈백] 저그의 역사, 스포츠맨십의 사나이 '목동 저그' 조용호

김종민 기자 2021. 4.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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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N스포츠 김종민 기자] '폭풍' 홍진호, '투신' 박성준, '폭군' 이제동...

스타크래프트1 브루드워의 저그 프로게이머들은 각자의 스타일을 정립하며 발자취를 남겨왔다.

그렇지만 이들의 호칭은 단순히 개인의 개성만으로부터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이전 패치에서 주춤했던 테란의 급부상, 맵의 밸런스, 프로토스의 빌드 최적화에 맞춰 저그도 그에 맞는 전략과 운영법을 개발했고, 저그 게이머들이 제시한 해법들이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과 별명으로 이어졌다.

이 중에서 1세대 프로게이머와 드래프트 세대 사이의 연결과 스타크래프트 빌드 연구의 역사를 상징하는 별명이 있다면, 단연 '목동 저그'다.

하이브 위주의 병력 운용, 한 방 병력에 대응한 힘 싸움을 통해 저그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던 목동, 조용호가 활약했던 시대로 돌아가 보자.

사진=OGN 영상 캡처

■ 저그의 약점, 레어 단계를 극복하려던 시도

조용호는 임요환-홍진호-김정민 등으로 대표되는 1세대 게이머와 '택뱅리쌍'으로 대표되는 드래프트 세대 사이의 게이머다.  2000년 데뷔해 임요환이 언급하는 강자로 두각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우승과는 묘하게 인연이 없었는데, MBC게임 KPGA 리그와 파나소닉 배 스타리그 2002에서 이윤열에게 연달아 패배했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난항을 겪던 팀 '소울'에서 준우승을 견인하며 그의 플레이 스타일인 '목동' 만큼은 팬들의 기억에 확실히 남았다.

당시 테란은 저그를 상대로 임요환이 제시한 마이크로 컨트롤 및 흔들기 운영과, 김정민을 필두로 한 방 병력 조이기의 두 가지 갈래를 선보였다. 테란은 두 가지 빌드를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더블 커맨드라는 무기도 개발했다

저그에게 있어 문제는 테란의 한 방 병력이었다. 더블 커맨드를 성공한 테란은 저그와의 힘 싸움에서 쉽게 이겼다. 한 덩어리의 병력을 모아 센터에 진출해서, 저그의 멀티를 연달아 미는 '순회 공연'도 가능했다.

김현진의 한 방 병력에 무너졌던 조용호, 사진=OGN 영상 캡처

조용호는 레어 단계의 유닛으로는 승리가 어렵다는 것을 느껴, 테란을 상대로 버티며 울트라리스크 위주의 병력을 구성하는 전략을 펼친다. 그 결과 KPGA 리그에서 당시의 강자인 김현진, 임요환을 제압하고, 이윤열을 상대로도 결승전 3대2로 접전을 펼친다. 조용호가 따냈던 두 경기에서는 목동 저그의 진수가 발휘돼, 울트라리스크와 가디언이 활약한다.

조용호의 목동 저그에 휘둘린 이윤열, 사진=MBC게임 영상 캡처

그러나 이어진 파나소닉 배 스타리그 결승에서 이윤열은 '타이밍 러시'라는 해법을 들고 나와 목동 저그를 무너뜨렸다. 저그가 하이브 체제를 완성하기 전에 제압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윤열의 타고난 센스로부터 기인했다.

레어 단계의 조용호를 견제하는 이윤열, 사진=OGN 영상 캡처

당시 경기는 지금으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2002년의 유산이지만, 여전히 스타크래프트1에서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힘 싸움으로 저그를 상대하느냐, 타이밍 러시로 제압하느냐다. 3가스 저그를 상대로 타이밍 러시를 선보일지, 탱크-사이언스 베슬 등으로 한 방을 준비할지의 문제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빌드 중에서도 타이밍과 한 방을 모두 잡는 레이트 메카닉, 타이밍에 대한 감각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1-1-1이 결국 이러한 철학에서 출발한다.

■ '롱 런' 끝에 우승하다.

비록 조용호는 패배했지만, 그의 목동 저그 플레이 스타일은 3해처리 운영, 3가스 디파일러-4가스 울트라리스크 등 저그의 핵심적인 전략을 체계화하는데 기여한다.

조용호의 커리어는 2002년의 패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꾸준히 MSL과 스타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며 팀리그에서도 준우승의 호성적을 2006년까지 이어나갔다. 2003년에는 프로토스전 25승 7패, 78.13%의 승률로 선전하며 '럴커 조이기' 등을 적극 도입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프로토스전 경기력을 두고 '1년에 한 번 진다'는 문장이 나돌기도 했다.

그렇지만 개인 리그에서의 우승은 아직 이루지 못한 그의 숙원이었다. MSL에서 10연속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지만 서지훈, 박정석 등에게 번번히 가로막히며 4위권에 머물러야 했다. 박정석과의 혈전에서는 다크 아콘의 멜스트롬에 병력을 잃으며, 프로토스의 명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멜스트롬 샤워, 사진=MBC게임 영상 캡처

데뷔 후 6년에 가까운 시간, 끝내 2006년 CYON MSL에서 우승하고 신한은행 스타리그에서도 결승에 도달한 조용호. 스타리그 결승에서는 한동욱을 상대로 패배하긴 했지만, 테란이 유리한 맵으로 평가받는 러시아워에서 특유의 하이브 운영으로 1세트를 잡아내기도 했다.

전성기 이후에 다시 전성기를 쓴 조용호. 그는 2008년에 갑작스럽게 은퇴하며 팬들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조용호의 우승, 사진=MBC게임 영상 캡처

■ 역사의 상징, 스포츠맨십을 갖춘 천재

스타크래프트1 역사를 보면, 각 종족의 전략은 심리전 및 빌드 최적화, 맵에 맞는 심시티, 컨트롤의 발전과 함께 체계화됐는데 이들이 모두 동시에 발전했던 것은 아니었다.

테란의 계보는 최초로 심시티-컨트롤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임요환, 최적화 빌드 오더를 설계한 최연성, 타이밍 러시를 기반으로 유연한 대처를 선보였던 이윤열에 이어 종합 최종 병기 이영호로 이어졌다.

프로토스는 저그전의 경우 단연 더블 넥서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외에도 테란전의 리버-캐리어 운영에서 패스트 아비터, 속업 셔틀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강민-송병구-김택용을 따라간다.

저그는 홍진호-조용호를 바탕으로 운영이 체계화되며, 그 '볼드모트'를 거쳐 운영으로는 정석이 마련됐다. 운영에 더해 특유의 컨트롤로 더 많은 변수를 창출했던 박성준, 이제동이 최전성기를 자랑했다.

조용호는 이처럼 당대의 화두였던 테란과 프로토스의 '한 방'에 맞서 새로운 전략과 해법을 제시했고, 이는 다음 세대에 계승됐다.

사진=OGN 영상 캡처

한편, 조용호는 천재로 불리기도 했다. 천재는 이윤열을 대표하는 칭호이지만, 유수의 프로들에게 조용호는 또 다른 천재로 꼽혔다. 김정민, 박정석, 이영호는 조용호를 두고 '천재 스타일', '만화에 나오는 천재' 같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이영호는 "특유의 독창적인 빌드를 경기에 나가기 전에, 그것도 한, 두 게임 만에 짜기도 했다"라며, "그와 비슷하게 연습해서 (나는) 성적이 떨어졌다"고 언급했다. 조용호는 이에 "내 연습 방식 말고 너만의 방법을 따라가길 바란다"는 조언을 이영호에게 건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조용호는 특유의 인사와 악수로도 유명했다. 승패를 떠나 게임이 끝나면 상대 선수석으로 찾아가 인사와 악수를 나눴다.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갖췄을 승부욕, 승리에의 열망을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하지 않고, 성숙하게 스포츠맨십을 보여줬던 사례다.

인사를 청하는 조용호, 사진=OGN 영상 캡처

조용호는 은퇴 후 스타크래프트와는 관련 없는 일을 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이벤트 전에 참가해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근황이 알려지지 않다가, 2019년 강민, 홍진호 등 올드 게이머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그는 자신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스타크래프트 빌드가 다 누군가는 했던 것이라, 원조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라며 "결국 그 빌드를 완성하는 선수들이 뛰어난 것"이라며 여전한 스포츠맨십과 겸손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어디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가든, 프로로서의 자세를 갖췄을 그의 건승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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