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부진 100가지 핑계 중 마지막은?

정현권 2021. 4. 1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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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물바다 만들고 17만불 변상
골프백 연못에 던지고 다시 온 이유
골프 안될 때 각양각색 화풀이 유형?

[라이프&골프] 일본의 마쓰야마 히데끼(29)가 동양인으론 처음 마스터스에서 우승해 큰 화제를 모았다.

최경주 3위(2004년), 임성재 2위(2020년)에 이어 결국 히데끼가 명인열전을 접수한 세기적 사건이다. 한국 선수 김시우(26)도 공동 12위에 올라 탄탄한 실력을 뽐냈다.

정작 김시우에게 눈길이 간 건 그린에서 우드로 퍼트를 한 장면이다. 김시우는 둘째 날 본인 플레이에 불만을 품고 퍼터를 내리쳐 샤프트를 망가뜨렸다.

4홀 전부터 홀을 미세하게 벗어나는 퍼트에 쌓인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골프규칙상 고의로 손상한 클럽은 교체하지 못해 이후 3번 우드로 퍼트를 했다. 다행히 남은 3홀은 짧은 거리여서 모두 파를 잡았다.

골프라는 게 잘될 때와 안될 때가 있게 마련이다. 주말 골퍼라면 맘먹은 대로 공이 날아가거나 신들리듯 홀에 들어가는 날이 있지만 반대의 경우가 더 흔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이 잘 맞으면 희열에 차지만 그렇지 못할 때 반응은 제 각각이다. 먼저 캐디 전가형이다.

이런 유형은 클럽 휘두르는 것을 빼곤 모든 것을 캐디에게 의존한다. 항상 남은 거리를 물어보고 그린에서 마크와 라인 읽기를 전적으로 캐디에게 맡긴다.

목석처럼 서 있다가 불러주고 읽어주는 대로 치고 퍼트를 한다. 시키는 대로만 하기에 당연히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캐디 탓으로 돌린다.

"라인 읽기와 거리 측정이 설령 맞더라도 본인의 임팩트와 샷 정확도가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 아닌가. 모든 것은 본인 책임이라고 생각해."

필드에서 거리 측정과 라인 읽기를 전적으로 본인이 알아서 해결하는 친구의 말이다. 필자도 캐디에게 조언을 받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포기하고 내가 직접 해결한다. 괜히 붙잡고 실랑이를 벌여봤자 동반자를 불편하게 하고 나의 멘털도 무너진다.

파괴형도 의외로 많다. 이번 김시우 사례다. 예전에 타이거 우즈, 세르히오 가르시아, 존 댈리 등 유명 선수들도 분을 삭이지 못해 클럽을 내리찍거나 망가뜨렸다.

홍천 비발디파크CC에서 직장 후배와 타당 1000원 스트로크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핸디캡 차이가 나기에 동반자들이 총 5만원을 모아 주고 게임을 시작했다.

전반 라운드가 끝나기도 전에 받은 돈을 모두 잃은 그가 어느 홀에서 버디 기회를 잡았다. 내리막 경사에서 첫 퍼트가 짧았던 게 화근이었다. 결국 포 퍼트 참사를 초래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되면서 퍼터로 공을 그린 밖으로 세게 쳐내버리는 게 아닌가. 근처 연못으로 공이 빠져버렸는데 웃음과 안타까움이 교차했지만 아무도 내색할 수 없었다.

"클럽으로 가볍게 잔디를 찍거나 나무를 치면 별문제는 없죠. 어쩌면그런 행위도 골프의 한 요소라 할 수 있죠. 감정 표출도 갤러리에겐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고요."

김태영 한국대중골프장협회 부회장의 말이다. 과하지만 않다면 가벼운 분풀이도 골프의 흥미 요소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을 학대하는 자학형도 있다. 뒤땅, 토핑이 나오거나 아슬아슬하게 퍼트에 실패하면 자해하는 유형이다. 본인에게 욕을 하거나 머리를 쥐어뜯는다.

'바보' '지랄' 같은 단어는 예사고 '죽어라' '꼴깝하네' 등 평소 점잖은 입에서 상상하기 힘든 기괴한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필자의 고교 동창과 옛 직장 동료 가운데도 이런 유형이 있다. 평소엔 매너와 인격이 돋보이는데 필드에서 어처구니없는 샷이 나오면 돌변한다. 남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 않으니 그래도 참을 만하다.

체념형은 말이 없다. 스리 퍼트를 하고 나면 멍 하니 하늘만 바라본다. 그린에 고개를 박고 쭈그려 앉아 한숨만 쉰다.

클럽과 퍼터, 공을 떨어뜨린 채 주울 생각을 않는다. 옆에서 조용히 공을 집어주고 등을 두드리면서 달랜다.

어느 순간 경기에서 손을 떼는 자포자기형도 있다. 파5홀에서 OB 두 방으로 더블 파를 범하면 다음 홀부터 바로 무너지는 유형이다.

진지하게 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바로 명랑골프로 빠져든다. 때론 술판을 벌이면서 동반자를 같은 분위기로 몰고 간다.

술기운으로 화를 달랜다. 경기에 몰입하는 동반자들도 자칫 방심하면 말려든다.

투덜이형도 존재한다. 스윙이 맘에 들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쉼 없이 혼자 중얼댄다. OB를 내거나 페널티 구역으로 공이 날아가면 혼자 투덜대며 구석으로 가서 나 홀로 연습을 한다.

사실 대부분 인내형이다. 속으로 허탈하고 화가 치밀어도 내색하지 않고 평소처럼 행동한다. 더블 파나 트리플을 하고도 진지하게 타수를 줄여나가는 사람도 있다. 내면을 다스리는 진지한 모습이 감동적이다.

연속되는 실수를 범할 때 골퍼들의 공통된 반응이 있다. 티샷으로 OB를 내면 "어~" 하고 놀란다. 연속해서 아이언 샷으로 뒤땅을 치면 "왜 이러지?"하며 탄식한다.

급기야 그린에서 퍼트마저 실패하면 "오늘은 이상하게 안되네~"라며자책한다. 골프가 안 되는 100가지 이유 가운데 마지막이 바로 이 문장이다.

프로선수들의 엽기적인 분풀이 기록도 있다. 2001년 남아공 마스터스 2라운드에서 80타를 친 헤니 오토(45)는 경기를 끝내고 주차장에서 모든 클럽을 부러뜨려 근처 호수에 던져버렸다.

스페인의 세르히오 가르시아(38)는 2019년 사우디인터내셔널 3라운드에서 퍼터로 5개 홀 그린을 내려쳐 손상시켰다. 동반자들의 클레임이 받아들여져 실격처리됐다.

1999년 베이힐인비테이셔널에서 데이비드 러브3세(57)는 미스 샷에 화를 품고 샌드 웨지로 그린 주변을 내려졌는데 하필 스프링클러 덮개였다.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고 주최자인 아널드 파머(1929~2016)는 부품과 수리비를 포함해 17만5000달러를 청구했다고 한다.

존 댈리(55)는 1994년 NEC월드시리즈에서 뜻대로 안 되자 화를 못 참고 앞 팀이 시야에서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티샷을 날렸다. 공은 앞 팀 제프리 로스(미국)를 맞힐 뻔했다.

아무 일 없는가 싶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로스 아버지가 주차장에서 댈리를 덮쳤다. 일격을 당한 댈리는 허리를 다쳐 시즌을 접어야 했다.

동반자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화풀이는 용인할 수 있다. 기계가 아닌 이상 정도껏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오히려 인간적이다.

프로대회에서도 유명 선수의 가벼운 일탈 행위는 일종의 흥행 요소다. 갤러리나 시청자들도 그들의 실수와 화풀이에 일비일희한다. 스윙과 퍼트에 수반되는 감정 표출도 골프의 일부가 아닐까.

테니스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경기에 불만을 품은 조코비치(34)가 라켓을 코트에 내동댕이쳤다. 또 1970년대 실력으론 세계 테니스의 전설 비에른 보리(65)가 앞섰지만 인기는 코트의 악동 존 매켄로(62) 쪽이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업가가 불만족스러운 플레이에 분을 못 이기고 카트에서 백을 내려 연못에 던져버리곤 홀연히 떠나버렸다.

잠시 후 그가 무거운 얼굴로 돌아왔다. 백에 자동차 키가 들어 있었다. 전해 들은 이야기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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