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발 뺀 미국..탈레반 대신 중국 노린다 [박수찬의 軍]
조 바이든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아프간 주둔 미군을 9.11 테러 20주년인 9월 11일까지 완전 철수한다고 공식발표했다. 불안한 아프간 정세가 더 흔들릴 수 있다며 완전 철군에 반대하는 주장이 적지 않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철군을 밀어붙였다.
미군 2400명 이상이 숨지고 2조 달러(2246조원)의 군사비가 들어간 미국의 최장기 해외 전쟁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파괴, 살육, 절망. 1980년대 이후 아프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1980년대 옛 소련군이 전쟁을 벌였고, 1990년대에는 군벌들이 내전을 치렀으며, 2001년 9.11 테러 직후부터는 미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전쟁의 최종 승자는 탈레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1996년 집권한 탙레반은 2001년 미국이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간을 침공하자 산악 지대로 후퇴했다.
미국은 아프간에 친미 정권을 세웠지만, 탈레반은 끈질기게 저항하며 게릴라전을 펼쳤다. 그 결과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 도시는 아프간 정부군이 확보했지만, 도시를 에워싸는 지방 마을은 탈레반에 넘어간 모양새다.
1979년 아프간을 침공한 옛 소련군은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는데 200만 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유럽 등에서의 대치 국면을 감안하면 8만~10만 명으로 주요 도시와 도로를 지키는 게 한계였다. 결국 1989년 철군하고 만다.
미군 사정도 옛 소련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럽 동맹국 군대까지 동원했지만, 성과는 옛 소련군 수준을 크게 능가하지 못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개시한 아프간 전쟁의 목적은 알카에다 궤멸이었다. 하지만 아프간 현대화로 목적이 변질되면서 대테러 작전(알카에다 소탕)과 안정화 작전(탈레반 진압)이 뒤섞이면서 전쟁은 소모전으로 변해갔다.
‘단기간 내 치고 빠지는’ 대테러작전과 대규모 병력을 장기간 주둔시켜야 하는 안정화 작전은 함께 진행되기 어렵다. 그런데도 미군은 이같은 전쟁을 벌였고, 결과적으로는 알카에다 소탕도 아프간 안정화도 완료하지 못했다.
전쟁의 목적과 정당성도 희미해졌다. 미 워싱턴포스트(WP)가 2019년 폭로한 아프간 전쟁 관련 기밀문서는 이같은 양상을 잘 드러낸다.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프간전 고문 역할을 맡았던 3성 장군 출신 더글러스 루트는 “우리는 맡은 임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는 “누가 악당인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 종결이라는 공약 관철을 위해 탈레반과 직접 접촉했다. 그 결과 지난해 2월 탈레반과 올해 5월까지 철군을 마무리하겠다고 합의했다. 이후 1만5000명이던 아프간 주둔 미군을 2500여 명으로 감축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 결정으로 미군 2500여 명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7000명은 9월까지 철수한다.
이들이 사라지면 탈레반은 빠른 시간 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할 전망이다. 미군의 공습, 훈련, 물자 지원으로 버티던 아프간 정부와 군경은 탈레반의 공세에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고도로 훈련된 특수부대가 있으나 미군의 병참 지원이 약화되면 이들도 버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전쟁 당시 남베트남은 미국이 1973년 파리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철수한 뒤 2년 만에 무너졌다. 옛 소련군이 1989년 아프간에서 철군한 직후 집권한 모하마드 나지불라 정권은 1992년 탈레반에 패했다.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가능성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각도 많다. 2014~2015년 아프간에 진출한 이슬람국가(IS)는 아프간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린다. 각지의 부족들도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할 가능성이 있다.
20년 동안 미국을 괴롭힌 아프간에서 철수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표적’은 중국이다. 탈레반보다 중국이 미국에 훨씬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첨단 무기 확보 등 군사적 수단으로 중국을 독자적으로 압박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군사력 외에 정치, 경제, 사이버,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압박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14일(현지시간)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FBI가 10시간마다 중국과 관련된 새로운 수사를 개시한다며 “현재 중국 정부와 연계된 수사가 2000건이 넘는다”고 전했다.
레이 국장은 “경제 안보, 민주적 신념에 (중국보다) 더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국가는 없다”며 “우리 기업과 학술기관, 정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중국이) 갖고 있는 수단은 깊고 광범위하며 지속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대중국 견제도 강화되고 있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트럼프 전 행정부보다 더 활발하다.
존 아퀼리노 미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지난 3월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의 위협이 대만에 집중되고 있다”며 ”대만이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고,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대만을 지원하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중국의 대만에 대한 위협은 중국군 창군 100주년인 2027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며 동맹국, 우방국과 공조해 대응할 것이고 말했다.
미 해군은 지난 4일 동중국해에서 구축함 머스틴함 지휘관 2명이 수천m 떨어져 있는 중국 항모 랴오닝호의 항해 모습을 선상에서 여유롭게 지켜보는 사진을 공개했다.
지휘관 중 한 명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뻗어 난간에 올렸다. 동중국해는 미군이 통제한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전하는 ‘인지전’이다. 머스틴함은 지난 3일에는 양쯔강 하구 인근까지 접근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미 해군 핵항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는 4일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을 통과해 남중국해로 진입했다. 8일 추가로 남중국해로 온 강습상륙함 마킨 아일랜드함과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대만과의 외교적 밀착은 트럼프 전 행정부보다 더 강화되는 모양새다.
미국의 대만관계법 제정(4월 10일) 42주년을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에 보낸 비공식 대표단은 15일 차이잉원 총통을 만났다. 중국의 압박으로 외교적 고립에 직면한 대만에 힘을 실어주는 제스처다.
양측 모두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지속되면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 아프간 전쟁을 끝낸 미국은 중국 견제에 군사적 역량을 더 많이 투입할 여력을 얻게 됐다.
활용할 수 있는 군사적 옵션이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국과 중국의 군사·외교적 갈등과 긴장은 냉전 시절 못지 않게 심해질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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