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만 쿠폰 줘" 요즘 사람들 작은 차별도 못참는다

김동현 기자 2021. 4. 17.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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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 화두가 된 시대.. 기업들 '타깃 마케팅' 줄줄이 철퇴
차별

경기도 안양시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평촌점은 최근 ‘평촌 시그니엘 클럽’을 만들었다. 인근 안양·의왕·군포·과천의 21개 고급 아파트 입주민만 가입할 수 있는 ‘폐쇄형 클럽’이다. 가입자에겐 할인, 주차 쿠폰을 준다. 백화점 측은 아파트 단위로 마케팅을 세분화하기 위해 매장 인근 아파트 중 고객 매출이 높았던 곳들을 추렸다고 한다. 백화점은 광고 홈페이지에 ‘평촌점 인근의 대표 아파트 클럽을 의미한다’는 홍보 문구도 붙였다. 특정 계층을 노린 이른바 ‘타깃 마케팅’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누구 마음대로 대표 아파트를 지정하냐” “요즘 시대에 아파트로 사람 차별하냐”는 항의가 잇달았다. 불매운동 조짐까지 일자, 백화점 측은 지난 14일 이름을 ‘평촌 아파트 클럽’으로 바꾸고, 가입 대상도 해당 시(市)의 모든 아파트로 확대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의도치 않았던 의미가 부여된 것 같다”며 “반성하고 앞으로 서비스 제공에 더욱 조심하겠다”고 했다.

기업들의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인 ‘타깃 마케팅’이 최근 공정이라는 사회적 화두(話頭)와 맞물려 철퇴를 맞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이 축적한 성별·직업·거주지 등 데이터를 바탕으로 특정 고객에게 집중 판촉 활동을 펴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왜 고객을 차별하느냐”는 항의에 부딪히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국 사태'부터 최근 LH 투기까지, 공정과 차별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식은 앞서가는데 기업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최근 2030세대에게 인기인 온라인 패션 쇼핑몰 ‘무신사’도 여성 회원만을 위한 할인 쿠폰을 발행했다가 지난달 대표이사가 직접 사과까지 했다. “왜 성 차별을 하느냐”는 남성 회원들의 거센 항의 때문이었다. 이 업체는 작년 2월부터 여성 회원만을 상대로 매월 1일과 15일에 할인 쿠폰 3장씩을 지급해왔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한 남성 고객이 지난달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내가 다이아 등급(무신사 8개 회원 등급 중 최고)인데, 여동생 계정으로 사는 게 훨씬 싸다”는 글을 올리며 문제가 불거졌다. 회사 측은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 고객을 늘리기 위한 마케팅”이라고 해명했지만, 남성 회원들은 “남자가 (쇼핑몰을) 키웠는데 여자만 혜택을 주느냐”고 반발했다. 결국 지난달 8일 조만호 대표가 “명백한 실책이고 잘못”이라고 사과하고, 해당 정책을 접었다.

젊은 층이 많이 쓰는 음식 주문 앱 ‘배달의민족’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5년째 연예인, 유튜버·블로거 등 인플루언서(영향력이 큰 유명인)에게만 “주변인에게 나눠주라”며 1만원짜리 할인 쿠폰을 제공해 왔는데, 한 가수가 이를 자랑하듯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뒤 거센 반발에 직면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치킨·짜장면을 수년째 시켜먹어 간신히 VIP 고객이 돼도 1000원 할인해주더니, 유명인에겐 할인 쿠폰을 뭉텅이로 주느냐”고 항의했다. 젊은 MZ(밀레니얼·Z)세대가 중시하는 ‘공정’이라는 가치를 들고 나온 것이다. 결국 배달의민족은 “일부를 위한 특혜로 이해될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기업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이제 물건 잘 만들었다고 팔리는 시대가 아니고 이런 소비자의 감수성을 파악하는 게 더욱 중요해진 시대”라고 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타깃 마케팅은 그동안 기업들이 관행적으로 해오던 기법”이라며 “기업들이 고객 목소리를 더 민감하게 반영하면서 영업·마케팅뿐만 아니라 회사 정책 전반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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