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잘해서 이긴 것 아니다"더니 넋 놓은 '야권'

한기호 2021. 4. 17.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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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자 폭행' 송언석 탈당까지 무려 일주일
前비서실장 사건 말 없는 김종인, "안철수 건방져" "아사리판" 어깃장
安측 합당 미루기, 국힘은 '영남권 때리기' '당원투표 배제' 시비
차악이면 끝? 유권자 피로감 임계치 넘을 수도
지난 4월8일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4·7 재보궐선거 이후 여야가 동시에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친문(親文)이냐 탈문(脫文)이냐' 날마다 집안싸움이다. 진성 권리당원들이 앞장서 문재인 대통령이 용인하던 '양념'을 일선 정치인들에게 가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그동안의 '공당답지 않은' 태도를 이어갈지 말지 기로에 섰다. 선거 패배 후 책임·노선 공방이니 예견된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야권은 재보선 압승을 거두고도 스스로 쪼개지고 있다. '정당같지 않은' 탈(脫)상식으로 향하고 있다. 드러난 폭행사건조차 뭉갤 뻔한 무능, 막말과 이중잣대, 노선 부재, 불투명성 등 구태 투성이다. 선거 승리를 "국민의힘이 잘해서, 예뻐서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던 게 무색해졌다.

재보선 만 일주일 뒤인 15일, '야당의 승리 이유'를 물었더니 민주당과 전직 광역단체장 잘못 때문이라는 게 약 80%, 국민의힘이 잘해서라는 이유는 한 자릿수 비율에 그쳤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된 건 우연이 아니다. 야권은 재보선 당일부터 충격을 줬다. 송언석 의원(경북 김천시·재선)이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에서 '자신의 자리가 마련돼있지 않다'는 이유로 당직자를 폭행하고 욕설했다. 당 구성원들은 물론 취재진까지 다수가 목격했다. 언론 보도보다 당 사무처 노조 성명이 먼저 나와 송 의원의 탈당부터 요구했을 정도로 큰 파장이 예고됐다. 사건 직후 즉각적인 윤리위 '징계'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당내에서 나왔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사건 닷새 만인 12일에야 공개 사과하고 윤리위 '회부' 사실을 알렸다. 늑장 대처의 배경이 잠재적 당권주자의 TK(대구·경북) 동료 의원 봐주기였는지, '직전 비상대책위원장 비서실장' 체면 세워주기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폭행 사실도 쉽사리 인정하지 않던 장본인이 공개 사과하고 당을 떠나기까지는 이틀이 더 걸렸다.

재보선 이튿날(8일) 승장(勝將)의 명예를 얻고 퇴임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기행도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직전 비서실장의 당직자 폭행 사건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야권통합에 어깃장만 놓았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 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재보선 압승을 "야권의 승리"로 자축한 것을 두고 "건방지다"고 비난했다. "안철수는 '국민의힘 승리'를 축하해야 했다" "3자 대결로 해도 우리가 이겼다"면서다. 그는 불과 지난달 23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야권 단일화가 성사된 직후 안 대표에게 "그동안 야권 흥행을 위해 노력 해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했었다. 인터뷰가 이틀의 시차를 두고 11일 보도된 것을 미루어 '계산된 도발'이었다. 이후로는 측근 성일종 비대위원이 바통을 넘겨 받아 '김 전 비대위원장이 안 대표를 국가 지도자감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는 메시지를 거듭 발산해 긴장을 높였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2012년 대선(새누리당), 2020년 총선(미래통합당), 이번 재보선까지 함께 한 '친정' 격인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독설을 쏟아냈다. 국민의당과 합당 추진 약속을 이행하려는 국민의힘에 "무슨 대통합 타령이냐"라며 지난해 총선 참패를 꼬집었다. "바깥을 기웃거리지 말고 내부를 단속하라"고도 했으나 자신의 행동은 정 반대였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퇴임 당일부터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대선 관련 '조언'을 할 가능성을 내비친 터다. 13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선 국민의힘을 "저 아사리판"이라 지칭하며 윤 전 총장의 입당 가능성을 차단하려 들었다. 이와 함께 "금태섭 전 의원이 말한 새로운 정당으로 가는 상황이 전개될지도 모른다"더니 김 전 비대위원장 본인이 금 전 의원과의 16일 만남 약속을 잡아 '제3지대 윤석열 신당' 관측을 유도했다. 이외에도 그는 "의원들이 정강·정책에 따라 입법 활동하는 것도 전혀 안 보인다"며 국민의힘 대선 불가론을 폈지만, '경제민주화 정강정책'을 세워놓고 재보선에선 민간 개발 활성화와 부동산 감세 공약 '우클릭'으로 표심을 호소한 직후 발언으로는 어색하다.

여타 구성원들도 유권자 피로감 확대에 일조한다. 안 대표 측은 선거 직후 별안간 '국민의힘 혁신'을 걱정하며 합당 이행과 거리를 두고, 이달 하순 무렵으로 당의 결정을 미뤘다. 선(先) 합당 후(後) 전당대회 출마 밑그림을 그리던 주 권한대행은 합당부터 마무리 지으려는 듯 거취를 미루다가 원내대표 사퇴 압박에 떠밀려 직을 내려놓게 됐다. 4선 이상 중진 그룹은 대다수가 '윤석열·안철수 러브콜'로 일관한데다, 재보선 이후 첫 연석회의에서 '비공개 회의 발언 폭로' 등 구태를 동원해 당권 다툼을 노출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 56명 중 42명은 선거에서 이기자마자 집단성명으로 "특정 지역 중심의 정당을 탈피하겠다"고 영남권 중진들을 겨눴다. 어쩐지 초선의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아가 당원의 의사결정 참여권에 손을 대는 시도도 잇따랐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할 때 현행 30%인 국민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100%까지 높이자는 주장이 나왔다. 부산 해운대갑 3선의 하태경 의원은 SNS로 연일 "100% 국민 전당대회로 우리 당 혁신하자"면서, 당원의 8할이 50대 이상이라는 분석을 논거로 들었다. 가까운 예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본경선을 100% 여론조사로 치르면서 국민의힘 책임당원 투표가 배제됐는데, 선출직 공직자 후보가 아닌 당 지도부를 뽑는 데에도 적용하자는 격이다. 당권주자 일원인 5선의 조경태 의원은 "당원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반응했고, 초선 주자인 김웅 의원 역시 "정치는 대의명분인데 원칙에도 어긋나고 도의에도 어긋난다"는 의견을 냈다.

이처럼 야권이 차악(次惡)에 안주한 채 각자도생만 노리다 보면 유권자들이 '심판 대상'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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