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못 읽는 운동권 정치인들..퇴장하는 게 역사에 이바지하는 것"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진보가 선거에 참패한 이유
지난 1월 4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5급 비서관 채용 공고를 냈다. 사흘 만에 공고 조회가 7500회가 넘었다. 한 국회 보좌관은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데, 저 방(의원실)에 가면 스트레스 안 받고, 자유롭다는 소문이 났다”고 했다. 조 의원실은 인턴 직원부터 의원까지 모두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여 부른다. 기자가 “의원님을 만나고 싶다”고 보좌진에게 말하자 “정훈님 스케줄은…” 하는 답이 돌아왔다. 조 의원은 “님 호칭을 써서 가장 득을 보는 사람은 나다. 회의하면 모든 보좌진이 다 아이디어를 낸다. 10명의 아이디어를 내가 어떻게 따라가나”라고 했다.
조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위성 정당에 참여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가 속한 ‘시대전환'은 원내 1석만 가진 소수 정당이다. 태생이 그러하기에 범여권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에 쓴소리를 쏟아내 화제가 됐다. 정부가 일자리 대책으로 내놓은 ‘한국판 뉴딜’에 대해 ‘쓰레기 일자리’라고 했고, 북한의 개성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에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조 의원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국제개발정책학(석사)을 전공하고, 15년간 세계은행에서 근무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지만, 민주당 박영선 후보로 단일화한 뒤 박 후보를 도왔다. 그러나 민주당이 참패하리라는 걸 유세 현장에서 느꼈다고 했다. 그는 참패 원인을 일으킨 민주당 586 세력에 대해 “맡겨진 역할을 했으면 퇴장하는 게 역사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집 한 채 갖는 걸 죄악시한 ‘무지'
-서울시장 출마 선언은 왜 했나?
“갑자기 생긴 선거를 놓고, 많은 후보가 출마를 고민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울을 강자가 사는 도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사는 도시로 만들고 싶었다. 나왔던 사람이 또 나오는 선거가 아니라 새로운 정책과 새로운 인물, 큰 변화를 이끄는 정책을 제시하고 싶었다. 물론 인지도가 낮고, 서울시장 후보로 등록하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니 반대도 있었다.”
-그런 비전이 있었으면 끝까지 완주해야지, 왜 단일화에 응했나.
“2월 말이 되니까 민주당에서 먼저 제안이 들어왔다. 단일화는 정책과 인물이라는 두 분야 여론조사를 통해 진행됐다. 우리는 1인 가구 역차별 개선 정책, 반려동물 정책 등을 냈는데, 여기서는 우리가 이겼다. 인물 여론조사에서 밀려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민주당 관계자도 우리가 선전한 걸 보고 ‘큰일 날 뻔했네’ 하더라.”
-민주당이 참패했다.
“유세를 나가 보면 민주당원이나 유세 활동원들만 보였다. 박영선 후보와 함께 진보 진영에 속하는 직능 단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분들 반응도 싸늘했다.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에는 내가 홍익대 주변에서 박 후보 찬조 연설을 했다. 지지자나 당원들만 모이는 집토끼 유세였는데, 내가 ‘민주당 혼나야 한다’고 말했더니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더라. 민주당 부천시 의원이라는 한 분이 내 연설을 듣고 문자를 보냈다. ‘당신 말이 옳다’고.”
-패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겸손과 실력이 부족했다. 범여권이 180석 갖고 있어서 모든 것을 다 뜻대로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게 정치다. 100을 전부라고 봤을 때, 65 정도를 얻었다면 나머지 35는 내줘야 한다. 그런데 다 먹겠다고, 조금도 양보 안 하겠다고 마음대로 했다. 내로남불도 보였다. 그러니 국민이 화가 난 거다. 또 하나는 실력이다. 정치는 의지와 희망만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시장을 이기려는 정치인과 세력이 이긴 적이 없다. 자기 집 부엌을 더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개혁을 해야 한다. 시장을 막고, 부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했다.”
-부동산 시장을 말하는 건가.
“부동산으로 절대 돈 벌어선 안 된다는 말은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맞지 않는다. 나는 1992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그때 친구가 얼마나 잘사는지 보려면, 초·중·고 때 이사를 몇 차례 했는지 보면 대충 알 수 있었다. 메뚜기처럼 이사를 많이 다녔다면 부자였다. 아파트 청약을 받고, 또 받으면서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렸기 때문이다. 우리 선배들, 586세대가 그렇다. 주공 아파트를 사들여서, 노동소득(월급)을 자본소득(아파트)으로 이전할 기회를 누리고 살았다. 그래서 지금 현재 비싼 아파트를 보유하게 된 거다. 그 사람들이 지금 와서 후배 세대에게 ‘너희는 평생 일해서 먹고살아라’ 한다. 자기가 소유한 아파트를 수십억으로 만들어 놓고서, 후배들에게 너희는 임대주택에서 살라고 한다.”
-집권 세력이 갖추지 못했다는 실력은 뭔가.
“우리는 자유시장주의, 개인이 우선시되는 공동체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에서 혁신과 경쟁이 건강하게 이뤄지려면 다양한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집권 세력은 투쟁과 쟁취로 민주화를 이뤄낸 세대다. 탄핵과 촛불로 박근혜 정부를 넘는 역할은 필요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역할을 했다고 급격히 전환되는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산업화 세대에게 민주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듯이, 그들이 현대사회를 이끌어가기에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운동권 훈장은 하나도 없다. 운동권 훈장 없다는 게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념 진보? 우리는 생활 진보다
그는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공인회계사가 됐다. 그러다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002년에 세계은행에 채용돼 15년간 일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을 놓고 우리나라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과 경쟁했던 응고지 오콘조 이웨알라 현 WTO 사무총장이 그의 상사였다.
-공인회계사를 포기했다.
“대학교 다닐 때 여자친구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려고 했다. 처가집에 뭐라도 보여줄 게 있어야 하던 상황이라서 공인회계사 시험을 쳤다. 한 1년여 공부했는데, 커트라인에 걸려서 가까스로 합격했다. 회계법인 들어가서 시보로 회계사 생활을 하면서, 기업들의 연결재무제표 대차(貸借)를 맞추는데, 잘 맞지가 않았다. 그런데 경리하시던 여직원 분은 ‘그것도 모르냐’며 대번에 찾아 알려주더라. 회계사일이 나와 안맞다는 생각하던 찰나에 학생회관에 당시 선경 그룹 최종현 회장이 지원하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이라는 데서 해외 유학 장학생을 선발한다는 공고를 우연히 봤다. 합격하면 1년에 3만5000달러라는 큰 돈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경영학 분야에 지원했지만, 당시 나는 4.3 만점에 학점이 3.0을 간신히 넘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시험에서 어려운 연결재무제표를 만드는 문제가 출제가 됐다. 내가 회계사를 낮은 성적에 합격했지만, 그래도 회계사보다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겠나. 합격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날 준비를 했다.”
-왜 경영학 공부를 계속하지 않았나.
“미국 대학원 10곳에 지원서를 냈다. 아내는 내가 유학 간다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송별회를 수십번했다. 그런데 단 한 곳도 합격시켜준 곳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만하고, 까불었기 때문에 떨어진 거 같다. 당시 너무 쪽팔려서 일단 아내의 먼친척이 있는 미국 시애틀로 무작정 떠났는데, 돈이 없었다.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금도 일단 대학원을 합격해서 학교를 다녀야 받을 수 있었다. 한달에 300달러, 최저 생계비 이하로 살았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마트의 페코너에 가서 애완동물이 먹는 고기를 사먹었다. 이전에는 경영학과 교수가 되고 싶었는데, 그때 이왕 공부할 거면 국가 단위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그래서 10곳에 원서를 넣었는데, 이번에는 10곳 모두 합격통지서가 날라왔다. 이런게 운명 같았다. 그래서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 가서 국제개발을 전공하게 됐다. 그렇게 이제 돈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을까 했는데, 선경에서 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합격한 분야가 경영학이니, 경영학 관련 분야에 지원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또 빈털터리로 기숙사에 들어갔다. 돈이 없어서 학교 등록금을 못낼 처지여서, 학교 가서 사정을 했다. 내가 한달치 등록금을 낼 수 있으니까, 한달만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그렇게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원래 학비 전액 장학금을 받을 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모친상을 당해서 급하게 누굴 찾을 수도 없어서 그 장학금을 그냥 나에게 주겠다는 거였다. 뭔가 운명이 있는 거 같았다.
-세계은행에서 일한 경험이 화제였다.
“2년간 했던 석사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 반드시 박사가 돼야겠다고 했는데, 또 떨어졌다. 그래서 세계은행에 지원했다. 8년 이상 경력자를 대상으로 직원을 뽑는다고 공고가 났는데, 경력이 없었지만 그냥 미친척하고 한번 지원서를 냈다. 물론 떨어졌다. 그런데 한달 뒤에 세계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1년에 150일 정도 일하는 임시직에서 일해 보겠냐고, 그렇게 세계은행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됐다. 세계은행은 지원국에는 엄청난 양의 돈을 주기 때문에 해당 국가의 경제정책에 깊숙이 관여를 한다. 그리고 매년 YP 라고 젊은 전문가를 뽑는다. 여기에 선발되면 우리나라 고시처럼 합격하면 곧장 세계은행 중간간부가 된다. 1년에 30명을 뽑는데,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등에서 속한 전세계 사람들 1만여명이 지원한다. 한국인은 보통 3~4년에 한명 정도 선발된다. 임시직으로 있던 시절이어서 나도 그 시험에 합격했다.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남편 노릇한다고 생각했다. 첫 부임지가 나이지리아였다. 정말 나라의 힘이 약하면, 이렇게까지 비참해진다는 점을 알게됐다.
-왜 그런가.
“내 첫 부임지가 나이지리아였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선진국에 빚을 깎아달라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재무장관이 응고지 현 WTO 사무총장이다. 나는 응고지 장관 보좌관으로 일했다. 그가 미국·중국·영국·프랑스 등으로 뛰어다니며 빚 깎아달라고 선진국에 사정할 때 옆에서 봤다. 그런데 선진국들은 그를 노골적으로 하대하더라. 장관인데 장관 아래 직급이 그를 응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응고지 장관이 임무를 완수하고 나이지리아 국영방송에 출연했다. 응고지 장관은 굉장히 냉철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데, 방송에서 펑펑 울었다. 그만큼 서러웠던 거다.”
그는 2016년 향수병(鄕愁病)을 이유로 귀국한 뒤 “이념이 중심이 아니라 국민 생활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정치를 시작했다. 지난해 2월에는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시대전환’이란 정당을 만들었다. 운동권을 훈장으로 내세운 기존 진보 진영 정치인들과 달리 공인회계사, 세계은행 근무 같은 경력에 권위적이지 않은 진보 정치인이란 소문이 나면서 그를 주목하는 젊은 층이 늘어났다.
-정부의 뉴딜 정책을 쓰레기라고 비판했다.
“취업 준비생이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노량진에서 3~4년 고생하고 공무원 되는 게 제일 나은 사회가 됐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재앙이다. 세금 낸 사람보다, 세금 쓰는 사람들이 더 편하면 어려운 세상이 되고, 세금 낸 사람들이 세금 쓰는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면 올바른 세상이 된다. 작년 말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공무원 사기 진작하겠다며 급여를 0.9% 올린다고 했을 때 정말 화가 났다. 지금 세금 내는 사람들은 파산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인데, 자기 맡은 일을 했다고 월급을 올려준다는 거다. 그것도 기본급을. 기본급을 올리면 나중에 지급해야 할 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민이 설득되겠나. 그런데도 정부는 민간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이 산을 저기로 옮기면 돈을 주는 것처럼 군대 사역 같은 일을 공공 일자리로 내놨다. 세계은행에서 ‘공공 일자리(public work program)’ 프로그램 많이 해 봤는데, 이런 정책은 매우 못사는 나라에나 적합한 것이다.”
-민주당 비례 위성정당에 참여해서까지 국회의원이 돼야 할 이유가 있나.
“산업화를 이룩한 아버님·어머님, 민주화를 이룩한 형님·누님, 그 다음 정치세력이 줄 서기가 아니라, 스스로 세력화하는 정치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우리 뒤에 누가 있다 뭐라고 소문이 났는데, 아무것도 없다.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돈버는 것 보다 이게 훨씬 어려웠다. 작년 초 정당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정당이 3%를 얻으면 최소 한 석을 가져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보고 시작했다.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작년 총선은 두 팀만 하는 축구처럼 룰이 바뀌었다. 제3지대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만든 건 정당이고, 원내 의석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민주당 비례정당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에 반발해 당원 200~300명 정도가 탈당했다. 충분히 이해했다.”
-진보 진영 지지를 받아야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텐데, 왜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나.
“우리 선배 세대의 진보는 이념 진보인데, 내가 추구하는 것은 생활 진보다. 약자들, 목소리 내지 못하는 사람들 대변하고, 그들이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나는 이것을 생활 진보, 신진보라고 말하고 싶다. 진보 내부에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고, 비판 목소리가 건강하게 들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패배 직후 민주당에서 반성과 쇄신 목소리가 나왔지만, 강성 친문 세력은 이를 조롱하고 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새로운 진보를 구상하려는 세력과 자신들이 느끼기에 좋았던 시절의 유효기간을 연장하려는 세력의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다. 유효기간 연장을 원하는 세력은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도 자기네가 가는 길을 더 열심히 가야 했다고 주장한다. 상당한 오판이다. 이렇게 큰 표 차로 졌는데도, 국민 메시지를 완전히 잘못 읽은 것이다. 국민들은 검찰 개혁도 적폐 청산도 좋지만 이제 정치의 무게중심을 시민들의 퍽퍽한 삶 개선에 두라고 명령했다. 국민은 언제나 옳다.”
-민주당과 맺은 관계는 어떻게 할 예정인가.
“민주당은 오늘을 관리하는 정당이고,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는 정당이다. 이 시대의 머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가리키고,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다. 우리가 주장하는 주 4일제 같은 정책을 욕하는 사람도 있지만, 곧 대세가 되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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