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 1등 공신.. 알고 보니 윤석열과 아파트
4·7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깨알 데이터로 복기해보니
지난 7일 서울 전역이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공산당 얘기가 아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얘기다. 이날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은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전승(全勝)했다. 불과 3년 전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서울 전체 자치구에서 승리했던 결과가 정확히 거꾸로 뒤집힌 것이다. 정치권에선 박 전 시장의 성추문으로 인해 열린 보궐선거라는 점, 현 정권에 대한 심판여론, 2030 지지층의 이탈 등의 이유를 압승 배경으로 꼽지만 데이터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좀 더 큰 맥락에서의 그림이 드러난다. <아무튼, 주말>이 야당 압승의 진짜 숨은 이유를 짚어봤다.
① 130만표는 어디로? ‘샤이 진보’는 없었다
오세훈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총 279만8788표를 얻어 3번째로 서울시장이 됐다. 득표율로 치면 57.5%다. 오 시장은 2006년 처음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될 때도 61.5%의 득표율로 압승했다. 하지만 이번엔 2006년보다 40만표 가까이 더 많이 받았다. 2006년 선거는 당시 여권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열돼 3자 구도에서 치러졌다. 사실상 여야 양자 구도였던 이번 선거와 직접 비교가 어려운 이유다. 3년 전 서울시장 선거도 3파전이었다.
따라서 이번 보궐선거와 가장 비슷한 구도는 2012년 대선이다. 제3지대 없이 새누리당 소속 박근혜 후보가 민주통합당 소속이던 문재인 후보와 맞붙었다. 보수·진보 양 진영 공히 지지자를 총동원하는 총력전 양상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와 닮았다. 여기서 박근혜는 서울에서 302만표(득표율 48.1%)를 얻었고, 문재인은 322만표(51.4%)를 얻었다. 대선에선 박근혜의 보수 진영이 승리했지만, 서울만 놓고 보면 진보 진영 득표가 더 많았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득표 결과는 2012년 문재인 후보에게 322만표를 몰아줬던 진보 진영 유권자의 이탈 양상을 보여준다. 전체 투표율이 2012년 대선보다 17%가량 낮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세훈이 받은 279만표는 2012년 박근혜가 받은 302만표와 거의 비슷한 수치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190만표(39.1%)를 얻는 데 그쳤다. 과거 민주당에 표를 던졌던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를 포기하거나 다른 진영으로 이탈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통상 정권 후반의 선거는 심판의 성격이 짙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번 보궐선거 역시 2017년 이후 선거에서 꾸준히 민주당에 표를 던졌던 기존 지지층이 와해되면서 야당의 승리로 이어지는 패턴이 그대로 반복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② 윤석열 사퇴하자 오세훈 지지율 급등했다
2012년처럼 보수 결집의 계기를 만들어 준 건 LH 사태와 윤석열 전 총장이었다. 지난 3월 2일 LH 임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에 나섰다는 의혹이 터졌고, 이어 5일에 청와대 및 법무부와 극한 갈등을 벌이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격 사퇴했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윤 전 총장의 사퇴 전후로 오세훈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양상이 관찰된다. 2월 중에 오세훈의 지지율은 15~16% 수준으로 35% 안팎이던 박영선 후보는 물론 20%대였던 안철수 후보보다 낮았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사퇴한 5일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오세훈의 지지율이 나머지 두 사람을 누르고 35~40% 수준으로 급격하게 치솟는다. 이런 지지율 상승 덕에 오세훈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의 사퇴로 인한 이득을 오 시장이 볼지, 안철수 후보가 볼지 당내에서도 의견이 갈릴 정도로 관심사였다”며 “결과적으로 보면 보수 유권자들이 본능적으로 제1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에게 지지를 몰아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선거 기간 중 오세훈은 ‘내곡동 셀프보상’ 의혹이 터져 LH 사태로 반사이익을 누렸다고 보긴 어려웠다. 정치권 인사들은 윤석열이 사퇴하자마자 대권 주자 지지율 1위를 찍으며 보수 진영의 구심점이 된 덕분에 표심이 결집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출신 전략가로 서울시 정책보좌관을 지낸 최병천씨는 “정치가 투쟁이라면 그 구심점 역할을 해주는 존재가 바로 리더”라며 “윤석열이 사퇴하는 순간 문재인 정부에 불만이 있었던 중도, 무당파층이 반(反)문재인이란 기치 아래서 광범위하게 결집했고, 선거 압승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③ 마포도 오세훈을? 대형 아파트 단지가 성패 갈랐다
물론 윤 전 총장의 사퇴로 인한 보수 유권자 결집만으로 승리가 가능했던 건 아니다. 이전에 민주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이탈 역시 결정적이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 지지층이 떠난 이유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1순위로 꼽는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에서 꾸준히 실기했음에도 서울 지역 선거에선 항상 민주당이 이겼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분노가 여당 패배의 원인이라면, 작년 4·15총선 압승 후 1년 사이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부동산 정책이 결정적으로 서울 민심을 등 돌리게 했다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여권에선 임대차 3법과 세금 문제를 패인으로 꼽는 분위기다. 임대차 3법의 부작용으로 전세 가격이 급등하고, 그와 동시에 공시지가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 부담이 커졌다.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이들이 아파트 거주자들이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전세 가격을 못 잡아서 집 없는 사람이 등을 돌렸고, 재산세와 종부세가 크게 오르면서 집 가진 사람마저 등을 돌렸으니 선거에서 지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이런 결과는 실제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오세훈은 서울 시내 425개 행정동(洞) 중 421개 동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를 세부적으로 보면 지역별로 온도차가 있다. 1000가구 이상 대형 아파트 단지들이 밀집한 곳에서 오세훈이 크게 승리한 경향이 뚜렷했다. 대표적인 곳이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마포구다. 마포구도 이번엔 55.1%가 국민의힘 손을 들어줬다. 그중에서도 오 시장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곳은 아현동(63.6%)이다. 강북 아파트 ‘대장주’ 중 하나로 꼽히는 마포래미안푸르지오(3885가구)가 위치한 지역이다. 이 아파트는 지난 1년 사이 전세 가격이 1억~3억원가량 올랐고, 재산세 부담 역시 50%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이 아파트 주민 김모(36)씨는 “2012년부터 꾸준히 민주당에 투표했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국민의힘에 투표했다”며 “빚 내서 겨우 산 집인데 그거 1채 가졌다고 죄인처럼 세금을 마구 올려 대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형 아파트 단지들이 밀집한 도화동, 용강동, 대흥동 등에서도 오세훈 득표율이 60% 안팎으로 나왔다. 반면 아파트 단지가 적은 망원동, 연남동, 서교동 등에서 오세훈 득표율은 50% 이하였다.
동작구에서는 흑석동(65.3%)에서 오세훈 득표율이 가장 높았다. 흑석센트레빌 1·2차를 비롯한 신축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데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투기 논란이 터졌던 지역인 점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광진구는 작년 총선에서 오세훈이 민주당 고민정에게 패한 곳이지만, 이번엔 설욕에 성공한 지역이다. 광장동 득표율(64.6%)이 가장 높았다. 여기도 극동 1·2차 아파트를 비롯, 중대형 아파트단지들이 밀집한 지역. 이 밖에도 강동구 고덕2동, 강서구 우장산동, 은평구 수색동, 성동구 옥수동 등도 오세훈 득표율이 높았다. 모두 대규모·신축 아파트 단지들이 지역 주류였다.
개별 아파트 단지로 분석 단위를 더 좁혀보면 그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1500여 가구 규모의 래미안장위퍼스트하이가 있는 성북구 장위3동 제3투표구가 단적인 예. 오세훈 득표율이 63%로 성북구 전체에서 가장 높았다. 작년 총선 때는 민주당 득표율이 53%였고, 미래통합당 득표율은 44%였다. 1년 새 최소 18%의 유권자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중에 오세훈에게 가장 많은 표를 몰아준 곳은 어디일까. 강남구 압구정동 제1투표구로, 무려 93.7%가 오세훈에게 표를 던졌다. 유권자는 모두 압구정현대 3·6·7차 아파트 주민들. 총 1800명 유권자 중 1700명이 오세훈을 찍었다. 2위는 타워팰리스가 있는 강남구 도곡2동 제3투표구. 93.3%의 타워팰리스 주민들이 오세훈을 선택했다.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반발 심리가 몰표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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