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잘생긴 바텐더가 따라준 헨드릭스 진토닉의 맛
깜짝 놀랄 정도로 잘생긴 남자가 바텐더인 술집에 간 적이 있다. ‘잘생김’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는데 그의 미모는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얼굴이 그를 온전한 바텐더로 존재할 수 없게 한달까.
바텐더는 몸을 가꾸는 사람으로 보였다. 웨이트를 하고, 요가나 발레 같은 잔근육을 발달시키는 운동을 더 해서 ‘몸을 늘렸다가 다시 다듬는’ 일을 매일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몸을 만들기 위해 애쓰다가 몸에 투자할 돈을 벌기 위해 그 화려한 바로 출근한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니 술집의 기운과 잘 어울리지 않을 수밖에. 술집은 하다못해 단추라도 하나 풀고, 신발 끈도 느슨하게 풀고, 그러니까 마음을 풀고 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매일같이 오전에는 을지로의 스타벅스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열한 시가 되기 전 나와, 다시 명동 거리를 가로질러 조기 퇴근(?)을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로써 오늘 내가 할 일을 다 했으니 남은 시간 동안 자유였다. 독서와 산책을 하고, 가끔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쯤은 혼자 술집에 갔다. 걸어 다니며 찍어둔 술집에 가는 것이다. 여덟 시쯤 되었을 때.
혼자 가도 부담이 없는 바에 주로 갔다. 그 바도 그렇게 가게 되었던 곳 중 하나다. 그날,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처음으로 할지 상당히 고심했었다. 바텐더의 일 중 하나가 손님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지만 그보다는 내가 능숙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자고로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잘하는 쪽이 하면 된다’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날 누구와도 말한 적이 없는데, 그도 거의 그럴 것 같았다. 그나 나나 자신에게 골몰해 있다가 처음 자기 밖으로 나온 느낌이랄까. 결국, 내가 한 말은 술을 한 잔 골라달라는 거였다. 딱 한 잔만 마시고 갈 건데 뭐가 좋을까라고 물었다.
당신이 나처럼 말한다면 바텐더들은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진이나 럼, 보드카, 테킬라 중에서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그도 그랬다. 나는 진이라고 했다. 그것도 헨드릭스 진. 술병도 좀 다르게 생긴 데다 술병의 색도 불투명한 검은색인 그 진을 좋아했었다. 이 진은 맛도 달라서 마시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나는 한때 이 술을 마셨다.
일반적인 진토닉은 레몬을 넣지만, 헨드릭스 진토닉은 로즈메리나 오이, 장미를 넣는다. 그날의 그도 물었다. 오이와 장미 중에서 어느 쪽을 고를지. 나는 더 잘하는 걸 해달라고 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오이의 껍질을 필러로 벗기는 것이었다. 다음에는 사시미 칼 같은 걸로 오이의 속살을 길게 포로 떴다. 손을 다시 한번 씻더니, 오이 포를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다른 손으로 오이를 타격했다. 퍽, 퍽 소리가 나게 말이다. 오이의 청량하고도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 오이는, 곧 롱 드링크 잔의 벽면에 붙여져 헨드릭스 진토닉과 함께 내 앞에 놓였다.
이렇게 말해버렸다. “캐스팅이 잘되었으면 좋겠네요”라고.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나는 아마 “그러게요”라고 했을 것이다. 이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는 지금 텔레비전이나 스크린에 나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쩐지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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