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안 나눠도 주식 정보는 나눈다.. 우린 '스톡 메이트'
A(45): “형님, 이달 말에 ○○ 공모주 청약 넣으세요? 나름 대어라고. 균등 배정이라 저희 같은 개미한테는 그나마 기회래요. 유튜브 링크 보내드릴 테니 참고하세요~ 그나저나 이젠 코인으로 갈아타야 한다는데 ㅜ”
B(48): “ㅇㅋ. 며칠 전에 코인 사서 재미 본 친구가 속성 과외 해줬어. 코인은 내가 알려주리? ㅋㅋ”
요즘 A와 B의 카톡방은 수시로 울린다. 두 사람은 동서지간. ‘시월드’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합종연횡을 반복하는 사이지만, 요새 주식 때문에 부쩍 친해졌다. A씨는 “재테크 얘기는 안 하던 사이인데 시댁 갔다가 막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며 “주린이(주식 초보) 탈출을 위해 남들한테 물어보기 민망한 기초 지식을 물어본다”고 했다.
주식 투자가 일상화되면서 새로운 교우 관계가 등장했다. 주식 정보와 ‘꿀팁’을 공유하는 ‘스톡 메이트(stock mate·주식 친구)’. 솔 메이트(soul mate)가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관계라면, 스톡 메이트는 “마음은 안 나눠도 정보는 나눈다”는 이들이다.
만남의 장소는 다양하다. 각종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이 주요 창구 중 하나. 직장인 김용준(31)씨는 몇 달 전 모더레이터(방장)로 ‘클럽하우스’에 주식방을 만들어 매주 토요일 대화를 이끌었다. 나이 상관없이 모든 멤버가 반말로 대화하는 ‘반말방’으로 운영되는 그의 주식방에는 200여 명이 들어왔다. 이 중 친해진 십여 명이 단톡방을 만들었다. 어느새 주식 정보는 물론 고민까지 터놓는 진짜 친구가 됐다.
“클럽하우스 주식방은 얼굴을 안 보고 말로만 소통하니 마음 맞는 친구들이 전화로 수다 떠는 느낌이에요. 사실 실친(실제 친구)들은 ‘주식 하느냐’ ‘얼마 벌었느냐’ 정도만 말하지 대화가 더 깊게 이어지지는 않죠. 주식방 사람 중엔 업계 종사자도 있고, 관심사가 같으니 심도 있는 대화를 하게 돼요.” 김씨는 “일부 멤버와는 오프라인으로 만나 실제 친구가 됐다”고 했다.
직장인 김정은(가명·26)씨는 익명 ‘주식 오카방(오픈카톡방)’에서 스톡 메이트를 사귀었다. 올 초 전기·전자 관련 특정 종목에 관심이 생겨 20여 명이 모인 해당 종목 오카방에 들어갔다. 김씨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깨알 정보를 공유하면서 친해졌다. 종목은 망했지만, 멤버끼리 친해져 수시로 다른 주식 정보를 물어볼 수 있는 관계가 됐다”고 했다. “멤버 몇 명이 오프라인으로 ‘번개 모임’을 했는데 20대 여성부터 50대 아저씨까지 남녀노소 섞여 있더래요. 같은 종목 샀다가 공도동망하면서 생긴 동지애 때문인지 금방 친해졌대요(웃음).”
동료, 업무 관계에서 확장되기도 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50대 김모 상무에겐 협력 회사 직원 박모(33) 과장이 재테크 친구다. 지난해 업무 미팅 때문에 회사에 찾아온 박 과장과 커피를 마시다가 ‘해외 주식 거래’ 얘기를 처음 들었다. “신세계를 본 것 같더군요. 우리 회사 어린 친구들한테 묻기는 모양 빠져서, 박 과장한테 모바일 해외 주식 거래법부터 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지요.” 김 상무는 ‘돈 복사(돈 불리는 것을 일컫는 은어)는 부지런함에서 온다'는 박 과장의 말을 곱씹으며 하나씩 배웠다. 덕분에 몇 달 만에 수천만원을 벌었다. 그는 “나보다 스무 살 이상 어린 박 과장을 어느 순간 ‘박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더라. 얼마 전 그 친구 결혼식 때 두둑이 축의금을 챙겨줬다”고 했다. 박 과장은 “상무님과 ‘어쩌다 주식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됐다. 덕분에 우리 회사에 일을 많이 줘서 업무상 도움받았다”며 머쓱해했다.
직장 생활 3년 차 회사원 정유미(가명·29)씨는 ‘삼전(삼성전자) 10주’가 사회생활 노하우다. “식사 자리에서 상사가 주식 얘기를 하는데 ‘저도 삼전 주주’라고 했더니 갑자기 대화가 화기애애해지더라고요. 실은 우선주 포함해 45주 갖고 있는데, 너무 재테크에 골몰하는 이미지로 보일까 봐 적당히 귀엽게 보일 수 있는 수준으로 대외용으로 정한 게 10주였어요(웃음).” 가끔 상사와 매도 타이밍을 얘기한다.
의례적인 관계가 주식 때문에 친구로 급변하기도 한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이유진(가명·34)씨는 아이 친구 엄마와 주식 얘기를 하다가 맘 터놓는 사이가 됐다. “인사만 하는 아이 친구 엄마와 차를 마시다가 우연히 ‘주밍아웃(주식한다고 말하는 것)’ 하게 됐어요. 친한 친구하고는 돈 얘기하는 게 조심스러운데 아이 친구 엄마와는 별걸 다 말하게 되더라고요.” 이씨는 “아이 이름으로 해놓은 주식을 엄마가 너무 자주 빼고 넣으면 국세청 타깃이 될 수 있다, 10년에 2000만원씩 스무 살 성년 될 때까지 4000만원어치 주식을 사고 국세청에 신고하면 세금을 안 낸다는 등 피와 살이 되는 현실적인 정보를 주고받았다. 또래 아이 키우는 ‘스톡 메이트’이다 보니 통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친구가 주식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한 40대 회사원은 “동창 스무 명 정도가 하는 단톡방이 있는데, 주식에 관심 있는 친구끼리 주식용 별도 단톡을 만들었다”면서 “아이돌 그룹에서 멤버 몇 명이 유닛 활동하는 거랑 비슷하다”며 웃었다. “유튜브도 많이 보지만 실시간 대화하면서 얻는 정보가 훨씬 생동감 있죠. 집단 지성의 힘이 단톡방에서도 작동하고요. 실패할 때도 많지만(웃음).”
다만, 스톡 메이트의 교우 관계에서는 불문율이 있다. “투자 결정은 본인 몫. 남 탓하지 말 것.” 김정은씨는 “스톡 메이트에게 받은 정보는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이며, 100% 신뢰해선 안 된다. 결국 결정하는 건 나 자신. 투자 실패의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해야 주식 친구의 우정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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