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꺼리는 한국 청소년, 키도 더 이상 크지 않는다
한국인이라면 이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한국인은 할아버지보다는 아버지가, 아버지보다는 아들이 키가 큰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말을 쓰는 부모가 점점 줄어들 확률이 높다.
교육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교육통계연보’에는 연도별 각 학년 평균 키가 들어 있다. 이에 따르면 현재 가장 최신 자료인 2019년 만 17세(고3) 남학생 평균 키는 173.8cm로 가장 옛날 자료인 1964년(163.6cm)보다 10.2cm가 늘었다.
단, 2005년(173.6cm) 이후 고3 남학생 평균 키는 제자리걸음이다. 같은 기간 고3 여학생 평균 키도 161cm 근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 17세 이후에도 키가 계속 크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에서 한국인 평균 키는 성장을 멈췄다고 할 수 있다. 왜일까?
“일본 학생 평균 키가 한국보다 크다.”
그러나 남학생에 한해서는 1993년만 해도 이 문장은 ‘참’이었다. 당시 일본 고3 남학생 평균 키는 170.7cm로 한국(170cm)보다 컸다. 여학생 평균 키는 두 나라가 엎치락뒤치락했지만 남학생은 1976년생이 고3이던 1994년이 되어서야 한국이 역전에 성공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 문장은 다시 ‘참’이 될 수도 있다. 일본 학생은 계속 제자리걸음이라도 걷는 반면 한국 학생은 뒷걸음질을 시작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청소년들 키 크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1957년에 태어난 한국 남성은 중1이던 1970년 평균 143.7cm였다. 고교 졸업반인 1975년이 되면 평균 166.3cm로 22.6cm가 커졌다. 이들의 아들뻘인 1987년생은 중1 때 154.9cm에서 고3 때 173.6cm로 18.7cm가 자라는 데 그쳤다. 성장 속도가 20% 정도 느려진 것이다. 2019년 고3이던 2001년생 한국 남성은 17.4cm(중1 156.4cm→고3 173.8cm)밖에 크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과 일본 남학생 평균 키 추이에 대해 연구해 온 일본 센슈(專修)대 모리 히로시(森宏) 명예교수(92·농경제학·사진)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앞으로 10년 안에 한국 남학생 평균 키가 2∼3cm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일본 남학생 성장 속도는 1998년 이후 거의 변화가 없다. 한국 학생들 성장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에 최근 7, 8년만 따지면 일본 학생이 청소년기(중1∼고3) 사이에 한국 학생보다 2∼3cm 더 자라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키 더 크고 싶으면 ○○에 ○○ 먹어라.”
한국 고3 남학생이 174cm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처럼 일본 고3 남학생 평균 키는 1982년 170.1cm를 넘어선 뒤 40년 가까이 171cm 벽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가설은 ‘고기를 많이 먹는 서구식 식생활이 보편화되면서 평균 키가 커지다가 유전학적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었다.
모리 교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일본 학생 평균 키가 정체되기 시작했을 때 일어난 제일 큰 변화는 과일과 채소 섭취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라면서 “1970년대와 비교하면 이제 일본 청소년들 과일 섭취는 10% 수준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1996년과 2016년을 비교하면 우유와 달걀을 포함한 동물성 먹거리 섭취는 16%가 늘었지만 채소 섭취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이라며 “그 결과 체질량지수(BMI)만 늘고 있다. 키는 제자리인데 살만 찌고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난 모리 교수는 “같은 기간 한국 청소년들 곡물 섭취도 30% 줄었다. 한국인에게 곡물은 쌀과 거의 같은 개념이고 김치가 제일 중요한 채소 섭취원”이라면서 “결국 고기만 많이 먹고 쌀밥에 김치는 꺼리게 되면서 키가 크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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