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투런 홈런'보다 격정적인 경제학
한국 경제, 동반 성장, 자본주의 정신
정운찬 전 총리의 책 ‘한국 경제, 동반 성장, 자본주의 정신’(파람북)을 야구 TV 중계를 틀어놓은 채 소파에서 읽기 시작했다. 경제학 책은 보통 재미없다. 필요하니 따분함을 참아가며 읽는다. 그렇지만 94쪽가량 읽었을 때 심상치 않다 싶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97쪽,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총매출액이 우리나라 경상 GDP의 30.9%에 이른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삼성과 현대차뿐 아니라 다른 재벌 대기업을 포함한다면 재벌 대기업의 매출액은 우리 경제 전체 GDP의 대부분을 차지하거나 초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구절을 읽으며 폭소를 터뜨렸다. GDP는 부가가치의 총액이라 애초에 매출액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비교하기도 어려운 걸 갖다 놓고 엄청 기여한 것처럼 허풍을 떨다니 얘들 하는 일이 맨날 이렇지…’하는 뉘앙스, 정운찬식 유머다.
그쯤에서 내가 응원하던 팀이 투런 홈런을 쳤다. 그래도 책이 너무 재밌어서 야구를 볼 수가 없었다. 앞의 60~70쪽 정도는 평범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노경제학자의 인생을 건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몇 구절에선 ‘울컥’ 하고 정말로 가슴이 움직였다. 특히 미식축구에서 한 번도 결승에 진출한 적이 없는 팀의 좌석 판매율이 90%가 넘었고, 미식축구 역사상 3년 이상 연속 우승한 팀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었다. 별 인기 없던 미식축구 리그가 중계료 등 이익 공유를 통해서 하위 팀들의 실력 향상을 이끌면서 세계 최고가의 인기 스포츠가 되었다는 얘기도 감동적이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동반 성장을 반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로 치부하던 사람들과 몇 년간 논쟁하던 정운찬의 책 후반부 스토리는 “이게 바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얘기하는 바로 그 자본주의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정권은 바뀌고 또 바뀌겠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는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하는 최우선 과제 아니겠나 싶다.
책을 덮고 나니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경제학자의 덕목이라는 앨프리드 마셜의 말이 생각났다. 경제학이 낯선 독자는 96쪽부터 우선 읽고, 나중에 앞부분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차가운 머리’를 지나는 예열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뜨거운 가슴’을 만날 수 있다. 야구 경기보다 더 격정적으로 읽은 책은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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