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2020년대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만들자

김시덕 교수 2021. 4.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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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 18세기 이중환 '택리지' 이어
1983년 '한국의 발견' 출간.. 이 시대 자연·인문지리 남겨야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1963년부터 1982년까지 거의 20년에 걸쳐, 일본 전국을 다니며 그 시점의 자연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신일본기행(新日本紀行)’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프로그램 편수는 800편 가까이에 달한다. 지금도 당시 방송했던 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는 한다.

그런데, ‘신일본기행’의 재방송이 끝나고 ‘신일본기행 또 다시(新日本紀行ふたたび)’라는 프로그램이 이어질 때가 있다. ‘신일본기행’ 제작진이 찾아간 지역을, 반세기 가까이 지난 2005년에 다시 찾아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반세기 사이 일본의 농촌·어촌·산촌, 그리고 도시까지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신일본기행 또 다시’는 그런 변화를 안타까워하거나, 과거와 비교해서 오늘날을 비판하지 않는다. 반세기 사이의 변화를 담담히 화면에 담을 뿐이다. 다시 반세기가 흐른 뒤 누군가 이 바통을 이어받을 것을 믿으며.

한반도에서도 당시 사람들의 삶과 인문·자연 상황을 기록하려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 인력을 동원해서 1481~1530년 사이에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만들었고, 이중환이라는 몰락 지배집단의 남성이 18세기 후기에 ‘택리지’를 만들었다. 특히 ‘택리지’는 몇 년 전에 조선 시대 한문학 연구자인 안대회 교수 팀이 ‘완역 정본 택리지’를 출판했다.

뿌리깊은나무 출판사가 1983년에 출판한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 사람’ 시리즈/알라딘

그리고 ‘택리지’로부터 200년 정도 흐른 뒤, 이번에는 뜻있는 개인들이 힘을 합쳐 대한민국 영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담았다. 뿌리깊은나무 출판사가 1983년에 출판한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 사람’ 시리즈다.

뿌리깊은나무 출판사가 1983년에 출판한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 사람’ 시리즈.모두해서 열한권으로 이루워졌다./블러그

‘한국의 발견’ 시리즈는 서울·경기·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부산·제주 열한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때까지의 자연·인문적인 상황을 요령 있게 정리하고, 책을 만들던 시점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특히 정성스럽게 담았다. 20세기 후반 한국의 모습은 해마다 빠르게 바뀌고 있었으므로, 출판사는 판을 새로 찍을 때마다 내용을 바꾸고 사진도 바꾸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이 시리즈를 이제까지는 답사 가는 지역만 사전 찾듯이 훑어보고는 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서울·인천·경기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답사 기록을 출판하면서, 처음으로 경기도편 전체를 끝까지 찬찬히 읽었다. 이제까지 생각해온 이상으로 좋은 책이었음을 깊이 느꼈다.

물론 이 책에는 집필을 담당한 중산층 지식인 집단의 고답적인 관점, 그리고 1980년대에 강하게 불었던 민족주의적 경향에서 비롯된 대목이 곳곳에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몇몇 부분 이외에는 전체적으로 감동적이었다. 책을 쓰기 위해 실제로 경기도 구석구석을 답사할수록, 이 책의 내용이 방대한 조사와 깊은 고민을 통해 쓰였음을 절감했다.

이 책의 초판이 출판될 당시에는 아직 존재하고 있었던 시흥군에 대한 설명을 읽던 중 다음 구절이 깊이 와 닿았다. ‘근대화 또는 도시화라는 것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땅과 사람의 변화 곧 그 쓰임새가 바뀐 땅에서 그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 오던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또 사진으로 담은 한국의 풍경은, 이 책이 출판된 이후 거의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를 정성스럽게 담은 시리즈는 ‘한국의 발견’ 이후로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다. 한국 사회의 40년 전 모습을 정리해서 후세에 남긴 사람들이 있었다. 2020년대의 한국 시민이 이 바통을 이어받아야 하겠다. 우선은 나부터 미력하나마 실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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