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죽음의 순간 겪어보니, 삶이 더 소중해

채민기 기자 2021. 4. 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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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춤

세실리아 루이스 글·그림|권예리 옮김|바다는기다란섬|80쪽|1만6000원

관객들이 내려다보는 무대에서 배우는 손수건을 들고 앉아 있다. 수건에 빨간 피가 살짝 비친다. 진짜 피일까 아니면 소품일까. 이 그림은 프랑스의 극작가 겸 배우 몰리에르(1622~1673)의 최후를 암시한다. “몰리에르가 무대에서 자신의 마지막 작품 ‘상상병 환자’의 건강 염려증 환자를 연기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별안간 쓰러졌고 불과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멕시코 출신 일러스트레이션 작가인 저자는 어른을 위한 이 그림책에서 불가사의하고 공교로운 죽음의 순간을 포착한다. 독수리가 하늘에서 떨어뜨린 거북이에게 맞아 죽었다고 전해지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아버지 아이스킬로스(그의 대머리를 바위로 착각한 독수리가 등딱지를 깨려고 거북이를 떨어뜨렸다고 한다), 기다란 스카프가 자동차 바퀴에 휘감기는 바람에 목뼈가 부러져 죽은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 한날한시에 나서 2011년 함께 떠난 미국의 어느 쌍둥이 수도사까지. 동서고금, 부와 명예도 가리지 않는 죽음은 가장 공평한 주제다.

/바다는기다란섬

색채와 표현을 절제한 그림들은 참혹하지 않다. 수수한 질감의 화면 속에서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진다. 죽음이 삶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한다.

저자의 또 다른 그림책 ‘기억의 틈’(64쪽·1만5000원)과 함께 출간됐다. 이 책에선 기억 때문에 힘겨워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린 루샤처럼 기억이 사라져서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해소에서 들은 신자들 이야기가 자신이 지은 죄처럼 생생하게 떠올라 괴로운 사제도 있다. 평범하지 않다 해서 이들을 비정상이라 할 수는 없는 일. 오늘을 충실히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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