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은 김치 국물 많고 슴슴, 남녘은 고춧가루·젓갈 듬뿍
요즘 서울 김치 전라도식 많아
개성식, 고춧가루 적어 주황색
전라도식, 찹쌀풀 넣어 감칠맛
경남, 육젓·생갈치 버무려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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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김치 - 팔도 김치 이야기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김치에 대해 몇 시간 장광설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김치란 그런 음식이다. 음식 전문가가 아닌 내가 지금부터 쓰려 하는 쓰는 김치 이야기도 그런 것이다. 단지 좀 남다르다면 내 입맛을 규정한 ‘화려한 족보’라고나 할까. 나의 조부모와 아버지는 개성 출신, 어머니는 전북 출신이다. 중부와 남부 지방에서 음식의 자부심으로 치면 내로라하는 두 지역이다. 거기에 시댁 식구는 울산·부산 출신인데, 모두 거의 ‘절대 미각’ 수준의 입맛을 자랑한다. 이 세 지역은 김치 취향도 매우 다르다.
사실 요즘 서울에서 먹을 수 있는 김치는 예전의 서울식 김치가 아니다. 구태여 분류하자면 전라도식, 넓게 보자면 남부 지방의 김치다. 김장 시연 영상을 봐도, 웬만한 김치 레시피를 봐도, 다 그렇다. 그래서 나처럼 중부 지방 스타일의 김치를 먹고 보고 자란 사람은 좀 섭섭하다. 그래서 나는 해마다 김장 때면 두 가지 김치를 했다. 한 가지는 남편의 남부 지방 바닷가 취향 김치, 다른 하나는 내 입맛에 맞춘 중부 지방 김치다. 나도 남편 입맛의 김치를, 남편도 내 입맛의 김치를 맛있게 즐기긴 하지만, 워낙 다른 맛의 김치이므로 어느 하나를 포기하기 힘들었다.
여름에 먹을 묵은김치엔 소금 더 넣어
전북 출신의 음식 솜씨 좋은 엄마지만, 시집온 지 30년이 될 때까지 김장 때마다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고춧가루를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이다. 아까워서가 아니다. 김치를 너무 빨갛게 담그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시집오자마자 할머니의 개성식 조리법을 배웠지만, 스물 넘도록 경험한 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법이다. 결혼 후 처음 맞은 명절 때 부엌일을 거들던 친척들이 할머니에게 귀띔했단다. “형님, 음식이 좀 짜졌어요.” 괄호 안에는 ‘전라도 며느리가 들어오더니’가 들어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함께 살았던 식구들은 서서히 진행된 그 변화를 깨닫지 못했지만, 몇 달 만에 온 아주머니들은 대번에 알아챈 것이다. 그러니 일 년에 한 번 김장 때 잔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에 비해 전라도를 비롯한 ‘아랫녘’(중부 지방 사람들이 남부 지방을 지칭하는 말이다) 김치는 간이 세고 고춧가루를 듬뿍 넣는다. 그래서 좋은 고춧가루 고르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맵고도 달착지근한 좋은 고춧가루를 써야 그 독특한 향취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젓갈과 해물도 맛이 진하고 비린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전라도에서는 찹쌀풀을 쑤거나 밥을 갈아 양념에 섞는다. 탄수화물이 발효되어 감칠맛을 더해주고 고춧가루와 젓갈 등을 어우러지게 하면서 김치의 맛과 향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해진다. 향과 맛, 짠맛과 감칠맛, 얕은맛에서 깊은 맛까지 그야말로 꽉 채운 맛이다.
이에 비해 우리 친정에서 찹쌀풀을 쑤어 넣는 경우는 여름 김치를 담글 때뿐이다. 여름의 배추와 무는 맛이 싱겁고 젓갈도 진하게 쓸 수가 없어 찹쌀풀로 맛을 내야 한다. 하지만 통배추가 최고의 맛을 내고 온갖 해물을 넣을 수 있는 김장김치에는 구태여 찹쌀풀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찹쌀풀 등은 김치가 빨리 시게 만들므로 오래 두고 먹어야 하는 김장김치에는 금물이다. 기온이 높은 남부 지방에서 찹쌀풀이라니, 희한하지 않은가. 그러니 남부 지방의 김치는 이를 상쇄할 만큼 간이 강해야 한다. 음식 고수들은, 김치 항아리 개봉 순서대로 소금간을 달리하기도 한다. 여름에 먹을 묵은김치용은 해물을 줄이고 소금을 많이 넣어 날이 더워져도 무르지 않도록 담그는 것이다. 이렇게 고춧가루와 찹쌀풀이 듬뿍 들어간 양념을, 절인 배추의 속부터 이파리 끝까지 꼼꼼히 바른다. 그래서 김치 전체가 아주 새빨갛다. 대개 김장김치 사진을 검색하면 나오는 바로 그 비주얼이다.
개성 출신 할머니의 방식은 달랐다. 무채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고춧가루를 적게 쓰며, 그 양념을 절인 배추 뿌리 쪽 깊숙한 곳에만 살짝 넣어, 이파리 끝에는 거의 양념이 묻지 않는다. 배추를 절일 때도 지나치게 짜게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할머니의 노하우는, 너무 짜지 않은 소금물로 이틀에 걸쳐 절이는 것이다(이틀 동안 한 접이나 되는 배추를 뒤집으며 골고루 절일 생각을 하니 생각만으로 허리와 손가락이 욱신거린다). 이렇게 담근 김치는 익으면서 주황색 김칫국물(빨간색이 아니다)이 우러나오는데 그 국물까지 시원하고 맛있다. 전남 출신의 지인이 내가 담근 이런 김치를 먹어보더니 대뜸 “와, 맛있네! 그런데 이 정도면 전라도에서는 싱건지야”라고 말했다. ‘싱건지’ 즉 싱거운 김치란 뜻으로 주로 여름에 열무 물김치가 대표적인 싱건지다.
음식점에서 제대로 중부 지방 김치를 먹어본 경험은 딱 한 곳, 지금은 사라진 안암동의 개성집에서였다. 개성 출신의 꼬장꼬장한 주인 할머니가 운영하던 유명한 맛집이었다. 그곳에서 빨갛지 않고 시원한 중부 지방 김치를 보자 어찌나 반갑던지! 하지만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후손들이 물려받자마자 가장 먼저 김치 맛부터 바뀌었다. 빨간 아랫녘 김치가 상에 올라왔다.
보쌈김치는 더 허연 색깔이다. 요즘 돼지보쌈 집에서 파는 것을 상상하면 완전히 오산이다. 보쌈김치는 개성이 한때 전국 최고의 귀족이 모여 살던 수도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고급스럽게 만든 특별한 김치다. 오목한 그릇에 배춧잎을 깔고 배추 썬 것을 각 잡아 담는다. 그 사이에 무·배·잣·밤 등으로 만든 양념을 얌전히 꽂아 넣은 후 조심스럽게 싸놓아 익힌다. 상에 올린 보쌈김치를 젓가락으로 헤집으면 온갖 고급스러운 재료가 고스란히 보인다. 바쁜 김장 날 이것까지 하려면 정말 죽을 맛이지만 할머니는 이 귀찮은 보쌈김치를 소량이라도 고집하셨다. 많은 손님에 너무도 바쁜 명절날, 김치 써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무·배·잣·밤 넣은 개성 보쌈김치 일품
윗녘으로 갈수록 김치는 더욱 국물이 많고 슴슴하고 시원해진다. 평안도에서는 쇠고기 양지나 사태를 푹 고아 그 국물을 붓는다. 그러니 한겨울 김장독의 김칫국물을 바로 냉면육수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김치에 빨갛게 고춧가루 범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년 전쯤 연변에서 먹어본 김치도 이런 김치였다. 할머니의 김치보다 더 고춧가루가 적고 더 싱겁고 시원한 김치였다. 샐러드 먹듯 계속 김치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결혼 후에 겪어본 아랫녘 김치는 살짝 문화충격이 올 정도였다. 결혼 후 시부모님 김장을 거들면서 제대로 경험했다. 시어머님은 찹쌀풀은 쓰지 않고 젓갈로만 맛을 내셨다. 젓갈은 오로지 멸치젓, 그것도 맑은 액젓이 아니라 건더기가 고스란히 있는 거무튀튀하고 걸쭉한 육젓을 그냥 넣었다. 거기에 고춧가루를 끝도 없이 부어 버무렸다.
이런 양념을 완전히 푹 절인 배추의 속부터 이파리 끝까지 골고루 묻혔다. 솔직히 말하면 양념 범벅이 된 손으로 배추를 쓱쓱 문지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뻑뻑한 고춧가루 양념이 배추에서 잘 떨어지지도 않아, 곱게 싸며 다독거릴 필요도 없어 항아리에 ‘터프하게’ 툭툭 던져 넣었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집에서 처음 김치를 할 때 남편이 킬킬 웃으며 했던 말이 이해가 됐다. 배춧잎 사이에 무채 양념을 얌전히 집어넣는 걸 본 남편은 “서울 사람들은 음식 갖고 조잡을 떨어. 우린 그냥 퍽퍽 집어던지는데”라고 했었다. 시어머니의 김치는 당연히 내가 만든 김치보다 짜고 맵고 맛이 진했다.
몇 해 함께 사니 이 강한 맛의 김치에 나도 슬슬 물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김장 때 남편이 원하는 김치를 담그기에 이르렀다. 멸치의 머리와 뼈까지 다 들어있는 검은 멸치젓을 기본으로 하고 고춧가루를 듬뿍 넣는데, 여기에다 남편 취향의 해물을 넣는다. 바로 생갈치다. 작은 생갈치를 잘게 썰어 김치 양념에 함께 버무리는 것이다. 이렇게 담가 익힌 김치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복잡한 맛을 낸다. 갈치 덕분에 강한 감칠맛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고소한 맛까지 풍긴다.
겨우내 두 가지 김치가 밥상을 풍성하게 했다. 나는 갈치 넣은 김치를 입맛 다시며 집어먹었고, 남편은 주황색 맑은 김칫국물을 훌훌 떠먹었다.
대한민국 1세대 대중문화 평론가이자 음식평론가. 음식 관련해서는 『나를 위한 제철밥상』 『위대한 식재료』 『팔방미인 이영미의 우리 밥상 이야기』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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