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슬픈 재개발의 꿈
벼랑 끝 내몰려 빼앗기듯 처분
팍팍한 삶 앞에 우정도 무너져
지지고볶던 그들, 지금 어디에
임차인 순미는 마흔다섯이다. 사남매 중 셋째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다를 면한 작은 고향 마을을 떠나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서 삼 년간 2교대로 일했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사 년을 살다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병원 신세를 오래 지게 된다. 임대인 만옥은 금방 재개발이 된다는 말에 혹해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빚까지 내서 다 쓰러져가는 낡은 집을 샀다. 열 평이 채 안 되는 집이지만 거실과 방이 뚜렷하게 구분되고 해가 잘 들지 않는 대신 창이 큰 편이라 통풍이 잘 되는 그 집은 쓰러진 남편의 병원비를 대며 간신히 살아가는 그녀의 유일한 희망의 거처다.
곧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줄곧 계획과 어긋나며 애를 태우던 ‘목화맨션’이 두 사람에게 부여한 유일한 선물은 ‘어떤 관계’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것을 우정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 관계를 무엇이라고 하든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차리고 마음을 쓰게 되는 내밀한 소통은 두 사람의 몫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우정은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가. 팍팍한 삶 앞에서 우정은 언제나 무너지기 쉽다. 집을 비워달라는 만옥에게 순미는 한마디 말도 없이 이럴 수 있느냐고 따져 묻고, 만옥은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기 바쁘다.
소설의 마지막, 만옥은 남편을 살피러 들른 요양원 로비에서 ‘목화맨션’ 일대가 철거된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본다. 그러자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어떤 시간들이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아쉽다거나 억울하다거나 후회된다거나 하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 만옥은 확신할 뿐이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것이 다만 눈에 보이는 저 낡은 주택들만은 아닐 거라고 말이다.” 새집은 이런 ‘무너짐’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새 시장이 뽑혔다. 예상대로 ‘재건축’ 혹은 ‘재개발’이라는 단어가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어떤 날은 공약대로 규제 조항들을 시급히 완화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또 어떤 날은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사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는 말도 들린다. 이미 더 오를 수 없을 정도로 올라버린 서울 집값은 그때마다 다시 요동친다. 순미와 만옥은 지금 어디 있을까. 두 사람도 이 소식을 들었을까. 그녀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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