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우화로 담은 계급·빈부 격차 [책과 삶]

배문규 기자 2021. 4. 1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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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카르마 폴리스
홍준성 지음
은행나무 | 380쪽 | 1만4500원

“으레 비극이란 것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 단추는 당사자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부터 끼워지고 있었다. 아니, 그 시작을 말하는 것조차 우스꽝스럽다 하겠다. 왜냐하면 도미노는 먼 옛날부터 계속해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제목 ‘카르마 폴리스(Karma police)’는 라디오헤드의 노래이기도 하다. 흔히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되는 이 노래에선 사람들이 카르마 폴리스에게 보상이나 처벌을 요구하지만, ‘그건 너의 업보’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제목에서 예감할 수 있듯 소설에선 계급, 빈부 격차 등 인간의 보편적 역사를 현대적인 우화로 펼쳐낸다. 짜임새 있게 엮어낸 장르 소설이다.

배경은 현대적이면서 봉건적인 가상의 도시 ‘비뫼시’이다. 한 마리 박쥐가 날아오르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박쥐는 고서점 구석에서 책벌레를 먹으며 목숨을 연명하다가, 고서점의 폐점과 함께 세상으로 나오게 되고 바로 그날 송골매에게 죽임을 당한다. 박쥐 사체를 발견한 약재상은 박쥐를 약용으로 팔고, 그것을 고아 먹은 유리부인이 박쥐를 닮은 아이 ‘42’를 잉태하게 된다. 이야기 속 박쥐는 라이트모티프처럼 등장하는데 처음 장면들이 작품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도미노가 넘어지듯 이야기의 연쇄를 통해 더 큰 이야기로 나아간다.

작가는 이 소설을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만들어진 소설로 명명했다고 한다. <올리버 트위스트>나 <왕자와 거지>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고전과 철학, 예술과 역사 등 다양한 텍스트들을 인용하고 변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간다. 이야기의 마지막 역시 박쥐가 날아오르는 것으로 끝이 난다. 박쥐를 닮은 42번의 운명이 인간 사회의 ‘업’과 맞물려 흡인력 있게 펼쳐진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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