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오 시장' 업무 관전기

김양진 2021. 4. 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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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 8일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청으로 출근한 오세훈 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8일 서울시청 누리집에 붉은 바탕에 환하게 웃는 제38대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진이 내걸렸습니다. 4·7 보궐선거 기간 동안 “시대의 흐름이 있는데, (어떤 시장이 오든) 크게 달라질 게 있겠느냐”며 담담해하던 어느 서울시 공무원은 막상 오 시장 취임 뒤엔 “정신이 없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안녕하세요. 전국팀에서 서울시청 취재를 하고 있는 김양진입니다. 지난 일주일 남짓 오 시장 관련 이슈가 한국 사회를 휩쓸었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서울시장’이라는 직함을 달기 전후 그의 말이 가지는 영향력은 비교가 안 될 만큼 달라졌죠. 지난 10년간의 야인생활이 그를 독하게 단련시킨 걸까요, 모든 것을 건 선거 뒤 더 큰 정치인이 된 것일까요? 시장이 되자마자 그는 자신만만하게 지시를 쏟아냈습니다.

우선 코로나19와 관련해 ‘서울형 상생방역’, ‘일회용 진단키트’(자가검사키트)처럼 폭발력 있는 말들이 오 시장 입에서 나오자마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가검사키트를 활용해 영업장이 자체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이를 통해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이 ‘오세훈표 상생방역’의 뼈대입니다. 이 기획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희생’이 불가피했던 지난 1년3개월 방역대책의 약점을 파고들었습니다. 코로나19 방역은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어서, 그간 영업규제 완화 시도는 무척 조심스럽게 다뤄져왔습니다. 지난해 한 경제관료가 “방역과 목숨이 우선이고, 경제적 내상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오 시장의 ‘상생방역’ 방침은 시간이 갈수록 물음표를 낳고 있습니다. ‘4차 대유행’이 우려될 정도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파른데다, 그가 말한 ‘검사키트’의 민감도와 정확도가 낮아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검사키트는 국토 면적이 너무 넓거나, 유전자증폭(PCR)검사 역량이 안 되는 나라들이 어쩔 수 없이 도입하는 것이라 우리 실정과 안 맞는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식약처의 (자가진단키트) 허가를 촉구한다”는 오 시장의 발언은 현 정부를 깎아내리기 위한 정치공세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 아프리카 지역과 비교해 정부의 백신 접종을 비판한 대목은 ‘팩트’ 자체가 틀리며 좌충우돌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3일 “우리나라 코로나19 백신 접종 속도가 아프리카 나라보다 느리다”고 꼬집었는데, 국제통계 누리집 ‘아워 월드 인 데이터’를 보면 이날 아프리카 백신 접종률은 0.70%, 우리나라는 2.42%였습니다.

오 시장의 1번 공약이었던 ‘부동산 규제 완화’는 지난 일주일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선거 때 “서울시장에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풀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지난 14일이 약속한 일주일째였지만 어떤 ‘액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신속하지만 신중하게 추진하겠다”(11일 부동산정책협의회)며 되레 한발 물러선 상황입니다. 앞서 그의 취임 소식만으로 서울 재건축 추진 아파트들의 호가와 거래가가 급등하는 등 시장이 달아오른 데 따른 것입니다. 공시가격 문제도 ‘재산정’에 집중하는 모양새입니다. 선거 때 ‘공시가 동결’ 구호와 비교하면 톤이 확 낮아졌습니다. 지난 13일 서울시장 자격으로 처음 참석한 국무회의에서도 “공동주택 가격 결정 과정에 지방자치단체가 권한을 갖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만 말했습니다. 실제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나 공시가격 재산정 문제는 집값 불안과 곧바로 이어질 수 있어 속도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서울시장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오 시장의 발언에 서울시 공무원들은 진땀을 뺍니다. 자가검사키트를 활용한 시범사업 대상을 처음엔 ‘노래연습장’이라고 했다가, 하루 만인 13일 학교·종교시설 등으로 바꾼 일도 있습니다. 이에 서울시청 관계자는 “(말을) 바꿨다기보다 (오 시장의 발언 자료를) 자세히 보면 노래연습장 ‘등’이라고 돼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처음부터 능숙하게’ 시정을 해내겠다던 그는 취임 뒤 열흘 가까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 시장이 당장 기조를 바꾸거나 후퇴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자신이 압도적 지지로 승리한 ‘야당 시장’이고, 그만큼 기대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시민들의 큰 기대를 받는 만큼 오 시장이 부담을 팍팍 느꼈으면 합니다. ‘서민의 고통과 청년의 눈물을 닦아주는 공정과 상생의 시정을 펼치겠습니다.’ 오 시장은 취임 첫날 서울 곳곳에 이런 당선사례 펼침막을 내걸었습니다. 쉽지 않은 약속이지만, 꼭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김양진 전국팀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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