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위험한것? 상관에 '위험하다' 말못하는 문화죠

연규욱 2021. 4. 16. 17:3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백은성 공군 항공안전단장
국군의 유일한 안전 전문기관
조직문화와 사고 연관성 주목
경직된 조직일수록 위험 커져
꿈자리 얘기까지 할수 있어야
1997년 228명의 사망자를 낸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아웃라이어'에서 이 비극의 원인을 조종실 내 권위주의 문화에서 찾았다. 기장의 권위에 눌린 부기장이 급박한 상황에서 의견을 전달하지 못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글래드웰은 저서에서 "비바람이 부는 악천후에도 기장이 착륙을 강행했지만 부기장이 '노(No)'라고 직언하지 못해 대형 참사를 낳았다"고 적었다.

군에서 유일한 안전관리 전문부대인 공군 항공안전단 역시 '조직문화가 안전사고의 제1요인'이라고 가르친다. '국민 안전의 날'인 16일 매일경제와 만난 백은성 공군 항공안전단 단장(사진·예비역 공군 준장)은 "사람에 의한 사고에는 늘 부대의 경직된 조직문화가 배경에 있다"고 말했다. 백 단장이 군부대 조직문화를 항공 안전관리 제도의 중점에 두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항공안전단 안전관리 교육은 비행부대 조직문화를 진단·처방하는 데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항공안전단이 마련한 안전관리 시스템에 파일럿 개개인의 성격 유형을 MBTI로 측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백 단장은 "위계질서가 강한 군부대이다 보니 서로 의사소통이 더욱 힘든 측면이 있다"며 "개개인 성격을 분석해 기장이 부기장을 더욱 잘 이해하고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맞춤형으로 소통할 것을 권고하는 게 우리가 마련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안전 분야만큼은 아무리 저계급자나 저자격자라 하더라도 윗사람에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행 전 조종사의 신체·심리적 컨디션을 체크하는 시스템도 마련해놓고 있다. 30여 년간 KF16 전투기를 몰아온 공군 조종사 출신인 백 단장은 누구보다 조종사의 그날 컨디션이 비행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전날 꿈자리가 사나웠다든지, 잠을 설쳤다든지, 아내가 악몽을 꿨다든지, 과한 운동으로 피로가 쌓였다든지 하는 모든 경우가 비행 안전과 직결된다"며 "저조한 컨디션으로 비행하면 조종사가 비행 착각을 경험할 가능성이 확연히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백 단장은 "'어젯밤 아내 꿈자리가 사나웠다'는 사소한 요인이라도 상관에게 이를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항공안전단은 모든 조종사에 대해 '조종실 자원 관리(CRM)' 교육을 통해 전투기 내 전·후방석 조종사 간, 항공기 내 기장·부기장 간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백 단장은 "안전의식에는 마지노선이 있어야 한다"며 "아무리 계급 차이가 나고 내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개인이 느끼기에 안전상 절대 안 될 것 같은 것은 상관에게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시당하거나 꾸지람을 들을 수 있어도 안전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소신 있게 어필하는 것 역시 요즘 시대에 요구되는 자질"이라고 강조했다.

공정한 조직문화를 위한 항공안전단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항공안전단은 상관과 역할을 바꿔 대화를 나눠보는 '역할극', 비행 대대원이 대대의 '공정문화'를 각각 평가하는 설문조사 등 안전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공정문화 교육에 전문성을 더하고자 항공안전단은 조직심리학 박사 출신을 영입해 심리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연극인을 초빙해 역할극을 관리한다. 항공안전단의 교육은 공군 파일럿뿐 아니라 헬기를 조종하는 육·해군은 물론 경찰·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하기도 한다. 이 같은 노력으로 비행 사고율(공군 기준)은 2000년대 1.4(10만시간당 사고 발생 건수)에서 2010년대 0.7로 크게 줄었다.

그렇다고 해서 백 단장이 '느슨한' 조직문화가 안전사고 예방의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백 단장은 개인의 전문성과 조종사로서 장인정신을 후배들에게 주문한다. 백 단장은 "과거에 비해 개인주의 풍조나 '워라밸' 문화가 생겨나다 보니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에 다소 미흡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첨단 항공 무기체계를 새롭게 도입할수록 숙지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며 "개인의 전문성을 더욱 갈고닦아야 그만큼 안전도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규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