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말까지 친문 장관 인사..부동산 실패·탈원전 역주행 계속될 듯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5월까지인 임기를 함께 마무리할 경제팀을 새로 구성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후임으로 기획재정부 출신 노형욱 전 국무조정실장을 지명했다. 또 재임기간이 2년 이상인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도 교체하는 등 인적쇄신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의 4·7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국정상황을 정리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번 개각의 특성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직 의원들의 내각 입성이 단 한명도 없다는 점이다. 후임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5개 부처 중 4개 부처가 행정고시 출신 정통 관료들로 채워졌다. 특히 정치인이었던 김현미 전 장관, 친여 성향 학자 출신이었던 변창흠 장관이 부동산 정책을 이끌었던 국토부는 예산 관료 출신인 노형욱 후보자가 지휘권을 물려받아, ‘25전25패’의 부동산 정책 실패의 뒷수습을 맡게 됐다. 다른 부처도 탈원전 등 에너지 정책 실패(산업부), 반도체 수급 논란(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해운 물류대란(해양수산부)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관가에서는 정치인 출신이 아닌 관료 출신이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을 주도하게 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이번에 장관직에 발탁된 인물들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오류를 수정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이낙연, 정세균 등 여당 실세 정치인 국무총리를 보좌한 국무조정실 출신 친(親)정부 성향 관료들이 대거 부처 장관으로 투입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기 동안의 ‘잃어버린 4년’이 연장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토부-기재부-여당 ‘삼각편대’ 구성...부동산 정책 강행 의지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차기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노형욱 전 국무조정실장(행시 30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문승욱 국무조정실 2차장(행시 33회),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안경덕 안경덕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행시 33회),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박준영 현 차관(행시 35회)를 지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로는 이화여대 교수 출신 임혜숙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을 내정했다.
관가에서 주목하는 이번 개각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인 입각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인선은 모두 여당 재선 의원인 황희, 권칠승 장관으로 채워져 문재인 정부의 정치인 입각 선호 기조가 이어졌다. 이밖에도 교육부, 행정안전부, 법무부 등이 전·현직 의원으로 장관 자리가 채워져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기재부 출신인 노형욱 후보자가 부동산 정책을 책임지는 국토부 장관에 발탁된 것은 나름 달라진 인사기조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평가된다. 행시 30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사회예산심의관, 재정관리관(차관보급) 등을 역임한 노 후보자는 예산실에서 잔뼈가 굵은 재정전문가다. 3선 의원 출신으로 ‘부동산과의 전쟁’을 외치며 규제일변도의 정책을 주도했던 김현미 장관과 친여 성향 학자 출신으로 민간 참여를 배제시킨 ‘공공 재개발’ 개념을 들고 나온 변창흠 장관에 비해서는 부동산 정책을 합리적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들 정치인 장관 재직시 국토부와 기재부는 상당한 마찰을 겪었다. 가급적이면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를 최소화하려고 했던 기재부와 정치인 장관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국토부가 상당한 반목을 겪었던 것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한 2·4 대책의 차질없는 추진, LH 개혁 등 땅 투기 사건에 대한 수습책 마련 등을 위해서는 국토부와 여당, 기재부의 다각적인 협력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태"라면서 "노 후보자를 차기 국토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은 국무조정실장로 재임하면서 쌓은 정무적 감각과 기재부 출신으로 경제에 대한 균형감있는 시각을 높이 평가한 결과로 보인다"고 했다.
◇해운대란 책임자가 장관으로…친여 관료 출신 장관들, ‘아바타 장관’ 될 수도
그러나 노 후보자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분위기도 있다. 예산실 출신인 노 후보자는 과장급 승진 이후 국토교통 분야 예산 편성 업무를 전담해서 맡아본 경험이 없다. 오히려 광주제일고 출신으로 호남 출신 예산 관료 계보를 잇고 있다는 점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배경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그는 박근혜 정부말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차관급)으로 승진한 이후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후에도 이례적으로 자리를 지켰고, 2018년 11월부터는 장관급 국무조정실장으로 승진했다. 현 정부 초대 국무총리인 이낙연 전 총리의 고교 후배라는 점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호남 출신으로 ‘친정부 성향 경제관료’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노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 전환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오히려 서울 도심 노후 아파트에 대한 전면적인 재건축·재개발을 추진하려고 하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노 후보자가 대척점에 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논란이 되고 있는 공공재개발 현금청산도 강행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2.4 공급대책 발표일인 4일 이후 매입한 토지주들에게는 우선분양권을 주지 않고 감정가 기준으로 혐금 청산만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시장에서는 과도한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이끌었던 산업부 장관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 출신 문승욱 후보자가 지명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폭주와 무리한 신재생 에너지 드라이브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무조정실에서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청와대와 산업부 사이의 의사소통 메신저 역할을 했던 문 후보자가 산업부 장관으로 취임하면, 탈원전 기조 연속성을 더욱 강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에서 근무한 문 후보자는 관료들 사이에서도 ‘친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는 당시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청와대 국정상황실에서 함께 근무했고, 그 인연으로 2018년 7월부터는 경남도 경제부지사로 김 지사와 호흡을 맞췄다. 문 후보자가 차관급인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으로 발탁된 것도 김 지사의 천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박준영 해수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해 발생한 ‘해운 물류대란’ 당시 담당 차관으로 근무하면서,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다. 작년 연말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잠시 주춤했던 소비심리가 회복되고 성수기가 겹치면서 물동량이 급증했고, 수요보다 선박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중견·중소기업들이 선박을 구하지 못해 수출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됐기 때문이다.
◇홍남기 빠진 '반쪽짜리' 개각…"잃어버린 4년이 5년으로 될 듯"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동산 정책 등 경제정책 실패에 책임을 져야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개각 명단에서 제외한 것을 놓고 ‘반쪽짜리 개각’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부동산 정책을 포함한 경제정책의 총 책임자인 경제부총리 교체를 통해 정부가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대대적인 정책 쇄신에 나서야 했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경제 전문가들은 ‘이게 선거 대패 후 민심 수습용 개각이냐’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세를 공고화하고, 경제구조 개혁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경제수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코로나 핑계를 대고 있지만, 이미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7년 3.2%에서 2019년2.0%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며 "팩트는 코로나 이전에도 한국은 성장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번 개각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 최저임금 과속 성장을 하면서 허비한 잃어버린 4년이 5년으로 연장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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