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 고개드는 '원전 재건론', 퇴임 후에야 힘 싣는 아베
[경향신문]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여당인 자민당 의원들이 최근 발족한 원자력 발전 재건 모임에 참여한 것을 두고 일본 내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여당이 원전 재건 논의를 시작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아베 전 총리의 퇴임 이후 행보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다. 장장 7년8개월의 재임기간 동안 원전에 대해 침묵하다가 퇴임 이후에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6일 아베 전 총리가 자민당 의원들이 만든 ‘탈탄소 사회 실현과 국력 유지·향상을 위한 최신형 원자력 재건축 추진 의원 연맹(이하 원자력연맹)’의 고문을 맡았다고 보도했다.
자민당 의원 40여명은 지난 12일 일본 의회에서 원전 신·증설 등을 추진하는 ‘원자력연맹’ 설립 총회를 진행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10주기 행사가 있은지 1달여만에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는 모임이 발족한 것이다.
아베 전 총리는 누카가 후쿠시로 전 재무상,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생담당상, 호소다 히로유키 전 간사장 등 자민당 중진 등과 함께 설립총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아베 전 총리는 “에너지 정책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원자력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의 ‘친원전 발언’은 재임기간 그가 보여준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듬해인 2012년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한 아베 전 총리는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임에도 재임기간 내내 원전 재가동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일본 정부는 2014년 ‘에너지 기본계획’에서 원전에 대해 “중요한 기간 전원”으로 평가하면서도 “가능한한 의존도를 저감한다”고 했다. 2018년에 개정한 현행 에너지 기본계획 역시 원전 신·증설 계획은 포함돼 있지 않다. 실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54기였던 일본의 원전은 현재는 9기만이 가동되고 있다. 원전에 대한 안전 규제가 크게 강화되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로를 완전히 처분하는 폐로가 결정된 원전만 21기에 달한다.
타치바나가와 타케로 일본 국제대 교수는 마이니치 신문에 “아베가 원자력연맹의 고문이라니 희극 같다”며 “아베 정권이 원자력 발전에 대해 한 것은 어디까지나 재가동을 승인한 것에 그친다. 더욱이 의견 대립이 예상되는 원전 재건에 대한 논의는 오히려 경제산업성이 원해도 봉인해 왔다”고 했다. 경제산업성의 한 관계자 역시 이 신문에 “우리로서는 신증설을 에너지 기본으로 쓰는 것은 대찬성이지만 지금까지 신증설안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은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원전 신증설론’을 부인하고 있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원전 재건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50년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일본의 국가 목표는 원전 재건론의 주요 명분이 되고 있다. 가지야마 히로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 2월 “개인적으로 원자력이 필수불가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 각료로서는 드물게 원전 재가동 의지를 공식 피력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운영사인 도쿄전력 역시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원자력의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론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시민 76%는 후쿠시마 원전 사과와 같은 중대사고의 재발 우려를 들며 탈원전 정책을 지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스가 요시히데 총리 역시 지난해 11월 “원전 신증설에 대해 현 시점에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거리를 뒀다.
하지만 여당인 자민당을 중심으로 원전 재건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친원전으로의 정책 변화는 서서히 힘을 받을 전망이다. 원자력연맹 회장을 맡은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상은 총회 후 기자회견에서 “원자력은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기술”이라며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원자력 발전의 재건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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