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돌아 강이 흘러 바다와 만난 곳 ..따로 또 같이, 정겹고 맛있다 [지극히 味적인 시장 (53)]

김진영MD 2021. 4. 16. 16: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동 오일장

[경향신문]

벚꽃이 지고 참게와 은어는 아직 맛이 안 차는 시기, 하동 오일장에서는 바지락, 대합, 백합, 우럭 조개(사진 가운데)가 행인을 유혹한다.

하동 가는 길은 항상 반갑다. 오래 묵은 친구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전국을 20년 동안 꽤 많이 다녔다. 많이 다닐 때는 1년에 6만㎞, 적게 다닐 때는 2만~3만㎞였다. 얼추 100만㎞는 되지 않을까 싶다. 산이 좋은 곳, 강이 좋은 곳, 아니면 바다가 좋은 곳이 많이 있다. 산도, 강도, 바다도 좋은 곳은 우리나라에서 하동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지리산을 돌고 돌며 흐르는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 하동이다. 물론 광양과 공유하고 있지만 말이다.

하동은 꽤 많이 다닌 동네다. 처음은 2003년 초로, 하동 악양의 솔잎 한우를 보러 갔다. 두 번째는 봄 햇살이 좋은 4월이었다. 강변 둑 옆 녹차밭에 갔다. 일 끝내고는 봄 햇살에 끌려 둑 위로 올라갔다. 둑에 앉아서 반짝이는 햇살 싣고 떠나는 강물을 한동안 바라봤다. 나중에, 나중에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동은 녹차 생산을 많이 한다. 하동 녹차를 홍차처럼 발효한 것을 ‘잭살’이라고 한다. 잭살은 찻잎 중에서 참새 혀와 닮은 어린 잎을 따로 부르는 ‘작설’의 하동식 발음. 차는 덖는 과정 중 푸른빛이 짙어진다. 녹차 특유의 검푸른 색이 아닌 발효의 색이 더해져 붉은빛을 띠기에 홍잭살이라고도 한다. 하동식 홍차가 바로 잭살차이다. 잎차 판매도 하지만 손쉽게 밀크티를 만들 수 있도록 한 베이스 제품도 있다. 하동 로컬푸드 매장이나 특산물 전시관에서 판매한다. 대만식 홍차 밀크티 전문점에서 먹던 맛과 다른 맛이다. 은은하지만 여운이 꽤 있는 밀크티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 금향다원 (055)883-4882

누구나 알고 있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화개장터. 화개장터가 관광객 대상이라면 하동과 진교 오일장은 동네 사람들이 애용하는 장터다. 하동 오일장은 2, 7 숫자가 든 날에 열리는 ‘이칠장’. 시장에 들어서면 근처 바다에서 온 것들이 장터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실 하동으로 출장 다닌 이유가 녹차, 매실, 한우, 배였다. 하동에서 바다 것을 찾지 않다 보니 바다가 있는 하동임에도 수산물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섬진강에서 나는 재첩 대신 바다에서 온 바지락, 대합, 백합, 우럭조개가 행인을 유혹하는 모양새가 낯설었다. 하동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오른쪽은 여수와 광양. 아래와 왼쪽은 남해와 사천이다. 지리산의 영양분이 섬진강 따라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바다 아래에 자리 잡은 조개들이 그 영양분을 먹으며 산란을 준비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山 산 어린 녹차 발효시킨 홍잭살·솔잎을 먹인 한우…쌍계사엔 흐드러진 벚꽃
▶江 강 지리산에서 흘러든 양분을 머금은 섬진강 재첩국·오뉴월이 제철인 참게
▶海 바다 미역국에 넣어도, 숙회로 먹어도 제 맛인 우럭조개는 딴 데선 구경 못 해

양념이 과하지 않아 식재료의 온전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두부전골.

벚꽃이 지고 참게와 은어는 아직 맛이 안 찬 시기, 하동에서 찾아야 할 것은 남해의 조개다. 흰 바탕에 줄무늬가 있는 우럭조개. 낯선 조개지만 지역에서 사랑받는 조개 중 하나다. 다른 조개처럼 해감만 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손질이 좀 귀찮다. 살을 발라내 수관 부분을 손질해야만 제대로 맛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손질한 것으로 미역국, 숙회무침을 하면 최고의 맛을 낸다고 한다. 껍데기가 붙어 있는 녀석으로 사려 하니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치신다. “여 사람은 자주 먹어 손질이 다들 선수여. 익숙하지 않으면 애먹어. 깐 거 사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2만원짜리 우럭조갯살을 사려는데 큼지막한 대합이 눈에 들어왔다. 우럭조개는 작은 것으로 주문하고 대합도 샀다. 대합을 사다 보니 백합이 눈에 밟혔다. 작년 6월 전북 고창에서 맛본 뒤 오랜만의 조우다. 1㎏ 1만원. 사다 보니 손에 든 봉지가 다섯 개. 근처 산에서 딴 나물까지 욕심을 냈다.

섬진강 따라가면 식당들이 꽤 있다. 대부분이 재첩과 참게를 파는 식당이다. 재첩은 작년 장마 여파로 아직 씨알이 굵지 않다고 한다. 참게도 아직 살이 여물지 않았다고 한다. 섬진강에서 나는 참게 이름은 ‘동남참게’. 가을이 제철인 임진강의 참게와는 다른 종이다. 동남참게 제철을 가을이라 하면 안 된다. 동남참게는 여름에 산란하기에 5~6월이 제철이다. 수족관에 은어도 많이 보이지만 태백산 근처 봉화 등지에서 양식한 은어다. 은어도 참게랑 비슷한 시기에 맛이 든다. 가끔 필자한테 어디가 재첩국 맛집인가 묻는 이들이 있다. 내 대답은 항상 같다. “지금 눈에 보이는 집, 그 집”이라고. 재첩국 끓여 낸 모양새나 맛이 다들 비슷했다.

하동 가면 재첩국만 생각했는데 이제 햄버거도 추가다.

1996년 분당 삼성프라자가 오픈할 때 양평의 개군한우 판매를 시작했다. 거세우가 브랜드 육으로 첫선을 보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 많은 브랜드 한우가 나왔다. 지역 특산물을 사료로 활용한 한우가 대부분이었다. 홍천의 알코올발효 사료 먹인 한우, 하동의 솔잎 먹인 한우 이런 식이었다. 소 사육 두수가 많은 곳이면 하나씩 생겼다. 2003년 지인 소개로 악양에서 발효한 솔잎을 사료에 섞여 먹인 한우를 처음 맛봤다. 그 이후로는 하동에서 고기보다는 남들처럼 재첩이나 참게를 먹다가 솔잎 한우를 먹었다. 가격은 다른 축협 판매장과 비슷한 수준. 도시에 있는 고깃집 2인분 가격이면 서넛이 먹을 수 있는 가격이다. 지방이 골고루 퍼진 1++ 등급 고기의 맛을 구별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드물지만 바코드에 찍힌 가격은 누구나 구별할 수 있다. 축협이나 한우 조합에서 운영하는 식당의 장점이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장탕 메뉴까지 있어 출장길 오갈 때 다시 들러볼 생각이다. 하동 나들목 근처에 있어 접근성 또한 좋다. 하동솔잎한우프라자 (055)884-1515

악양에서 발효한 솔잎을 사료에 섞어 먹인 솔잎 한우.

하동 읍내에서 20㎞ 떨어진 고하에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다시 읍내로 돌아오면 왕복 40㎞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장날, 장터 구경을 끝내고 빗속을 뚫고 달려간 데에는 ‘궁금함’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서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있던 젊은이들이 고하에 모여 햄버거 가게를 차린 까닭이 궁금했다. 물론 주말이면 대기 줄이 길어진다는 햄버거 맛도 궁금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 젊다는 것과 여행하기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지인의 지인 소개로 만나 의기투합했다. 그 결과물이 고하 버거앤카페다. 마을에 버려진 쌀창고를 개조해 노란색 외관을 가진 햄버거 가게를 차렸다. 탄생 당시의 우려를 뒤로하고 순항 중이다. 주문하며 이런저런 질문으로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결됐다. 그다음은 햄버거 맛. 처음 가는 햄버거 가게에서는 우선 기본을 시킨다. 가격이 가장 저렴하기도 하지만 주문한 기본 햄버거가 맛있으면 다른 햄버거 맛은 안 봐도 알 수 있다. 햄버거에서 가장 중요한, 패티와 번은 주방에서 직접 만든다고 한다. 나온 햄버거를 꾹 눌러서 포크와 나이프로 먹으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저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햄버거에 대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접시를 내 쪽으로 바짝 당겨 떨어지는 소스 받을 채비를 했다. 두 손으로 햄버거를 잡고는 크게 베어 물었다. 적절한 지방, 적절한 짠맛이 입안을 강타한다. 구수한 번이 지방과 소금의 질주를 다독거린다. 같이 간 이와 동시에 ‘맛있다’를 외쳤다. 하동 가면 재첩국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햄버거도 추가다. 고하 버거앤카페 0507-1318-7982

오랜만에 쌍계사에 올랐다. 벚꽃 필 무렵 쌍계사 주변은 꽃구경 나온 이가 활짝 핀 벚꽃 수와 맞먹을 정도로 많다. 꽃이 지면 다시 고즈넉한 풍경으로 돌아온다. 이때, 가장 아름다운 길로 변한다. 간간이 오가는 차만 있을 뿐, 길옆 벚나무는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초록색 터널을 만든다. 봄 초록이 긴 여운을 지닌 채 다가오는 시기다. 그 사이를 잠시 걷거나 서 있기만 해도 차분해진다.

길을 걷다가 재첩이나 참게 전문식당 사이에 있는 두부 파는 식당에 들어섰다. 여기서 주문해야 하는 것은 두부백반.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두부전골을 주문했다. 두부백반은 모두부를 콩물에 끓여 먹는 음식이다. 전골은 버섯과 두부를 넣고 끓여 먹는 것. 나온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보통 두부전골은 양념이 강한 곳이 많다. 이 식당은 다른 곳과 달리 고춧가루를 아주 조금만 사용했다. 그래야 온전히 고소한 두부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념이 과하지 않으니 전골 재료로 쓰인 식재료의 온전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식사 끝내고 나가면서 다른 식탁의 두부를 보니 내가 먹었던 전골과 다른 모양새다. 하얀 콩물에 두부가 끓고 있었다. 그제야 메뉴를 착각해서 전골로 주문한 것을 알았다. 우리 테이블만 빼고는 전부 다 두부백반을 먹고 있었다. 아침마다 만드는 두부가 고소함을 제대로 품고 있다. 두부를 좋아한다면 하동을 가야 할 만큼 맛있다. 콩사랑차이야기 (055)882-8313

▶김진영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6년차 식품 MD.

김진영MD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