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해법 찾자" 대화요청..고덕 아파트, 묵묵부답
"자존심 때문이라면 거듭해서 몇번이라도 사죄"
시한부 세대별 배송 재개..아파트 앞 농성 예고
[서울=뉴시스] 홍지은 기자 = "입주민대표회의가 택배노조 측과 대화를 나눠주십시오.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택배 물품을 받을 수 있도록 슬기와 지혜를 마련해주시길 바랍니다."
16일 '택배 대란' 논란을 일으킨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길 한가운데에 선 택배기사들이 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를 향해 "다시 한번 간곡히 호소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오후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 1번 앞에 선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기자회견을 열고 고덕동 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에게 대화를 거듭 요청했다.
강규혁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이 아파트는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큰 아파트 단지"라며 "직선거리로만 2.3㎞ 전후로 돼 있고, 아파트에서 배송하는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만보기 숫자는 4만보가 넘는다"고 했다.
이어 "4만보는 물건 하나 들지 않고 운동으로만, 걷기로만, 빠른 걸음으로 해도 4~5시간 걸리는 걸음 수"라며 "맨몸도 아니고 수레에 산더미같은 물건을 끌고 있다. 게다가 비가 오거나 더운 날, 추운 날은 고통이 2~3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 공동대표는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싶다는 입주민들의 마음을 존중한다"며 "저희의 제안은 (절충점을 찾기 위한) 대화를 해보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택배노조 측은 몇 차례나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화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입주자대표회의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이유로 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노조 측은 ▲아파트 내 안전속도 준수 ▲후면카메라 의무 설치 ▲안전요원 배치 등의 대안을 제시하며 지상 출입을 허용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강 공동대표는 "이런 소박한 제안도 일거에 거절되고 생계를 저당 잡힌 택배기사들을 온갖 문자메시지로 협박하고 삶을 근본적으로 앗아가려는 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결정은 전체 입주민 뜻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며 대화를 거듭 촉구했다.
이어 "무조건 우리의 뜻만 요구하지 않는다"며 "지금이라도 입주자대표회의와 함께 마주 앉아서 다양한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
또 "혹여라도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대화에) 못 나오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만 접어달라"며 "그런 마음이면 제가 대표해서라도 거듭해서 몇 번의 사죄를 올릴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은 "원만한 입주자대표회의와의 협상과 타결이 있을 때까지 이 투쟁은 중단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진 위원장은 "끊임없이 저탑과 손수레 배송을 하는 것은 기사들의 뼈와 살을 갈아넣는 배달행위"라며 "총파업을 포함,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택배사들에 대해 엄중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나가겠다"고 예고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도 이날 마이크를 잡고 "아무리 이기적인 세상이고 편리를 추구하는 세상이어도 최소한 서로가 지켜야 할 매너와 룰이 있고 가치와 철학이 있는 것"이라며 입주자대표회의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호소했다.
택배노조는 이날부터 해당 아파트 '단지 앞 배송'을 중단하고 세대별 배송을 시한부로 재개하기로 했다. 일부 입주민들이 항의성 문자메시지와 전화를 보내면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택배기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다만 택배노조 측은 "단지 앞 배송을 중단한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중단한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CJ대한통운, 한진 택배노동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더 광범위한 개별배송 중단책을 만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택배노조 측은 또 이날부터 아파트 앞에 농성장을 만들어 촛불집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노조 측은 "국민 여론을 모아내는 활동을 벌여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택배노조 측은 오는 18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와 25일 대의원대회를 연이어 열어 투쟁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선 해당 아파트 택배 배송 자체를 거부하는 총파업 방안 등도 거론될 전망이다.
5000세대 규모로 알려진 이 아파트는 주민 안전 등을 이유로 지난 1일부터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도로 진입을 막았다.
하지만 해당 아파트 지하 주차장 입구 높이가 2.3m여서 진입하지 못하는 택배차량이 있어 논란이 불거졌다. 일반 택배차량의 높이는 2.5~2.7m다. 이 때문에 택배기사들은 단지 안에서는 손수레를 이용해 배송하거나, 사비로 저탑차량으로 바꿔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택배노조는 이같은 행동을 '갑질'로 규정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아파트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조치와 요구사항이며 결정 과정에서 택배기사들의 의견은 배제됐다는 것이다.
아파트 측에서는 1년 전부터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 금지를 알리며 충분한 계도 기간을 제공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이 아파트 후문 입구에 물품 1000여개가 쌓이는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di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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