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포럼 장사'..코로나19 시대에도 계속됐다

홍주환 2021. 4. 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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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멈춰 섰던 2020년에도 우리나라의 언론사들은 각종 명목의 포럼을 열어 국민 세금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500곳 가까운 정부부처, 공기업, 지방자치단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인한 결과, 지난해 언론사들이 개최한 포럼에 참가비와 협찬비 등으로 쓰인 예산은 확인된 것만 12억 원이 넘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1월 언론사들이 신종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포럼' 실태를 보도한 바 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나라의 공공기관들이 각종 언론사 주최 포럼에 쏟아부은 예산이 90억 원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19 맞춤형 '비대면 포럼'... 참가비는 오프라인 행사 때와 동일

언론사가 주최하는 포럼과 콘퍼런스는 대부분 서울 소재 특급호텔의 강당이나 대형 홀에서 진행돼 왔다. 청와대와 국회, 대기업, 유명 대학 소속의 유력 인사들이 초청되고 관객도 최소 수백 명에 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휩쓴 지난해엔 사정이 달랐다. 현장 참석자는 최소화됐고, 대신 비대면-온라인 방식이 주로 활용됐다.  

언론사가 주최하는 포럼 중 가장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세계지식포럼'(매일경제 주최)도 온라인 위주의 행사로 진행됐다. 매년 서울 장충체육관을 통째로 빌려 진행할 만큼 큰 행사였지만 지난해엔 포럼 현장 참석자가 50명으로 제한됐다. 입장 티켓을 산 참석자 대다수는 온라인으로 포럼을 시청했다. 일부 프로그램은 유튜브·트위터 등에 무료로 공개됐다. 

하지만 2020년 세계지식포럼의 참가비는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때와 같았다.   

지난해 9월 진행된 매일경제신문의 '세계지식포럼'. 매일경제는 오프라인 참가자 수를 50명 이하로 제한했다. 나머지 관객들은 온라인을 통해 포럼을 시청해야 했다. (출처 : 유튜브 - World Knowledge Forum)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는 지난해 1080만 원을 들여 '세계지식포럼' 애플리케이션 인증번호 3개를 구매했다. 인증번호 1개당 가격은 360만 원. 그런데 행안부가 인증번호를 산 때는 포럼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세계지식포럼에 참여해 시대적 흐름을 알기 위해 3매를 구매했다. 코로나 때문에 직접 참여가 어려워서 포럼이 끝난 후 온라인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행정안전부 내부 문서. 매일경제신문이 주최한 '세계지식포럼' 온라인 티켓 3개를 1080만 원에 샀다고 적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과 통계청도 360만 원씩을 주고 세계지식포럼 온라인 티켓을 구매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매일경제 쪽에서 선착순 50명만 오프라인 관객으로 받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려줬다. 할인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비싼 건 맞다"고 말했다.

다른 언론사 포럼도 가격이 오프라인 행사 때와 같거나 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머니투데이가 운영하는 포럼 '키플랫폼'은 일부 강연이 화상회의로 이뤄졌지만, 티켓값은 예년과 동일한 180만 원(일반등록 기준)이었다. 화상 강연이 일부 있었던 서울경제신문의 '서울포럼'의 참가비도 법인 220만 원, 개인 150만 원으로 2019년과 같은 금액이었다. 뉴스1이 운영하는 '미래포럼'도 일부 프로그램이 화상 강의로 바뀌었지만, 티켓 비용은 예년과 같은 220만 원이었다.

조선일보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은 비용을 일부 낮춰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참가비가 1인당 250만 원이었지만, 모든 일정이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된 지난해 참가비는 100만 원이었다.  

지난해 5월 열린 머니투데이의 포럼 '키플랫폼.' 일부 강연이 화상회의로 대체됐다. (출처 : 유튜브 - K.E.Y. PLATFORM by MoneyToday)

한 일간지 현직 기자는 "행사가 온라인 위주로 진행됐는데도 예년과 똑같은 값으로 포럼 입장권을 사라고 출입처에 말하기가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솔직히 포럼이 단순히 강연은 아니잖아요. 정계·재계·학계 인사들이 모여서 얼굴도 비추고, 네트워킹하는 기회도 제공하니까 비싸도 부를 명분이 있었죠. 그런데 이번엔 오라고 하는 입장에서 좀 그랬죠. ‘저번이랑 비용이 왜 같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었어요.
- 모 일간지 현직 기자

'요청 금액' 콕 찍어 요구...MBN은 한수원에 '마스크 협찬해 달라'

뉴스타파는 언론사들의 포럼 영업 행태를 알 수 있는 문서도 확인했다. 언론사들이 포럼 참가나 협찬을 요구하며 공공기관에 보낸 문서들이다. 이 문서들을 보니, 상당수 언론사는 공공기관에 대놓고 "특정 금액을 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헤럴드경제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 보낸 공문에서 자사 포럼인 '이노베이트 코리아'에 협찬을 해달라며 '요청 사항 : 티켓 금액 장당 50만 원'이라고 썼다. 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요청받은 대로 포럼 티켓을 사 줬다. 

서울경제신문도 마찬가지였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 보낸 '서울경제 창간 60주년 기념 서울포럼 2020 등록 후원의 건' 공문에는 '요청 금액 : 1장당 2백만 원'이라고 적혀 있다. 이 공문을 받은 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은 직접 포럼에 참가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 서울경제신문으로부터 받은 공문. '요청 금액 2백만 원'이라고 적혀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측은 "서울경제뿐만 아니라 보통 언론에서 티켓을 몇 장 사달라는 식으로 지정해서 요청서를 보낸다. 하지만 금액적으로 부담스러워서 다 맞춰줄 순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시대에 걸맞게 참가비·협찬금 대신 다른 물품을 공공기관에서 받은 언론사도 있었다. 바로 마스크를 협찬받은 MBN의 'Y포럼'이다.  

한수원은 지난해 2월 열린 Y포럼에 마스크 3천 개를 협찬했다. 비용은 부가세를 포함해 총 1천 4백여만 원. 한수원의 내부 문서에는 'MBN의 협찬 요청사항이 미세먼지 마스크 3천 장'이라고 나와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MBN으로부터 '행사 인원에 맞춰서 마스크 3천 개를 요청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MBN Y포럼 행사 협찬 시행' 문서. MBN으로부터 미세먼지 마스크 3천 장 협찬을 요청받았다고 적혀 있다. 

당시 한수원이 협찬해준 마스크는 Y포럼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배포됐다. MBN은 이를 두고 '철저한 방역 대책을 세웠다'는 내용의 홍보기사를 쓰기도 했다. 

2020년 언론사 포럼에 공적자금 12억여 원...1위는 매일경제

뉴스파타가 정보공개를 청구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시·군·구 포함)는 모두 489곳이다. 이중 언론사 포럼에 참석한 적이 없다고 밝힌 기관은 382개, 답을 하지 않은 기관은 10개, 정보를 비공개한다고 밝힌 기관이 4곳(예금보험공사·산업은행·수출입은행·중소기업은행)이었다.

정보를 공개(부분공개 포함)한 93개 기관이 지난해 언론사 포럼에 쏟아부은 공적자금은 12억 원이 넘었다. 

1위는 1억 200만 원을 쓴 부산광역시였다. 부산시는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부산해양경제포럼', 매일경제신문의 '세계지식포럼 부산'에 후원비로 각각 5000만 원을 냈고, 조선일보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도 참가비 200만 원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2위와 3위는 강원랜드(9300만 원)와 한국가스공사(5300만 원)였다. 강원랜드는 강원일보 등이 주도한 '폐광지역 포럼'에만 후원비로 9000만 원을 냈다. 4위는 한수원(4700만 원), 5위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4300만 원)이었다. LH는 티켓 한 장에 360만 원인 매일경제 세계지식포럼에만 12명의 직원을 보냈다. 

정보공개청구 결과를 토대로 만든 2020년 언론사 포럼 지출 공공기관 순위표.

포럼을 열어 가장 많은 공적자금을 챙긴 언론사는 매일경제신문이었다. 매일경제는 공공기관에 포럼 티켓을 팔아 4억 1900만 원을 벌어들였다.

2위는 강원일보(1억 6500만 원)였다. 강원일보는 지난해에 '횡성 인구정책 심포지엄', '홍천학 심포지엄', '폐광지역 발전포럼' 등 5개의 포럼을 주최(혹은 공동주최)했다. 여기에는 강릉시, 횡성군, 홍천군, 강원랜드 등 강원도 지역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참가·후원비를 댔다. 

조선일보(8200만 원), 머니투데이(7700만 원), 헤럴드경제(7450만 원)가 그 뒤를 이었다. 

"언론사 허락 받아야 정보공개 할 수 있다"는 공공기관

뉴스타파는 '언론사 포럼 참가 내역' 정보를 비공개하거나 부분공개한 공공기관들에 '정보를 비공개·부분공개한 이유'를 물었다. 답변은 놀라웠다.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지난해 언론사 주최 포럼 2개에 참석해 900만 원을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떤 언론사가 주최한 포럼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중소기업유통센터 측은 서면 답변서에서 "언론사와 관계 유지를 및 홍보를 위해 매체 명은 생략함을 양해 바란다"고 썼다.

중소기업유통센터가 뉴스타파에 보낸 정보공개청구 답변서. '언론사와 관계 유지' 문제로 인해 정보를 부분공개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유통센터 관계자는 뉴스타파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언론사 이름이 노출되면 우리 입장이 곤란해질 것 같아서 이름을 가렸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유통센터 측은 "언론사와 관계 유지는 정보공개법에 나온 정보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항의를 받고서야 언론사 이름을 공개했다.

인사혁신처와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도 관련 정보를 숨겼다. 두 기관은 참가 포럼·언론사 이름은 밝혔지만, 참가비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인사혁신처는 '예산 지출 내역의 세부 금액'은 비공개하는 것이 내부 방침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인사혁신처 대변인실 관계자와 일문일답. (○은 뉴스타파 기자, ●은 인사혁신처 대변인실 관계자).

○ 포럼에 참여했다고 하셨는데 금액을 안 써주셔서.
● 금액은 이렇게...저희가 판단할 때는 공개하는 게 곤란하다 생각을 해서. 저희가 특별히 많이 한 게 아니라. 
○ 그런데 안 알려주시는 이유가 뭐예요 혹시?
● 다른 건 없어요. 저희가 방침을 그렇게 받고...
○ 방침이 왜 그런 거예요? 
● 방침은 그냥. 회계나 이런 것은 비공개해가지고. 다른 건...
○ 정부기관인데 어떻게 돈을 썼는지에 대해서, 얼마 썼는지 알려달라는 건데. 액수도 못 알려준다는 말씀이세요? 모든 사항에 대해서 액수는 절대 안 알려주세요? 
● 일단은 그렇게 판단을 드리는 거니까요.

인사혁신처가 참가비를 낸 포럼은 세계지식포럼(매일경제신문), 홍보포럼(이데일리),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조선일보)였다. 

세종시에 있는 인사혁신처 청사.

방송통신전파진흥원은 언론사 포럼에 쓴 예산 내역을 묻는 정보공개 요청에 "언론사의 허락을 받아야 공개할 수 있는 정보"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방송통신전파진흥원 관계자는 "포럼을 주최한 언론사에서 비공개 요청을 해 보여줄 수 없다. 이 내용이 공개될 경우 언론사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세금으로 티켓을 산 언론사 포럼은 키플랫폼(머니투데이), 이노베이트 코리아(헤럴드경제), 미래포럼(뉴스1)이었다. 

예보·산은·수은·IBK는 '전면 비공개'..."언론사 눈치 심하게 본다"

예금보험공사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중소기업은행(IBK)은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뉴스타파의 정보공개청구에 예금보험공사는 '비공개'로 일관했다.

예금보험공사는 "언론사 포럼 지출 내역은 영업상·경영상 비밀"을 비공개 이유로 댔다. 하지만 공공기관 예산으로 포럼 티켓을 구입한 사안이 왜 영업 비밀인지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다음은 뉴스타파 취재진과 예금보험공사 홍보팀 관계자간 통화 내용. (○은 뉴스타파 기자, ●은 예금보험공사 홍보팀).

○ 언론사 포럼에 지출한 내역이 왜 영업상·경영상 비밀인지. 예금보험공사에서 돈 내고 행사를 간 건데, 어디 행사를 갔는지가 왜 비밀인지. 
● 이렇게 보낸 대로... 그대로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고요.
○ 왜 비밀인지 궁금하 언론사 포럼에 지출한 내역이 왜 영업상·경영상 비밀인지. 예금보험공사에서 돈 내고 행사를 간 건데, 어디 행사를 갔는지가 왜 비밀인지. 
● 죄송합니다. 저희가 드릴 말씀이 더 없어서요. 저희가 보내드린 대로. 저희 의견이니까요.
○ 경영상·영업상 비밀이라고 하셨으면, 그 판단의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이유 정도는 당연히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 저희는 (답변) 보내드린 대로 그렇게...
○ 그러니까요. 저도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고. 제 생각으로는 불충분한 답변이어서 계속 여쭤보는 건데. 이 답변이 괜찮다고 생각하시면...
● 저희는 그냥 보내드린 대로. 더 이상 의견은 없거든요.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산업은행 본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비공개 사유 역시 '영업상·경영상 비밀 조항'이었다. "언론사의 영업 비밀이기 때문에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산업은행 역시 공공기관 예산으로 언론사 포럼 티켓을 구매한 내역이 왜 '언론사의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수출입은행은 '포럼 티켓을 구입한 내역을 알려주면, 언론의 수익 구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사의 영업 비밀과 관련된다'고 주장했다. 수출입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언론사는 사기업이기 때문에 사기업의 수익과 관련된 부분을 알려줄 순 없다"며 "우리 입장에선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공공기관들이 언론사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공기관이 예산을 집행한 것들에 대해서 일일이 다 그 집행처에 '이걸 공개해도 되느냐'고 묻지 않거든요. 공공기관장들 평소에 활동비로 식당에서 결제하잖아요. 그런데 누가 기관장 활동비 내역 정보공개청구했다고 해서 식당에 다 전화해서 공개해도 되는지 물어보나요? 지금 유독 언론사와 관련한 것들을 묻고 있는 거란 말이죠. '언론의 눈치를 심하게 보는 거다' 라고 밖에 볼 수 없고요. 다른 기관·집행처에 대해서도 형평성에 맞지 않고. 그러다 보니까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비공개를 하는 거고. 
- 정진임 '투명 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뉴스타파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파악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지자체의 언론사 포럼 지출 내역을 ‘언론개혁 대시보드’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언론개혁 대시보드(http://pages.newstapa.org/n1907)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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