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타파' 외쳐온 김부겸,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총리'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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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세번째 총리로 지명된 김부겸 후보자는 4선 경력을 지닌 대구 출신 정치인으로 친화력과 부지런함이 돋보이는 화합형 인사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망이 두터워 정부 출범과 함께 행정자치부 장관에 기용되며 내각의 기강을 다잡는 역할을 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낙선하고 8월 민주당 당 대표 경선에서도 이낙연 전 대표에게 패하며 정치적 휴지기를 보냈지만,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총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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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세번째 총리로 지명된 김부겸 후보자는 4선 경력을 지닌 대구 출신 정치인으로 친화력과 부지런함이 돋보이는 화합형 인사로 꼽힌다.
1977년 대학 시절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1980년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간사로 활동하며 재야 민주화운동을 시작했다. 1988년 한겨레민주당을 거쳐 1991년 ‘꼬마민주당’에 입당하며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선배 제정구 전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력 탓에 그에게는 ‘비주류’ 또는 ‘경계인’이라는 꼬리표가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2000년 16대 총선 때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군포에서 당선된 뒤 당내 소장파로 개혁적 목소리를 냈고, 2003년 대북송금 특검법안에 한나라당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지며 이단아로 낙인찍혔다. 같은해 7월 이우재·이부영·안영근·김영춘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동참했다. 2004년·2008년 총선에서 각각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 간판으로 재선·3선에 성공했다.
2012년부터는 지역주의 타파를 목표로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2년 총선,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2016년 총선에선 대구 수성갑에서 62.03%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되며 민주당 깃발을 꽂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망이 두터워 정부 출범과 함께 행정자치부 장관에 기용되며 내각의 기강을 다잡는 역할을 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낙선하고 8월 민주당 당 대표 경선에서도 이낙연 전 대표에게 패하며 정치적 휴지기를 보냈지만,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총리로 돌아왔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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