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어디로]② "180석이 마약됐다"..강성지지층에 갇힌 與
'쇄신' 깃발 들 새 지도부도 친문이 주도권..선명성 경쟁에 '이견' 실종
(서울=뉴스1) 정연주 기자 = "전화도 오고 문자도 오는데, 문자는 다 읽고 차단한다. 차단한 전화번호를 세어 보니 1500개 안팎 정도다. 그렇게 하니 좀 살만하더라."
'문자 폭탄'에 익숙하다는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담담하게 경험담을 전했다. 보낸 사람은 내용으로 추정하건대 대부분 '문파'라 불리는 강성 '친문(친문재인)' 지지자다.
'조국 사태' 반성을 화두에 올린 2030 초선 의원들이 소위 말해 그들에게 '찍히자' 이 의원은 "큰 의미 부여 말라"며 당부를 전했다. 초선 의원들은 "예상했던 일"이라며 의연해 했다.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는게 가장 중요한 초선들 속내는 꼭 그렇진 않은 모양이다. 한 보좌진은 "처음 겪는 일 아닌가. 흔들릴 것"이라며 걱정했다.
강성 친문 지지층은 80만명에 달하는 권리당원의 일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권리당원 다수가 범친문이라고 한다면, 그중 강성 지지층은 30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전체의 1%도 되지 않은 규모지만 이들은 특유의 결집력과 실천력을 토대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당내 여론을 사실상 주도했다.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민주당 권리당원은 폭증한다. 20대 총선을 앞둔 시기 안철수 등 비노(비노무현)그룹이 탈당하자, 분열 위기에 놓인 당을 지키려는 '충성도가 높은' 당원들이 대거 유입됐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 의식으로 단결한 이들은 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쳤다.
문 대통령은 2017년 4월 대선후보 경선 당시 강성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에게 '문자폭탄'을 보낸 것에 대해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며 감쌌다.
강성 지지층의 위상은 문 대통령 지지율처럼 고공 행진했다. 이들의 영향력은 그간의 선거에서도 입증됐다.
지난해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에선 SK계(정세균계)인 이원욱 의원이 대의원 득표 1위를 했음에도 권리당원 득표 7위에 그치면서 탈락했다. 당시 당선자 명단엔 권리당원 득표 1~5위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는데, 과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옹호에 앞장섰던 김종민 의원은 대의원 득표에선 4위에 그쳤지만 권리당원 득표에서 1위를 기록해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금태섭 전 의원이 지난 총선 당시 경선에서 탈락한 것을 두고도 강성 지지층이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여러 선거에서 이들이 의원들의 생살여탈권을 쥐었고, 지난 4년간 이들에게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 학습한 의원들과 당 지도부는 이들의 의견을 당심으로 포장하게 됐다.
다만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발맞춰 강성 지지층의 과다 대표성 논란에 불이 붙었다. 4·7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자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원인으로 지적되고, 그간 당심을 누가 왜곡해 왔는가에 대한 화살이 강성 지지층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주요 현안을 결정하기 위해 실시하는 전 당원 투표 찬성률은 70~80%대에 달한다.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보선 후보 공천을 위한 당헌 개정 관련 투표율만 보더라도 26.35%에 그쳤다. 당시 투표 결정부터 투표 개시까지 걸린 시간은 단 이틀. 충분한 숙고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채 진행된 투표는 강성 지지층이 미리 조성한 여론이 대세를 이룰 가능성이 농후했다. 권리당원이라 밝힌 한 30대 여성은 "일이 바빠 그런 투표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초선들을 향한 '문자 폭탄'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일부 비주류·소장파에 국한돼 있다. 소장파인 조응천 의원은 "이번 원내대표 경선과 당대표 경선이야말로 '선명성 경쟁'의 장이 아닌 '혁신과 반성'의 장이 되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 선거는 '선명성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한 표가 아쉬운 당대표 선거 주자들은 "그것(문자폭탄)도 민심으로 본다"(홍영표 후보), "조국 사태는 지나간 일"(송영길 후보) 등 강성 지지층의 코드를 맞춘 말을 쏟아낸다.
원내대표에 도전했던 박완주 의원은 "과대 대표되는 강성 당원들의 입장이 당의 입장이 된다면, 민심과의 괴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소신 발언을 펼쳤다. 박 의원은 비주류로 분류된다.
당에서 분출하는 '쇄신안'의 진정성을 두고도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당장 새 지도부 후보군을 봐도, 원내대표는 친문 핵심인 윤 의원이 당선됐고 최고위원 출사표를 던진 면면을 보면 '친문' 강병원 의원, 김용민 의원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강 의원은 강성지지층 논란에 대해 "태극기부대는 선동적인데, 우리 당원들은 논리적"이란 주장을 펼쳤다.
당내 중추인 3선 의원들은 초선의 쇄신안에는 공감하면서도 친문 강성 지지자들의 초선 의원들을 향한 비판에 대해 "모두 당을 위한 관심과 충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들의 모임에선 조국 사태는 별도로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 쇄신을 주도할 도종환 비대위원장도 "패배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 있다"며 '친문 강성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 도 위원장은 대표적인 친문 핵심 인사다. 앞서 비대위 인선 논의에 참여했던 노웅래 의원(4선)이 논의 도중 도 위원장 인선에 반발, "이게 쇄신이냐"며 언성을 높인 점은 이에 대한 고민이 표출된 대표적 사례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뉴스1과 통화에서 "당심과 민심의 괴리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아전인수식 해석이 남발되고 있다"며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기형적인 당원 시스템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당은 퇴행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상병 인하대 교수는 "민주당 입장에서 강성 지지층의 존재는 엄청난 자산이자 희망"이라면서도 "당에 강하게 애착을 가지게 되면 국민들의 시각과 달라질 수 있다. 이들만 바라보고 정치를 펼치는 방식은 너무도 편협하다. 당의 전략에 문제가 있다. 요즘 보면 180석 의석이 마약처럼 돼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정부 집권 4년 차 위기의 결정적 요인은 친문 패권주의가 소진됐다는 것이다. 즉 강성지지층이 목소리를 낼수록 국민은 떠난다"며 "이대로 가면 당원 정당에 그치게 된다. 당원 정당은 국민에 표를 구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강점은 위기 때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고, 바로 이 점이 국민의힘과 차별되는 지점"이라며 "강성 친문의 목소리가 뒤로 물러난다면 다음 대선에 희망이 있다"고 조언했다.
jy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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