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여덟에서 스물 다섯..단원고 졸업생들의 이야기

이유민 2021. 4. 1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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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의 해상에서 청해진 해운 소속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476명의 탑승자 중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172명, 여기엔 수학여행 중이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75명이 포함돼 있습니다.

KBS 취재진은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이었던 졸업생 3명을 서울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과 경기 안산시 단원구 4.16기억교실에서 만났습니다. 열여덟 살이었던 이들은 이제 스물 다섯, 어엿한 사회 초년생이 됐습니다.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솔비의 이야기 : "이제 어른이 된 것 같아"

2014년,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이었던 솔비 씨는 복원된 기억교실 3반에 진열된 칠판과 책상, 의자 곳곳을 만졌습니다. 1분단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맨 앞자리가 자기 자리였다며 앉아보고 엎드려보는 솔비 씨는 열여덟 고등학생 같았습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솔비 씨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일련의 시간을 보내며 사회복지사로 진로를 정했고, 그 다짐이 이어져 왔습니다. 솔비 씨는 "우리를 도와준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그런 마음을 보답할 방법은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특별히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느냐는 질문에 솔비 씨는 자신이 받았던 편지 속 한 문장을 또박또박 읽었습니다. "얼마 전에 받은 편지예요,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 돌아온 너희가 기특하고 너희는 별이고 보물이고 사람들의 꿈이다…."

마냥 밝아 보였던 솔비 씨지만, 여전히 매년 4월이 되면 몸이 아파지고 공황 증상이 옵니다. 약을 먹고, 상담을 받고, 괜찮아지다가 이내 다시 고통스러워지는 시간. 그 시간을 반복해오며 솔비 씨는 이제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올해 대학 졸업을 하고 독립을 시작하면서 뭔가 정말 어른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제가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원래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제 목소리를 더 많이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저희를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저희의 이야기를 더 많이 전하고 표현하고 감사함을 되갚고 싶어요."

경기 안산시 단원구 4.16기억교실에서 자신의 옛자리에 엎드려보는 박솔비 씨


■ 가연의 이야기 : "트라우마, 뒤늦게 찾아와"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집니다. 가연(가명) 씨의 기억 속 세월호가 그렇습니다.

7년 전, 열여덟 살이었던 가연 씨는 당시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인지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합니다. 가연 씨는 "사고 당일에도 내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트라우마가 생겨난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4월 16일이란 날짜를 덤덤히 읽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4월 16일….'이라는 느낌으로 읽게 된다고 말하는 가연 씨, 기억교실이 자꾸 낯설다고 했습니다.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냐고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기만 있어도 약간 눈물이 나는…. 달라진 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늘 같은 날은 유독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함께 군사학과 진학 준비를 했던 친구입니다. 우정이라기보다는 사랑에 가깝다고 말할 만큼 친한 친구였다고 말했습니다. 혼자 남게 된 가연 씨는 군사학과로의 진학을 포기하고 전공을 바꿨습니다.

"항상 친구를 생각해요. 그 친구랑 저는 원래 서로 잘하겠지, 각자 자리에서 알아서 잘하겠지 하면서 응원해줬던 사이예요. 친구 부모님이 '친구가 슬퍼하는 것 별로 안 좋아할 거다' 이렇게 말씀해주신 뒤로, 계속 참고 열심히 지내기로 했어요. 힘들어서 졸업을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친구들 생각해서 버텼어요."

4.16기억교실을 둘러보는 솔비 씨와 이가연(가명) 씨


■ 지수의 이야기 : "도움받은 만큼, 주고 싶어"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만난 지수(가명)씨는 책을 좋아해 도서관 사서를 꿈꾸던 학생이었습니다. 사고 이후 자신이 왜 힘든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던 지수 씨는 타인의 고통에도 관심을 두게 되며,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합니다.

어느덧 졸업반이 된 지수 씨는 여느 청년들과 다름없이 코로나 시기 취업난을 걱정하는 취업준비생이었습니다. 세월호나 단원고 이야기가 나오면, 움츠러드는 마음이 들던 지수 씨는 최근 누군가가 해준 말이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희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이런 말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어요. 이 사고가 저희에게 낙인처럼 남아서 어딜 가도 사람들한테 선입견을 품게 하고 그래서 저 자신을 숨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 말을 들으니 위로가 되더라고요."

지수 씨는 "시간이 지날 수록 상처가 희미해져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사람을 잊는 건 너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기억공간 전시관에 놓인 단원고 친구들의 사진들을 둘러본 지수 씨는 희생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쓰는 공간에 '기억할게'라고 썼습니다. 앞으로의 꿈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조금 뻔한 말일수도 있는데 도움을 받은 만큼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특히 전 세계 재난으로 고통 받는 아동들을 돕고 싶어요. 사고를 겪었던 제 경험을 되살려서 그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되고 싶고, 발로 뛰면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요."

서울 광화문 세월호 기억공간에서 희생자들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남지수(가명) 씨


■ "그때의 우리…모두에게 기억해달란 것 아냐"

세 친구의 공통점은 세월호를 기억하고 연대하고 응원해주는 시민들에게 큰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사회에서 어떻게든 되갚아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상처받은 순간도 많습니다. "세월호를 이용하려고 한다", "친구를 팔아먹었다", "지겹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세 친구들은 비난하는 이들을 미워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그럴수록 꾸준히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더 고맙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분들께 저희를 기억해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저희의 마음을 알아주고 싶으신 분들이 기억해주시려는 마음을 감사히 받고 싶고…. 허망한 죽음을 같이 억울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요."

단원고 졸업생이자, 세월호 생존자. 이제 이 수식어를 떼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아가고 있는 세 친구들의 이야기를 오늘 밤 KBS1TV <뉴스9>에서 나눕니다.

이유민 기자 (reas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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