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심의 기다리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편에서 살펴봐 주길"
"코로나 백신 등 사회혼란 야기정보 심의도 시급"
위원 추천 둘러싼 여야 신경전에 방심위는 3개월째 심의 공백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하나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가족이 어둠의 터널에 갇혀 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겠습니까."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난 1월부터 3개월째 심의위원이 구성되지 않아 심의 공백을 겪고 있는 방심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방심위는 지난 1월29일, 4기 위원들의 임기가 끝난 이후 5기 출범을 못 하고 있다. 심의위원을 추천해야 하는 여야에서 서로 '먼저 추천위원을 공개하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탓이다.
방심위의 심의 업무가 멈춘 동안에도 매일 1000여 건의 각종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4기 방심위 활동이 종료된 1월30일부터 지난 4월5일까지 방심위로 접수된 민원은 7만5937건에 이른다. 이 중 중복 접수, 타 기관 이첩 등의 이유로 사무처에서 자체 처리한 건수를 제외한 5만2999건이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골든타임이 생명인 디지털 성범죄 피해 민원도 다수 포함돼 있다. 민 총장은 4월14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민원을 접수하고 기다리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가장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3개월째 출범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나.
"민원을 접수하고 기다리고 있는 분들, 특히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호소를 들을 때마다 정말 안타깝다. 정치권이 각각의 의견 차를 떠나 방심위 업무의 시급성을 피해자 측면에서 조금만 더 살펴봐 주길 부탁드린다."
지금 방심위 내부 상황 어떤가.
"직원들이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심의 없이 직원들 선에서 검토할 수 있는 민원들은 최대한 쌓이지 않게 바로바로 검토·처리하고 있다. 새 심의위원들이 왔을 때 바로 업무를 정상적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있다."
심의 대기 중 디지털 성범죄 민원 1888건
불법 촬영물 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 민원은 신속한 대응이 생명 아닌가. 어떤 상태인가.
"그렇다. 전파성이 매우 강한 게 디지털 성범죄다. 대개 그 골든타임을 24시간 이내로 보고 있다. 이 시간 내 삭제, 차단하거나 유통하지 않도록 막아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불법 영상물 등 증거가 확실한 민원은 심의를 거칠 필요 없이 자율규제(심의를 거치지 않고 삭제)를 통해 바로 조치를 하고 있다. 직원들이 2교대 근무를 하며 24시간 모니터링한다. 문제는 심의를 거쳐 처리하도록 규정돼 있는 다수의 디지털 성범죄 민원들이다. 예를 들어 영상은 없는데 성범죄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명시해놨거나 영상을 판매하고 있다는 글의 경우, 자율규제 대상이 아니다.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 역시 피해를 양산할 수 있어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심의 절차에서 멈춰버린 상태다. 처리를 기다리는 피해자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월30일 이후 3개월 간 새로 접수된 디지털 성범죄 민원만 총 3551건에 달한다. 이 중 자율규제 등으로 자체 처리된 경우 외에 심의 대기 중인 민원이 1888건에 달한다. 그뿐 아니라 마약 판매나 불법 도박 사이트, 금융정보 피싱 인터넷 주소(URL) 신고 민원 역시 4만 건 이상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방송 분야로 넘어가면,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 왜곡이나 폭력성·선정성과 관련한 방송 프로그램 민원 심의가 6000여 건 쌓여 있다. 특히 코로나19 정국에서 백신 등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신고하는 민원도 적지 않게 들어오고 있다. 이 역시 시급함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코로나 백신 정보와 관련한 민원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나.
"방심위 분류 중 '사회혼란 야기정보'로 분류되는데, 이 부분은 판단에 있어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당장 국민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기에 신속함이 요구되지만, 적절한 사실과 적절한 허위를 섞은 정보들도 많고 전문성도 필요하기 때문에 사무처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기 어렵다. 즉 심의가 필요하단 얘기다. 코로나 백신 관련된 사회혼란야기정보 민원만 200건 가까이 접수됐다."
5기 방심위가 출범하고도 공백 동안 쌓인 민원들을 처리하느라 상당한 업무 적체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민 총장은 이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그는 "2018년 출범한 4기 방심위는 무려 7개월이나 늦게 구성 됐었다. 그 공백 동안 21만 건의 안건이 쌓여 있었다. 이를 처리하는 데 위원들이 꼬박 6개월 넘게 고생했다"고 말했다. 2018년 당시에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바른미래당·국민의당 등 야당이 위원추천 권한 배분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면서 4기 방심위는 예정보다 230일 늦게 출범한 바 있다.
"현재 방심위, 양쪽에서 편향성 비판받아…치우치지 않았다는 뜻"
방심위 지연 출범은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방심위가 민간 독립기구로서 대통령과 여당 추천위원 6명, 야당 추천위원 3명을 받아 구선되는 구조다보니, 여야의 정치적 유불리가 작용해 매번 파행을 겪어왔다. 앞으로도 이런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개선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제도 하나만 개선하면 최소한 심의 공백을 통한 피해는 막을 수 있다."
어떤 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면 되나.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해 차기 위원이 구성될 때까지 전임 위원의 임기를 연장한다'는 내용만 추가해 넣으면 되는 일이다. 실제 지난해 이 부분에 대한 개정이 국회에서 논의됐는데, 시급성에서 밀리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다.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 외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일각에서 방심위 심의가 지연되는 데 대해 '방심위가 업무에 나태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할 때 아쉬움이 든다. 차라리 우리가 맡는 게 낫지 않느냐는 정부 측 일부의 목소리도 들린다.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도 표현의 자유 침해나 편향성 등을 우려해 더욱 신중히 다루려 노력하고 있다. 느리더라도 제대로 심의하기 위함이다. 그 노력의 결과, 지금 방심위는 양쪽 모두에서 편향성을 비판받고 있다. 이 의미는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방심위 역사상 드문 일이다. 지금 심의위원 추천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도 직원들은 결코 손 놓고 있지 않고 누구보다 빠른 정상화를 바라고 있다. 이 점을 정치권과 국민이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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