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비정상 가족 / 김소민

한겨레 2021. 4. 1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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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없이 태어난 아기는 무슨 죄, 자기만 좋으면 끝?" 정자 기증을 받아 아들 젠을 낳은 사유리가 티브이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 에 나와 걱정거리를 말하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사유리는 아들이 커서 축구 하고 싶을 때, 목욕탕 갈 때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존중이 사랑의 전제라면, 아이에게 부모의 불안과 욕망을 투사하는 가족, 닭다리는 아버지만 먹고 엄마는 가슴살만 뜯어야 하는 가족에는 사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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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사유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ㅣ김소민 자유기고가

“아빠 없이 태어난 아기는 무슨 죄, 자기만 좋으면 끝?” 정자 기증을 받아 아들 젠을 낳은 사유리가 티브이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나와 걱정거리를 말하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사유리는 아들이 커서 축구 하고 싶을 때, 목욕탕 갈 때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보살 서장훈은 “축구클럽 보내면 되고 목욕탕 안 가도 잘 큰다”고 답했다. 사유리 유튜브 채널에는 서장훈같이 응원하는 댓글이 넘치지만, 비난도 있다. 이기적이라는 거다.

사유리가 이기적이라면, 모든 출산이 이기적이다. 결핍이 없는 출산이 있나? 깨끗한 공기가, 맘껏 뛰놀 수 있는 유년이, 무슨 일을 하건 인간 대접 받고 살 수 있다는 확신이 ‘결핍’된 세상에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의 동의를 받는 출산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살아봤더니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이 사는 기쁨을 다른 생명에게도 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기를 낳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아직은 아니더라도 그런 세상이 올 거라는 확신에 차 아이를 낳는 사람도 못 봤다. 그런데 왜 ‘아빠’의 결핍 속에 아이를 낳는 경우만 ‘이기적’이란 비난을 받아야 하나? 사유리를 향한 악플을 따라 하자면, 이렇다. ‘미세먼지 구덩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무슨 죄, 자기만 좋으면 끝?’ ‘오이시디(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나라에서 태어난 아기는 무슨 죄, 자기만 좋으면 끝?’

사유리가 <슈퍼맨이 돌아왔다>(KBS2)에 출연한다니 ‘비혼모 출산 부추기는 공중파 방영을 즉각 중단해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공영방송이라면 올바른 가족관을 제시하고 결혼과 정상적인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는 내용에 3960여명이 찬성했다. ‘찬성’하는 사람이 5천명도 안 되는 걸 보니 진짜 ‘올바른 가족관’이 세워지고 있나 보다. 유일하게 ‘비정상적인 가족’ 형태는 사랑이 없는 가족일 테다.

사랑 핑계 대는 폭력은 널렸다. 그냥 폭력이면 가해자가 죄책감을 느낄 여지라도 있는데 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하며 가해자가 되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최은영의 단편소설 ‘모래로 지은 집’에서 주인공 공무는 형에게 맞는다. 이 집에서 아버지가 말할 때, 두 아들과 어머니는 하던 일이 무엇이건 멈춰야 한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의 무게는 큰아들이 짊어지고, 그 무게에 눌린 큰아들은 둘째 공무를 때리며 스트레스를 푼다. 공무가 이 고통을 한 여자에게 토로했다. 그 여자는 남편 친구, 상사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홀로 고기를 굽는다. 자기는 한 점도 못 먹고 블라우스가 눅진해지도록 땀을 흘리며 말없이 고기를 굽는다. 그 여자가 공무에게 그랬다.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공무는 읊조린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알리바이로 아무 짓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벨 훅스는 책 <올 어바웃 러브>에서 사랑을 하려면 정의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썼다. 그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와 “실천”이라고 사랑을 정의했다. 관심, 보살핌, 존경, 신뢰, 소통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상대의 존엄을 인정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지배하려는 의지이고 “정의로움이 없는 곳에서는 결코 사랑이 싹틀 수 없다.” 이런 사랑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성별에 따라 위계를 세우는 가부장제는 사랑의 적이 된다. 존중이 사랑의 전제라면, 아이에게 부모의 불안과 욕망을 투사하는 가족, 닭다리는 아버지만 먹고 엄마는 가슴살만 뜯어야 하는 가족에는 사랑이 없다. 사랑이 있어야 정상 가족이라면, 평등이 아니라 위계를 따지는 가부장제 가족이야말로 ‘비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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