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별곡] 코에이 '실력파 3인방' 연속 실패 끝 '진삼국무쌍' 승천

정리=박명기 기자 2021. 4. 1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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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I -진삼국무쌍 · 三國無双 #2. 오메가포스는 코에이 비밀병기

KOEI – 진삼국무쌍(真 쨌 三國無双) #2. 코에이 새 개발팀 오메가포스

 
 

[사진 왼쪽부터 마이클, 토모이케 타카즈미(友池 隆純), 에리카와 케이코(襟川恵子), 에리카와 요이치(襟川陽一), 스즈키 아키히로(鈴木亮浩)'

KOEIhttps://game.watch.impress.co.jp/docs/20050917/koei01.htm

'진삼국무쌍' 시리즈를 개발한 오메가 포스는 1996년 KOEI의 내부 개발팀으로 4번째 사업부로 설립되었다. 원래 이름은 Z스튜디오였지만 'Z'보다는 다른 의미의 이름을 찾던 중 그리스 문자에서 영어의 Z에 해당하는 마지막 글자인 오메가(ω)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유명한 시계 제조 업체와 이름 때문에 저작권의 문제가 있어 뒤에 포스(Force)를 추가하여 오메가 포스라는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오메가 뒤에 붙인 'Force'라는 단어는 KOEI의 네 번째(Forth)로 설립된 게임 개발팀이라는 뜻에서 'Forth'의 동음 이의어인 'Force'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다. 원래 처음 계획대로였다면 'Z-Forth'가 될 뻔한 이름이 우여곡절 끝에 'ω-Force'라는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ω-Forcehttps://logos.fandom.com/wiki/Omega_Force]

오메가 포스라는 신규 게임 개발사업부를 만든 이유는 정통 역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각인된 KOEI의 이미지 쇄신과 변해가는 게임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한 이유 때문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파트너사를 구하거나 서드파티와 협력하는 방안도 제안되었지만 KOEI가 선택한 것은 새로운 개발팀의 창설이었다.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게임으로 각인된 KOEI의 기존 개발팀이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것 보다는 기존 개발팀은 삼국지 시리즈를 그대로 유지하고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만들 팀을 새로 만드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KOEI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인 '토모이케 타카즈미(友池 隆純)'를 필두로 '스즈키 아키히로(鈴木亮浩)'와 '오가사와라 켄이치(小笠原 賢一)'를 핵심 멤버로 새로운 게임 개발팀인 오메가포스(ω-Force)를 만들고 첫 작품으로 1997년 '진삼국무쌍' 시리즈의 전신인 '삼국무쌍(Dynasty Warriors)'을 출시했다.

토모이케 타카즈미(友池 隆純), 스즈키 아키히로(鈴木亮浩), 오가사와라 켄이치(小笠原 賢一)는 KOEI 내부에서도 핵심 인물들로 신규 게임 개발 사업부인 오메가 포스 팀을 창설할 때 주요 인물들로 참여했다.

오메가 포스는 기존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 시리즈나 '신장의 야망' 시리즈만으로는 회사의 앞날을 보장하기 힘든 상황에서 새로운 3D 게임 개발 사업부로 회사 전체의 사운을 걸고 큰 기대와 책임을 부여받은 막중한 임무의 팀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팀이었기 때문에 KOEI에서도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기존 개발팀원 중에 최고의 실력을 갖춘 토모이케 타카즈미(友池 隆純), 스즈키 아키히로(鈴木亮浩), 오가사와라 켄이치(小笠原 賢一) 3인방을 주축으로 팀을 구성했던 것이다.

 
 
[토모이케 타카즈미(友池 隆純)https://gccx.xyz]

토모이케 타카즈미(友池 隆純)는 1962년생으로 1988년에 KOEI에 입사하여 개발 1 사업부와 2 사업부 등 주요 사업부를 거쳐 새로운 개발팀인 오메가 포스를 창설할 때 총괄 이사로 배정되어 '삼국무쌍' 게임을 시작으로 현재의 무쌍 시리즈를 있게 한 주역이다.

개인적으로는 삼국지의 인물 중 조운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진삼국무쌍' 시리즈의 초기 패키지 디자인이나 게임내 주요 캐릭터는 조운인 경우가 많았다. '진삼국무쌍' 시리즈를 총괄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실력은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일전에 개발팀원과 모의전에서 토모이케 타카즈미(友池 隆純)는 무력이 가장 강한 여포를 선택하고도 가장 약한 캐릭터 군에 속하는 참모(모사) 캐릭터에게도 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삼국지에 대한 애정만큼은 누구보다도 각별하여 '일기당천'이라는 컨셉을 잘 살려내어 실제 삼국지 세계 속 무장이 되어 전장 한 복판을 누비는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스즈키 아키히로(鈴木亮浩)https://www.koeitecmo.co.jp/recruit/graduate/2017/member/vol-01/]

오메가 포스의 핵심인물 중 한 사람인 스즈키 아키히로(鈴木亮浩)는 고등학교 시절 형의 컴퓨터로 처음으로 게임을 접했다. 그때 접한 게임이 KOEI의 '삼국지'였다. 그때 게임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대학교 2학년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자신의 PC를 구입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프로그래밍 공부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렇게 KOEI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에 빠져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면서 꿈을 키워가던 중 1992년 드디어 자신이 일하고 싶었던 KOEI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때 KEOI에 입사를 못하게 되면 원래 자신의 꿈이었던 수학 교사를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수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던 터라 프로그래밍 공부가 남들보다 수월했다고 한다.

하지만, KOEI에 입사했을 때 처음으로 맡은 업무는 프로그래밍 작업이 아니었고 사운드 디자인 업무나 퀴즈 게임을 위한 텍스트 편집과 같은 업무여서 실망했다고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본 담당 PD가 이 친구는 뭘 시켜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와 함께 KOEI 입사 5년차 때 드디어 원하는 게임 개발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때 그가 참여한 게임이 '진삼국무쌍(Dynasty Warriors 2)'이었다. 스즈키 아키히로는 삼국지 인물 중 개인적으로 '여포'를 제일 좋아했다고 했는데 일본에서는 가장 강한 무장으로 인기가 높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큰 인기가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진삼국무쌍'에서 여포의 화려한 코스튬이나 액션에는 그의 개인적인 사심이 담겨 있음이 느껴질 정도로 여포는 멋지게 그려져 있다. 현재는 여포가 아니라 조조를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오가사와라 켄이치(小笠原 賢一)] https://www.koeitecmo.co.jp/recruit/graduate/2018/interview/vol-5/

오가사와라 켄이치(小笠原 賢一)는 KOEI의 핵심멤버 중 한 사람으로 1993년 KOEI에 입사하여 프로그래머와 프로듀서 업무를 맡았다. 신규 개발팀인 오메가 포스에서는 상무 집행 임원(이사)를 맡고 있는데 학창시절 즐겨했던 KOEI의 '신장의 야망'시리즈에 매료되어 치바 대학을 졸업 후 진로를 게임 개발로 변경하여 KOEI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목표는 전 세계 사람들을 흥분하게 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데 늘 입버릇처럼 오메가 포스는 KOEI 마지막(오메가) 비밀병기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처음 오메가 포스가 설립될 때는 당시 남코의 철권과 세가의 '버처파이터'가 아케이드 센터를 장악하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대세는 3D라고 보고 새로운 3D 프랜차이즈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3D 대전 액션 게임 시장에 뛰어든 것이 오메가 포스의 첫 작품이자 진삼국무쌍의 전신이라고 불리는 '삼국무쌍'이라는 게임이었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잘 알려진 14명의 무장과 히든 캐릭터로 '오다 노부나가'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삼국무쌍'은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으로 3D 대전 액션 게임 시장 안착에 실패했다.

KOEI는 자신들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제일 자신 있었던 '삼국지'라는 콘텐츠가 먹히지 않아 당황했다. 게임 흥행 실패의 원인이 삼국지라는 콘텐츠 때문이 아니었지만 삼국지가 아닌 다른 소재로 게임을 개발해보기로 하고 '데스트레가(Destrega)'와 '윈백(WinBack)'이라는 게임을 개발했다.

 
 
[WinBackhttps://koei.fandom.com/wiki/WinBack]

'윈백' 게임은 1999년 닌텐도(Nintendo) 64용으로 출시한 이후 2년 뒤 플레이스테이션 2로 포팅 된 TPS 게임이었다. KOEI 내부의 기대와는 달리 예상보다 훨씬 저조한 실적으로 참패를 맛본 게임이다. 당시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용 슈팅 게임을 만들었던 경력의 개발팀원 중 한 명의 제안으로 시작된 '윈백' 게임 프로젝트는 오메가 포스 팀내에서도 기대가 높았다. 기존 FPS 게임들과 같이 1인칭 시점이 아닌 3인칭 시점의 TPS 게임으로 개발된 '윈백'은 게임 내에서 TPS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벽을 누르고 나서 뛰어내림 등의 액션을 취할 수 있었다.
 

 
 
[WinBackhttps://gamefaqs.gamespot.com/n64/199307-winback-covert-operations/reviews/171049]

'윈백' 게임의 컨트롤은 쪼그리고 앉는 기능을 Z 트리거에 할당하고 움직임은 왼손의 엄지 손가락(3D 스틱)과 첫 번째 손가락(Z-트리거)으로 제어하면서 동작은 오른손의 첫 번째 손가락(R-트리거)과 엄지 손가락(A-버튼)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하여 네 손가락만으로도 다양한 액션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게임의 특장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게임의 흥행에 주요한 요인이 되지 못하고 결국 흥행 실패라는 저조한 성적서로 초라하게 마무리하고 말았다.

이 자리는 이미 비슷한 느낌의 게임으로 '메탈 기어 솔리드'가 차지하고 있었고 불명예스럽게도 '윈백'은 당시 'Nintendo 64용 MSG(Metal Gear Solid)'라는 클론 게임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윈백'의 기획을 시작할 때는 플레이스테이션용 '메탈 기어 솔리드'의 개발 계획 정보가 없었던 때이기 때문에 KOEI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MSG 클론이라 해도 재미만 있으면 잘 팔렸겠지만 결정적으로 독보적인 게임 스토리를 뒷받침할 캐릭터의 부재와 어정쩡한 게임내 분위기로 판매 실적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데스트레가(Destrega)https://koei.fandom.com/wiki/WinBack]

오메가 포스는 '윈백' 게임 이외에도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데스트레가(Destrega)'라는 게임도 만들었었는데 스즈키 아키히로(鈴木亮浩), 오가사와라 켄이치(小笠原 賢一)가 주축이 되어 만든 게임이었다. '데스트레가'는 '삼국무쌍'에 비해 배경과 캐릭터 그래픽이 개선되고 시점 변환이 자유로운 맵 이동과 지형의 특성을 살린 공격이 가능하도록 구현된 독특함을 장점으로 비교적 괜찮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이 역시 예상보다는 저조한 실적이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오메가 포스는 '삼국무쌍'을 시작으로 '데스트레가', '윈백'의 3개 게임 모두 흥행에 실패하여 3연패를 기록 중이었다. KOEI 내부에서는 오메가 포스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구심과 해체설이 돌기 시작했고 연 이은 패배를 맛본 오메가 포스 내의 분위기도 침체되어 있었다.

하지만, 토모이케 타카즈미(友池 隆純), 스즈키 아키히로(鈴木亮浩), 오가사와라 켄이치(小笠原 賢一) 주요 3인방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마지막 게임이라는 전제가 붙어있기는 했지만 창업주이자 회장인 에리카와 요이치(襟川陽一)의 삼국지에 대한 각별한 애정 덕에 그나마 마지막으로 삼국지를 소재로 하는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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