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인터뷰] "쿼드 플러스 참여, 신중해야"

김종일·구민주 기자 2021. 4. 1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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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中에서 돈 벌어야 美 무기 살 수 있다고 설득해야"

(시사저널=김종일·구민주 기자)

익숙한 패턴이 있다. 북한의 도발이 시작된다. 제재와 외교적 해법이란 서로 다른 문제풀이가 제시된다. 한반도를 넘어 미국과 중국에서도 갑론을박이 시작된다. 미·중의 서로 다른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는 양자택일을 요구받는다.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의 훈수까지 더해진다. 고차원 연립방정식이다. 아주 가끔 고차원 연립방정식을 뚫고 평화의 목전까지 협상이 진행되나 싶다가도 일은 자주 틀어진다. 

다시 북한의 도발이 시작됐다. 미국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는 외교라인을 새롭게 짰다. 대화의 시작일까, 갈등의 서막일까.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드러난 현상의 뒤꽁무니만 쫓다 보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상황을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 베테랑 전문가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래서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찾았다. 민주평통은 평화·통일정책의 수립 및 추진에 관한 대통령 자문·건의 기능을 수행하는 헌법기관이다. 

정 수석부의장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서생적 문제의식'을 원칙과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상인적 현실감각'을 타협을 해서라도 일을 되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렇다. 그는 김영삼 정부에서 3년6개월 넘게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을 맡았다. 김대중 정부 초 통일부 차관을 거쳐 2002년 1월부터 2004년 6월까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연달아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러면서 남북 장관급 회담 수석대표로 활동했고, 개성공단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4월2일 10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만의 '서생적 문제의식(철학)'과 '상인적 현실감각(전략)'을 시원시원하게 풀어냈다. 북핵 문제 해결에서 미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힘의 논리'를 분명하게 인정하면서도, '중국을 통한 북한 압박' 식으론 북핵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미국에 우리가 주지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거듭된 북한의 도발은 "미국의 외교 우선순위에 북핵 문제를 1순위로 올려 대화를 하자는 메시지"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방법론도 제시했다. 단계별 협상으로 작은 것부터 하나씩 주고받으며 상황을 진전시켜 나가는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거래)' 방식이다. 바로 ①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②유엔 안보리 제재 일부 완화 ③북한의 추가적인 핵시설 폐기 ④미국의 대북 단독 제재 완화 등의 방법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쿼드 가입시 사드 배치 때 못지않게 中 경제보복 가능성"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미국의 대중(對中) 포위망 틀로 거론되는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전략적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쿼드 가입 문제는 미·중 두 나라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 외교에 또 다른 중차대한 도전으로 평가받는다. 정 수석부의장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서 쿼드와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지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정 수석부의장은 쿼드 가입에 대해 "경제 협력에서 군사 압박으로 넘어가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우리가 쿼드에 들어가면 중국은 사드 배치 때 못지않은 경제적 보복을 해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쿼드 플러스에 들어오라고 제안하면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이 쿼드를 '쿼드 플러스'란 형태로 한국과 뉴질랜드, 베트남까지 범위를 확대할 것이란 언론 보도는 여러 차례 나왔다. 

정 수석부의장은 쿼드 가입으로 예상되는 우리의 경제적 어려움을 미국 측에 솔직하게 설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우리가 쿼드 가입으로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을 당하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돈을 벌어야 미국의 무기를 살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펴야 한다. 쉽고 간명한 설명이 중요한 타이밍이다"라고 했다. 

최근 미·중은 군사·경제 양 측면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알래스카에서 열린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은 강하게 대립했다. 정 수석부의장도 중국이 기존의 외교 노선이던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를 한 뒤 화평굴기(和平崛起) - 유소작위(有所作爲·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한다)를 거쳐 중화부흥(中華復興)으로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년 당대회에서 한번 더 연임을 하고 싶어 한다. 그에 필요한 대내 통합을 위해서는 대외적 긴장이 고조되는 게 유리하다. 중국은 당분간 미국을 상대로 계속 세게 나갈 것 같다. 그 속에서 북핵 문제가 미‧중 갈등관계와 잘못 엮이거나 표류할 수 있다. 우리의 외교가 정말 역할을 잘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 정세현은 누구인가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대북 전략과 협상, 정책을 망라한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다. 1945년 중국 헤이룽장성(북만주)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귀국해 전북 임실 오수에서 성장했다. 전주북중, 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박사를 받았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통일비서관과 민족통일연구원장으로 일했다. 그는 통일부 직원 출신의 첫 통일부 장관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에서 장관을 역임했다. 이화여대 북한학과 석좌교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원광대 총장을 거쳐 2019년 9월부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판문점의 협상가: 정세현 회고록》, 《담대한 여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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