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5·18망언 사과, 학생들이 이끌어냈다"..위덕대 학생들, "5·18 관련단체 찾아가 사죄하겠다"

백경열 기자 2021. 4. 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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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근 대학 강의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일으킨 폭동이라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된 가운데, 해당 학교 학생들이 강의 교수를 적극 설득해 사과를 이끌어낸 사실이 확인됐다.

위덕대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16일 오전 학교 정문에서 박훈탁 교수의 파면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위덕대 총학생회 제공

16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경북 경주 위덕대 총학생회 학생 5명은 수업 내용이 외부로 알려진 지난 8일부터 4일 동안 이 대학 박훈탁 교수(경찰행정학과)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 뒤 사과를 이끌어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대학 총학생회는 12일 박 교수의 사과가 담긴 1분22초 분량의 관련 영상과 사과문을 공개한 바 있다.

박 교수는 지난달 26일 자신이 맡은 교양과목인 ‘사회적 이슈와 인권’의 비대면 동영상 강의분을 통해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니고 북한군이 저지른 범죄행위란 주장은 상당한 과학적 근거와 역사적 증언과 증인을 갖고 있다” 등이라고 주장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위덕대 총학생회 학생 5명은 언론 등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진 지난 8일 이후 수업이 없는 시간 등을 활용해 나흘간 박 교수를 직접 찾아가 밤 늦게까지 면담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 교수는 학생들과의 대화 초기 흥분한 상태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지속적으로 주장한 지만원씨를 옹호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또 소수의 학문적 입장을 알리기 위해 여러 의견 중 하나를 제시했을 뿐이라는 등이라고 주장을 폈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이에 이 대학 학생들은 “학내 구성원으로서 가르치는 분과 허심탄회하게, 진지한 자세로 얘기하고 싶다”면서 “우리가 배움의 정도도 얕은데, (교수께서) 수십년간 얘기해 온 부분을 아니라고 하겠나. 다만 (5·18 관련 발언이) 사회적 통념과는 맞지 않으니 적대시하지만 말고 대화하자”고 설득했다.

이들은 대화를 나누며 “5·18민주화운동의 아픔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폄하하고 합리화할 수 있느냐”는 등이라고 조목조목 반박하며 박 교수를 비판했고 결국 사과문 작성까지 이끌어 냈다.

박 교수는 대화 마지막에 “학문적 입장이었지만, 이렇게까지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수업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고 소개한 것일 뿐”이라면서 “수업을 듣는 학생과 학교 구성원에게 피해를 준 데 대해서는 너무 미안하다”고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위덕대 학생들은 박훈탁 교수가 학교를 떠나는 게 맞다고 본다. 박 교수가 수십년간 이러한 생각(5·18 역사인식 등)을 가져온 만큼, 한 순간에 포기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앞서 대학 총학생회는 지난 12일 각 학과 학회장 등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총회를 열어 박 교수가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고 입장을 모았다. 지난 13일에는 대학 교무처에 이러한 학생들의 입장을 전달했다. 위덕대 관계자는 “추가 징계위를 열어 박 교수를 처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대학 강의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한 경북 경주 위덕대 박훈탁 교수가 올린 사과 영상 갈무리

위덕대 학생들은 다음 달 18일쯤 광주를 찾아 5·18기념재단과 5월 관련단체 관계자 등에게 사죄하기로 했다. 박 교수 망언에 대해 대학 구성원으로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죄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앞서 학생들은 위덕대 교수 중 1명이 5·18 유공자라는 사실을 확인, 이달 말쯤 이 교수를 찾아 사과의 뜻을 전하기로 했다.

위덕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15일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를 매춘부로 주장한 논문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 경북 지역 다른 대학을 설득해 비판 공동성명을 낸 바 있다. 미얀마 사태와 관련해서도 대국민 학살을 멈출 것을 요구하는 영상을 찍고 이러한 내용을 주장하는 펼침막을 교내에 내걸기도 했다.

이 대학 총학생회 관계자는 “청년들의 적극적인 요구 등으로 기성세대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 대한 사과를 얻어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서 “5·18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층이 거의 없어 안타깝다. (청년들이) 현실에만 목매지 말고 좀더 의미있는 것에도 눈을 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학생들이 (역사 왜곡 발언에) 문제의식을 갖고 직접 나서서 사과까지 이끌어 낸 것을 높게 평가한다”면서 “다음 달 광주를 방문하게 되면 반갑게 맞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재단은 올해 5·18을 맞아 허위사실과 표현의 자유와의 관계 정립 등을 주제로 토론회를 기획 중이다.

박훈탁 교수가 지난달 26일 올린 강의 영상 갈무리. 독자 제공

박훈탁 교수는 ‘사회적 이슈와 인권’ 과목 4주차 2교시(제15장 사전 검열과 표현의 자유·제16장 촛불시위와 집회의 자유)에서 강의 초반 약 7분20초 동안 <NEWSTOF>에 지난해 5월25일자로 실린 <‘5·18 가짜뉴스 처벌법’ 국회통과, 복병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을 자세히 살피며 자신의 주장을 편다.

그는 기사 본문 중 “이에 5·18 민주화 운동 단체들은 지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내란의 수괴인 전두환이 이전에 이런 사실을 주장한 바 없고 2016년 5월 신동아 인터뷰에서도 그런 주장을 이후에 들었다고 밝힌 만큼, 지씨의 주장은 애초부터 신빙성이 없었다”는 구절을 읽고는 “거짓말입니다”라고 발언했다.

또한 박 교수는 “대법원은 2012년 지씨가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데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지씨의 주장에 구체적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고 지씨의 주장으로 5·18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지씨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었다. 지씨는 이후 5·18에 대한 왜곡과 날조를 더욱 구체화하며 극우 보수 세력의 지지를 얻었다”는 부분을 읽은 후에는 기사 내용을 비웃으며 “전부 거짓말입니다”라고 말했다.

박훈탁 교수는 “5·18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북한국이 저지른 범죄행위다, 이는 상당한 과학적 근거와 역사적 증언과 증인을 가지고 있다”면서 “연구한 거 자체를 가짜뉴스라고 막아버리겠다는 겁니다.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만원 박사는 5·18 역사 연구에 있어 전세계에서 전문가다. 연구를 열심히 한 지만원의 입을 틀어 막아버리겠다는 게 가짜뉴스 특별법”이라고도 했다. 박 교수는 “중간시험과 함께 ‘5·18 가짜뉴스 처벌법은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가’라는 주제로 과제물을 내야 한다”고 수강생들에게 알렸다.

당시 이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은 “지만원씨는 (5·18과 관련해) 법적 처벌도 받은 사람인데, 박 교수가 지씨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강의에서 설명하는 것을 보고 많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면서 “학교 측이 지난 7일 이 과목의 담당 교수를 바꿨지만, 박씨가 다른 과목에서는 여전히 강의하고 있는 것은 잘못됐다. 학생과 학교가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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