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열풍 롱런? 지중해식단처럼 되려면 '스토리' 가 필요하다"
한류열풍이 K푸드로 넘어온 상황
BTS 등 즐긴 음식 따라먹기 영향
코로나에 '한식' 수혜받은 건 분명
라면·냉동만두 현지화가 성공비결
지중해식단처럼 되려면 '스토리 필요'
[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 궁금했다. 각종 매체가 말하는 케이푸드(K-푸드)는 애국심이 강한 한국인에게 다소 부풀려진 ‘듣기 좋은’ 소식일까. 아니면 실제로 해외에서 인기가 높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통계와 시장 분석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냉철히 연구하는 전문가 도움이 필요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Euromonitor International) 코리아의 문경선 총괄연구원(식품&영양 부문)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이후 “K-푸드가 ‘코로나 수혜’를 받은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강조한 것은 그 다음 말이었다. “K-푸드는 지금 가장 중요한 시기에 놓여있다”는 것. 코로나 위기와 글로벌 트렌드로 조명을 받고 있지만 코로나가 종식된 후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문경선 연구원은 유로모니터의 식품·영양 전문가로 국내외 식품산업에 대한 동향과 시장 조사·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입사 이래로 싱가포르, 영국 등에서 근무했으며, 2017년 귀국해 한국지사의 식품&영양 리서치를 이끌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의 현장에서 다양한 식문화를 접해왔던 그에게 K-푸드의 실체(?)부터 물어봤다. ‘아시아’ 쪽에서는 확실하게 느껴진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전부터 아시아에서는 한류가 있었으나 주로 뷰티 분야에서 주목을 받았어요. 상대적으로 K-푸드는 ‘케이뷰티’(K-Beauty)에 기대는 분야로 머물렀었죠. 하지만 최근에는 한류 열풍이 K-푸드까지 넘어오면서 하나의 독립적인 분야로 인기를 끌고 있어요. BTS(아이돌 그룹)활동도 영향을 미쳤어요. 좋아하는 한류 스타가 먹는 음식을 따라 먹으려는 분위기가 아시아에서 조성된 것이죠.”
전 세계적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이 가장 컸다. 문 연구원은 2020년을 “코로나로 K-푸드에 대한 인식이 바뀐 해”라고 표현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식이 알려진 주된 이유가 전 세계를 강타한 매운 맛 트렌드였기 때문에 매운 음식 위주로 주목을 끌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식 자체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확산 후라는 설명이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김치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로 높지 않았을 겁니다. 김치가 면역력을 높인다는 해외 연구들이 발표되면서 관심이 더욱 높아졌죠. ‘코로나 사망율이 낮은 한국인은 무얼 먹을까’라는 분석이 이뤄지면서 들기름·참기름도 각국에 소개되는 분위기입니다.”
지역별로 K-푸드의 인기 요인은 달랐다. 언급한 대로 아시아는 한류 문화의 선호도가 음식까지 이어진 경우다. 반면 미국의 젊은 층은 이국 음식을 즐기고 공유하는 성향이 강해 외식산업을 중심으로 기회가 생겼다. 특히 코로나 확산 후에는 가정내 인스턴트식품 섭취가 늘면서 한국 라면과 만두가 ‘코로나 수혜’를 입었다. 하지만 중요한 비결은 현지화 전략의 성공에 있었다.
“보통 해외에서는 제품의 국가를 따지지 않고 라면을 고르는데, 영화 ‘기생충’ 수상 이후 한국 라면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어요. 특히 농심은 현지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한 마케팅으로 효과를 봤습니다. ‘온 가족이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콘셉트로 ‘블랙 신라면’을 홍보하면서 호응을 이끌어냈고, 미국 라면 시장에서 브랜드 점유율 2위로 올라섰습니다. 씨제이(CJ)제일제당의 냉동만두도 미국과 베트남에서 인기입니다. 김치 또한 풀무원의 ‘김치랠리쉬’(김치소스)처럼 젓갈을 빼거나 토마토소스를 더하는 등 현지화 된 제품이 주목받고 있죠.”
유럽은 어떨까. 미국과 비슷할 것이라는 기자의 생각은 틀렸다. 유럽 시장은 의외로 까다로웠다.
“유럽인들은 좀 더 보수적이에요. 미국처럼 외식산업이 발달돼 있거나 이국 음식을 그리 즐기지도 않아요. 평소 집밥 비중도 높기 때문에 코로나가 확산된 지난해 유럽의 소매 식품 시장 성장세는 미국의 절반에 그쳤죠. K-푸드가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고전하는 이유는 이러한 요소 때문입니다.”
문 연구원은 유럽일수록 현지인에 익숙한 형태로 K-푸드를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죽을 포리지(Porridge, 오트밀을 물이나 우유에 끓인 것)형태로 알리거나 뻥튀기를 건강한 ‘글루텐프리’(Gluten-Free, 밀 등에 들어있는 불용성 단백질이 없는 식품)의 라이스 크래커로 마케팅하는 식이다.
지역마다 다른 K-푸드의 인기 요소, 그렇다면 K-푸드는 지중해식단처럼 차세대 식물기반 식단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스토리를 어떻게 짜느냐의 문제”라고 답했다. ‘김치는 원래 이런 맛이야’라며 무조건 내세우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김치의 어떤 기능이 몸에 좋은지, 현지인이 먹는 빵과 고기에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 등을 강조하면서 콘셉트를 잡아야한다고 했다.
“한식은 채소 비중이 높은 ‘건강식’ 개념을 강조할 필요가 있어요. 플렉시테리언(The Flexitarian, 채식을 기반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육류나 생선을 섭취)에게는 한식의 선택만으로도 식습관을 유지할 수 있다고 알리는 것이죠.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식단’으로 소개하기에도 적합합니다. 특히 나물의 경우 어디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수출시 현지 제조과정에서 겪는 장애를 해소할 수 있어요. 또한 한식은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보기 원하는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에게 매력적인 식단이에요.” 다만 이러한 장점을 가진 K-푸드도 한류나 매운 맛 열풍이 한 풀 꺾이는 경우, 또는 코로나가 종식된 시기에는 상황이 바뀔수 있다고 언급됐다. “인기인 K-푸드, 그래서 그 다음은 뭔데?”라는 질문에 분명하게 내세울 만한 스토리를 가져야한다는 것이 그가 강조한 결론이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는 K-푸드의 실제 인기가 궁금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앞으로의 K-푸드가 더 궁금해졌다. 코로나 수혜를 입은 일부 품목의 반짝 인기 혹은 일시적인 유행으로 그칠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시장에서 사랑받는 K-푸드로 자리잡을 것인가. K-푸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육성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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