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세력은 벌써 전략 수정..유명무실 '농지법' 제기능 찾을까

2021. 4. 1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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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직원들의 땅투기 의심 지역 / 사진 = 매일경제

LH사태에서 직원들이 매입한 토지의 98.6%는 전답 등 농지로 확인됐습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연루된 사람이 추가로 밝혀지면 수치는 다소 바뀔 수 있겠지만, 대부분 농지라는 점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공개 내부 정보 이용 투기에 대한 처벌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농지이용에 대한 관행을 되돌아봐야하는 이유입니다.

현황부터 살펴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전체 경지면적 168만ha 가운데 농업인이 소유하고 있는 농지는 94만ha로 전체의 56%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농사 짓는데 쓰이는 땅 가운데 44%는 ‘비농민’이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추세적으로 이 비율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농지가격도 우리나라가 사실상 세계 1위로 평가됩니다. 2019년도에 1ha당 2억 8800만 원 수준이었던 농지가격은 최근들어 약 7억 5천만 원 정도로 올랐습니다. 국토대비 농지면적이 4%인 대만의 농지가격은 2014년 기준 우리나라보다 9.8배 비쌌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가 대만보다 2배 비싸졌습니다. 투기수요로 인한 농지가격 상승으로 풀이됩니다.


투기 온상이 된 농지…허울뿐인 농지법

현행 농지법 3조 2항은 ‘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이용되어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내 손꼽히는 농지법 전문가인 사동천 홍익대학교 법대 교수는 그 이유를 “농민의 소득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농업인이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고, 이는 농업농촌의 지속발전을 해칠뿐 아니라 식량안보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농촌이 소멸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동천 홍익대 법대 교수 / 사진 = 본인제공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최근 농지법 관련 개정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사 교수가 말하는 핵심 가운데 하나는 농지를 통해 농업인에게 돌아가야할 이익이 결과적으로 비농민, 즉 도시인 지주들에게 흘러가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구조는 비농민 지주에게 유리하게 돼 있습니다. 농지는 LH사태처럼 단기간에 땅값 급등으로 차익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투자의 대상입니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민에게 땅을 빌려줘 임차료를 거두고, 땅값이 오르면 차익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행 체계에서는 농지 임차료에 대한 상한 규정도 없습니다. 토지주가 마음대로 임차료를 올릴 수 있는 구조로, 직불금 등 농민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이 사실상 토지주 배만 불린다는 비판도 나오는 실정입니다.


농지투기 3세력…'LH형' 근절만으로 불충분

사 교수는 농지가격 급등에 대해 “농지가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 차명거래자 ▲ 투기목적 농업회사 법인 ▲ LH직원들처럼 개발정보를 이용하는 경우 등 3가지 부류가 투기를 주도하는 세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가운데 LH형 개발정보 이용 투기는 사법당국의 노력과 이해충돌방지법, 부당정보이용 등을 처벌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농지법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인데, 사 교수는 차명거래의 경우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를 적용해 해결하자는 입장입니다. 불법원인급여란,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입니다. 불법의 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경우에는 부당이득 반환 청구권이 인정됩니다. 예를 들면, 도박중독자인 A가 도박에 쓸 목적으로 B에게 돈을 빌린 경우, B는 A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농지 차명거래가 가능한 배경은 명의신탁 때문입니다. 현행 법률 체계에서는 판례 등에 의해 농지의 명의신탁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 사 교수의 설명입니다. 명의신탁은 부동산 등 소유관계를 공시하게 돼 있는 재산에 대해 실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소유자로 해놓는 것입니다. 일단 소유권 등기는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하고, 명의를 빌려준 사람과 명의를 빌린 사람이 따로 소유권 확인증서를 공증받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과거 종중(宗中) 토지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 방식인데, 명의를 주로 종손 앞으로 해두고 실제 소유권은 집안 어른들이 갖는 식입니다.

농지 차명거래는 농민과 비농민 모두에게 이득이 됩니다. 농업은 넓은 면적에서 농사를 지을수록 이득인데, 국내 농민 1인당 경작면적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그러니 농민은 농사지을 땅을 확보하고 비농민은 임차료나 미래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일종의 ‘이익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농민과 비농민이 혈연관계거나 지인일 경우 유대감은 더욱 끈끈하겠지요. 그런데 여기에 불법원인급여 규정을 적용해 ‘투기’라는 불법성을 입증할 수 있다면 농민과 비농민 간의 이익 카르텔을 끊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대표발의한 ‘농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제안이유에서 “차명으로 농지를 소유하는 행위를 원천 차단할 수 있도록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해 차명으로 등기할 경우에는 「민법」 제746조에 따라 그 소유권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농지 소유와 이용 실태를 파악하여 작성·관리하는 농지원부를 부동산등기부나 토지대장처럼 누구든지 열람하거나 등본 교부 받을 수 있도록 하여 공공재인 농지의 소유·경작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농지법 일부개정법률안. 주철현 의원 대표발의 / 사진 =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사실 농지 정보공개는 여태 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 더욱 놀라울 정도입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지난해 농지 소유와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면적의 약 47%만 농지원부가 등록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조금 과장 섞인 비유를 하자면, 서울 아파트 100채 가운데 53채는 부동산 등기부등본이 없다는 얘기와 비슷합니다. 그동안 정부가 얼마나 손을 놓고 있었는지 짐작가는 대목입니다.

이 외에 고령화된 농민들이 시간이 지나 차츰 사망하는 경우 상속자들이 대부분 비농민이라는 점도 문제를 어렵게 만듭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가 지난 2월 개최한 제8차 농어업ᆞ농어촌특별위원회 회의에서는 향후 이농이나 비농업인 상속농지 비중이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로 인한 농지의 자산화와 농지기능 상실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월 '농지 소유 및 이용 제도개선 방향 토론회'에서 공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농지소유주의 평균 연령은 65.8세였습니다. 농업 후계자를 찾기 어려운 농촌 현실 속에서 농지 소유주의 고령화는 가까운 미래에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농지소유주 성별 및 연령 / 출처 =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 경남연구원

상속을 통한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늘어날수록 농지가 농업생산에 활용되기 보다는 투기자산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덩달아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농특위는 이를 막기 위해 비농업인 소유 상속농지의 농업인 이용을 제도화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가령, 상속농지의 농업인 장기임대를 유도하거나 농업 경영 의사가 없으면 일정기간 후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입니다. 또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상속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경우 관할 지자체나 정부기관에 신고를 의무화하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주철현 의원이 대표발의한 농지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상속으로 취득한 농지나 장기 영농 후 이농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농지라도 자기 영농에 이용하지 않으면 그 면적에 상관없이 처분하도록 하되, 기존 1년의 처분 기한을 2년으로 함”이라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LH사태 이후 농지법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커지면서 국회에는 지난 3월 이후 13건의 농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16일 정운천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은 경우 1년의 처분의무기간 없이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이 즉시 처분명령을 내리도록 하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해당 토지의 개별공시지가에 따른 토지가액에 해당하는 금액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벌칙을 강화"하는 방안도 담겼습니다.


뜀박질 국회, 날갯짓 투기세력…"'식량안보' 관점도 필요"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투기세력의 전략이 한 발 더 앞서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명의신탁을 통한 차명거래가 어려워질 것을 감안해 이제는 지분을 나누는 방식으로 농지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가령 농민 5%, 비농민 95% 정도의 지분을 바탕으로 농사는 같이 짓는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농민만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비농민이 농사를 짓는지 안 짓는지, 법률이나 행정적으로 파악해 제재하는 것도 사실상 어렵습니다. 가령, 벼농사를 짓는데 1년에 한 번 모내기할 때 잠깐 들러 모판 나르는 것만 도와도 명목상 농사를 짓기는 한 것이기 때문에 단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땅투기 근절 대책이었지만, 농지법 개정은 국가의 식량안보 전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사 교수는 “생산수단인 농지가 줄어든다면 농산물 생산 감소와 농산물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고, 자연히 국내 농업은 위기를 맞게 된다”면서 “기후변화로 흉작이 이어지거나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인 바이러스가 다시 유행한다면 농산물 수급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농지를 투기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농산물 생산 기반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호소입니다.

[ 신동규 디지털뉴스부 기자 / easternk@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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