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7년, 그 배는 녹이 슬고 따개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2021. 4. 1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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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락 기자(chr@pressian.com)]배는 녹이 슬고 따개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구멍이 뚫리고 찌그러지고 여기저기 긁혀 있었다.

배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오래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감정들이 기억 속에 여전히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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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스케치] 세월호 7주기, 목포신항의 세월호 선체와 팽목항의 풍경

[최형락 기자(chr@pressian.com)]
배는 녹이 슬고 따개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구멍이 뚫리고 찌그러지고 여기저기 긁혀 있었다. 상처도 시간의 흔적도 너무 선명했다.

배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오래된 기억들이 떠올랐다. 7년 전의 잔인했던 팽목항과 숨막힐 듯 답답하고 혼란스러웠던 체육관이 떠올랐고, 추운 새벽 담요를 뒤집어쓰고 청와대 앞에 앉아 있던 유가족들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며 국회에서 노숙하던 이들의 목소리와, 광화문에 천막을 치고 숱하게 싸우던 가족들의 노란 옷들이 떠올랐다. 세월호 인양 때 바람 거세던 동거차도의 밤들이 기억났고, 아이의 빈 방을 열고 유품을 꺼내오던 부모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생일에 발견된 아이의 주검을 확인하던 엄마와 생일 케익에 불을 붙이던 아빠의 젖은 얼굴이 떠올랐다.

어떤 기억은 아픔까지 담고 있다. 그때의 감정들이 기억 속에 여전히 배어 있었다. 세월호 선체에 난 상처들은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상처들처럼 아물지 못하고 여전히 그대로였다.

참사 7주기. 목포신항에 있는 세월호 선체와 팽목항의 풍경을 담았다.

▲ 진도 팽목항. 부두에 서자 7년 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혼잡하던 항구에서 답답한 가슴을 쥔 사람들은 바다만 바라봐야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바람이 불자 노란 꽃들이 창문을 두드린다. 팽목항의 유가족 식당 컨테이너에 난 창문. ⓒ프레시안(최형락)

▲ 팽목을 홀로 지키는 고영환 씨. 고우재 학생의 아버지다. 그에게 팽목항은 특별하다. 이곳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공간을 지으려고 애쓴다. ⓒ프레시안(최형락)

▲ 팽목항에서 유가족들이 사용하는 컨테이너 ⓒ프레시안(최형락)

▲ 7년. 생생하던 기억들이 조금씩 바래고 녹슬고 희미해지는 시간일지 모른다. ⓒ프레시안(최형락)
▲ 목포 신항만에 거치돼 있는 세월호 선체. ⓒ프레시안(최형락)

▲ 세월호 선체. 배를 보고 있으니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배를 올려다보고 있으니 여러 기억들이 머리를 스쳤다. 마치 누가 창문 밖을 내다볼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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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찾지 못한 5명의 미수습자가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 세월호 참사는 304명의 희생자를 냈다. 그러나 단지 숫자로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과 아픔을 우리 사회에 남겼다. ⓒ프레시안(최형락)

▲ 목포신항.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과 함께 묶였을 수많은 리본들. ⓒ프레시안(최형락)

[최형락 기자(ch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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