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힘과 힘이 충돌하는 바다.. '아시아의 가마솥' 남중국해

오남석 기자 2021. 4. 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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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하안송 기자

- 지리대전 | 로버트 D 캐플런 지음, 김용민·최난경 옮김 | 글항아리

지정학 전문가의 치밀한 분석

인도양·서태평양 만나는 지점

전세계 상선 50% 이상이 통과

원유·천연가스·어류자원 풍부

주변국 양보 못하는 영역 다툼

美, 카리브해 지배뒤 초강대국

中, 남중국해 차지땐 역전 가능

최근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항공모함 전단까지 동원해 신경전을 벌이면서, 두 나라가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약 2400년 전 아테네가 신흥 강자로 부상하면서 기존의 맹주 스파르타와 지중해 주도권을 놓고 충돌,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치달았던 것처럼 중국의 팽창 의지와 미국의 억제 의지가 무력 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만에 하나 충돌이 현실화한다면, 그 현장은 최근의 기 싸움이 보여주듯 남중국해라는 바다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지정학 전문가인 로버트 D 캐플런은 새 책 ‘지리 대전’에서 왜 남중국해가 21세기의 화약고로 떠올랐는지, 그리고 왜 남중국해 문제가 곧 세계의 문제인지 논한다.

책의 원제(Asia’s cauldron)처럼 이곳이 펄펄 끓는 솥단지가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남다른 지정학·지경학적 가치 때문이다.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90억 명의 인구 가운데 약 70억 명이 동부 아프리카에서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에 살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등이 위치한 이른바 ‘아프리카의 뿔’에서 인도양과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을 지나 일본에 이르는 이 지역의 해양세계는 인도양과 서태평양으로 나뉘는데, 두 대양이 만나는 곳이 남중국해다. 말라카·순다·롬복·마카사르 해협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유라시아 해상 항로의 심장 격으로 매년 화물 적재 상선의 50% 이상, 전 세계 해상 교통 3분의 1이 통과한다.

인도양으로부터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를 경유해 동아시아로 수송되는 석유는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것보다 3배, 파나마 해협을 경유하는 것보다 15배로 많다. 한국이 사용하는 에너지 3분의 2, 일본과 대만의 60%, 중국 원유 수입량의 80%가 남중국해를 통해 공급된다. 페르시아만으로는 에너지만 유통되지만 남중국해로는 여기에 완제품과 산업부품 등도 이동한다.

경제적 가치도 뛰어나다. 남중국해에는 약 70억 배럴의 원유와 900조 세제곱피트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어류 자원도 풍부하다. 더욱이 남중국해는 공해상의 연속이 아닌 200개 이상의 섬과 바위, 산호초 등이 산재한 곳이다. 주변국들이 생존과 경제 발전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영역 다툼을 벌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저자는 남중국해 주변국들의 갈등이 영토(영해) 점유를 넘어 군사기지 건설 경쟁에 이른 점을 주목하면서 “동남아 국가들의 영유권 주장은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에너지 소비가 현재의 2배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는 2030년쯤에는 더욱 격렬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이 난사(南沙) 군도, 베트남이 쯔엉사 군도, 필리핀이 칼라얀 군도라고 부르는 스프래틀리(Spratly) 군도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과 대만, 베트남은 원유와 천연가스의 보고로 알려진 스프래틀리 군도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브루나이는 일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7개의 섬과 암초에 군사시설을 건설했고, 대만은 이투아바섬에 군사용 건물을 세우고 수백 명의 부대와 20문의 해안포를 배치했다. 베트남은 21개, 말레이시아는 5개, 필리핀은 9개의 섬 또는 지형물에 해군을 파견했다. 이는 21세기의 남중국해가 20세기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살육전이 펼쳐진 중부 유럽과 같은 운명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21세기 남중국해에서의 각축은 그러나 20세기를 피로 물들인 대규모 전쟁과는 여러모로 양상이 다르다. 우선 남중국해에서의 갈등은 인본주의자들이 고민해야 할 철학적 문제가 없다. 추축국 대 연합국, 공산주의 대 자유주의식의 대결 양상이 아니다. 저자는 “고려할 사항은 오직 힘, 특히 힘의 균형뿐”이라고 말한다. 미·중 양국의 충돌에 관심이 쏠려 있긴 하지만, 다극(多極)적 갈등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대만과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예전보다 국력이 강해진 국가들과 중국 사이의 갈등도 만만찮다. 각국 내부의 민족주의적 흐름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특이점은 모두 돌발적이고 우연적인 충돌이 발생할 개연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저자는 미래가 암울할 것으로 예단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해군력 강화를 근거로 “현재 미 해군이 남중국해를 지배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바뀔 것”이라며 미국이 과연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라는 지위를 내려놓을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미국이 20세기 초 카리브해를 지배함으로써 제1의 초강대국에 오른 역사가 중국에도 시사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실제로 베트남 동부 해안부터 보르네오섬 북부 해안과 필리핀 서부 해안을 거쳐 일본 오키나와(沖繩)에 이르는 소 혓바닥 모양의 ‘9단선’을 설정, 자신들의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이는 남중국해의 약 90%를 차지한다. 중국이 실제로 이곳을 지배한다면? 아시아는 물론 세계 질서가 새로 쓰일 것이다.

책이 처음 출간된 2014년과 한국어판이 나온 현재 사이에 무시할 수 없는 시차가 느껴진다. 저자가 책을 쓸 당시만 해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금과 같은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중 갈등이 보여주듯, 중국 정부의 대외정책은 예상보다 훨씬 호전적으로 바뀌었고, 중국 내부의 민족주의와 중화주의도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저자의 예상보다 암울한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남중국해의 역사와 주변국의 복잡한 충돌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특히 현장을 찾아가 각국 주요 인사를 만나 솔직한 속내를 들어본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320쪽, 1만7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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