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파멸의 이야기만큼 강렬한.. '알코올 중독' 극복의 과정

나윤석 기자 2021. 4. 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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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는 언젠가 말했다.

"나에겐 2개의 다른 삶이 있었다. 술에 취한 삶과 술을 끊은 삶." 에세이집 '공감 연습'으로 수전 손태그와 비견할 만한 에세이스트라는 찬사를 받은 레슬리 제이미슨이 쓴 '리커버링'은 술에 얽힌 2가지 삶에 대한 자전적 회고록이다.

12세 때 알코올을 처음 맛보고 20대 이후 술독에 빠져 지낸 저자는 'AA(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모임을 통해 중독에서 회복에 이른 과정을 "파멸의 이야기만큼 강렬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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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버링 |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오숙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는 언젠가 말했다. “나에겐 2개의 다른 삶이 있었다. 술에 취한 삶과 술을 끊은 삶.” 에세이집 ‘공감 연습’으로 수전 손태그와 비견할 만한 에세이스트라는 찬사를 받은 레슬리 제이미슨이 쓴 ‘리커버링’은 술에 얽힌 2가지 삶에 대한 자전적 회고록이다. 12세 때 알코올을 처음 맛보고 20대 이후 술독에 빠져 지낸 저자는 ‘AA(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모임을 통해 중독에서 회복에 이른 과정을 “파멸의 이야기만큼 강렬하게” 풀어낸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카버를 비롯해 존 치버, 존 베리먼, 진 리스 등 ‘위스키와 잉크’를 늘 곁에 뒀던 ‘알코올 중독작가’들을 살피며 취기와 창조력의 관계를 고민한 단락이다. 저자는 처음엔 “음주와 글쓰기는 똑같이 빚어진 고통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이라며 위대한 예술가들의 음주 행각을 은근히 낭만화한다. “그 정도로 마셔야 했다면 틀림없이 상처를 받은 사람이었을 것”이라면서. 천재성에 대한 이런 매혹은 사교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오디션을 보듯 담배 8개비를 한 번에 피워대며 몸을 혹사했던 젊은 날을 정당화한다.

저자의 삶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건 한 임상 의사를 만난 이후다. 의사로부터 “중독이란 레퍼토리의 축소”라는 말을 들은 저자는 삶 전체가 술을 중심으로 쪼그라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술 마시며 보낸 시간만이 아니라 술 마신 걸 후회하며 보낸 시간, 술 마실 것을 예상하며 보낸 시간까지 모두 ‘술로 흘려보낸 삶’이었다.” 이런 깨달음은 ‘창조성을 끌어내는 음주’에 대한 매혹에서 벗어나 “글을 쓰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은 망상”(존 베리먼)이며 “취기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AA 모임에 발을 들인 것도 이 무렵이다. 저자는 플라스틱 접이 의자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람들과 ‘중독’ 경험을 공유하며 새 일상을 모색한다. 몇 차례 중독 재발과 단주(斷酒)를 반복한 뒤 ‘항복’부터 ‘고백’에 이르는 AA 모임 특유의 12단계 회복법을 통해 술을 완전히 끊는 데 성공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술 마시는 것이 아닌 삶”에 도달한 것이다. 이 과정을 묘사하는 대목에선 타율적 제재의 뉘앙스가 강한 ‘금주’가 아닌 자율적 의지가 담긴 ‘단주’라는 표현이 반복된다.

저자는 AA 모임을 통해 ‘1인칭 복수’와 ‘합창’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한다. 회복이란 “1인칭 복수의 시점으로 타인의 삶 속에 빠지는 일”이며 “취해서 멍하니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합창하며 사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알코올 중독과 인종차별의 관계, 중독을 범죄시한 사법 역사 등을 돌아보며 ‘투옥과 처벌’이 아닌 ‘질병과 치유’의 관점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제안도 내놓는다. 684쪽, 2만2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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