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이전하면 책임 회피 가능..새로운 '양육비법' 구멍 크다"
【베이비뉴스 김민주 기자】
"19년간 못 받은 양육비만 2억 원이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 A 씨)
올해 6월 10일부터 양육비 지급 책임이 있는 부모가 양육비를 미지급할 경우 '운전면허 정지'가 가능하고, 7월 13일부터는 '출국금지', '명단공개', '형사처벌'이 이뤄진다. 최근 개정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개정안' 덕분이다. 이 개정안에는 사유 없이 1년 이내에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출국금지·명단공개·형사처벌 등의 처벌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담겼고, 지난해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그러나 출국금지·명단공개·형사처벌은 채무자가 '감치' 처벌을 받은 이후에 시행된다. 고의로 양육비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제재조치로 경찰서 유치장,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머물게 하는 것이 감치 제도다. 하지만 양육비 채무자가 주소지를 허위로 신고하거나 주소지에 없는 경우, 감치를 집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이외에도 개정안에는 다양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한부모가족을 지원하는 다양한 단체들의 목소리다.
지난 9일 베이비뉴스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양육비해결총연합회(양해연) 사무실을 찾아가 이영 양해연 대표와 양해연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최우석 변호사를 만나 6월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양육비 법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새로운 법 시행 고무적… 법의 사각지대 여전"
이영 대표는 "법이 시행되면 이전에 하지 못한 양육비 문제 해결의 길이 생긴다"며 "실효성이 있는 패널티가 생겼다는 점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여태까지 양육비법에는 '지급하라'는 말은 있었지만, '지급하지 않으면 무엇이 일어난다'는 말이 없었다는 것이 대표의 지적이다.
"우려되는 점은 법이 생겼지만 새로운 개정안 역시 감치 소송의 판결 후에 양육비 미지급에 불이익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여태까지도 감치의 집행력이 떨어져서 감치 판결을 받아도 실행되지 못했고, 판결이 집행돼도 5일에서 10일 구치소에 있는 것뿐이었다. 양육비 미납 금액이 큰 채무자는 그냥 구치소에서 구류를 받고 끝내기 때문에 양육비를 받는 한부모가족은 여전히 소수이다."
이 씨가 전한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A 씨의 남편 B 씨는 19년 간 양육비 총 2억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남편 B 씨는 지금도 계속해서 허술한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고 있는 중이다. A 씨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이행원)을 통해서 2018년 4월 처음으로 양육비를 받았고, 그해 5월부터는 매월 지급한다고 연락받았지만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
B 씨는 감치명령을 주소이전으로 계속 회피했고, 이행원 담당자가 연락을 시도하자 욕을 하기도 했다. 돈은 벌고 있지만, 사대보험료는 0원이었다. 이행원은 소송을 대리하는 입장이어서 압류나 경매는 할 수가 없다. 법무법인을 통해 양육비 소송을 하면 1회 비용이 550만 원이 넘게 들어 양육권자인 아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감치 판결의 집행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양육비 채무자는 감치 판결을 피할 수 있고, 채무자가 감치 판결을 받아도 양육자는 양육비 소송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양육비 소송은 2~3년 정도 걸리는데 이렇게 시간을 끌다보면 아이들은 성년이 돼서 양육비를 못 받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결과'에는 한부모가족의 78.8%가 양육비를 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 양육비를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비율이 73.1%이지만, 정기지급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양육비 청구소송은 7.6%, 이행확보절차 이용 경험은 8%로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많은 한부모가족은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고 이는 결국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게 된다.
앞에서 언급된 '감치 명령'의 실효성도 문제다. 가사소송법 제68조에 따라 양육비의 일시금 지급명령을 받고도 30일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권리자의 신청으로 가정법원이 30일 내에서 감치를 명할 수 있다.
최우석 변호사는 감치판결의 실효성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감치는 형사처벌이 아니라는 점이 큰 맹점"이라며 "판결을 받아도 집행기한인 6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사라진다"고 전했다. 그는 "감치명령서가 자택에 발송되더라도 비 양육자들은 이미 위장전입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양육비 채무자들의 위장전입에 관해 A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A 씨는 앞서 소개한 양육비 지급을 회피하고 있는 B 씨의 아내다. 2017년 감치명령을 내릴 당시 유효 기간은 3개월이었다. 서류를 보면 감치 결정은 11월 14일인데 주소 이전은 11월 15일에 이뤄졌다. 명백하게 감치를 피해서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A 씨는 "2015년부터 2018년 12월까지 이행원을 통해 절차를 진행했지만 이룬 것이 없다"며 "올해 1월부터 4월 사이에도 등본 주소를 찾아다니며 위장 전입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부모가족은 보통 엄마가 일하며 아이를 돌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추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감치명령서가 채무자 집에 도착하기 전에, 채무자가 주소를 이전해 버리기 때문에 감치명령서는 최장 6개월간 오발송된다. 그동안 감치명령은 무용지물이 된다. 최 변호사는 "6월 10일부터 적용될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명단공개, 형사처벌도 감치명령이 해결되지 않으면 효율이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법의 실효성 위해' 감치 해결은 기본, 양육비 대지급 적용돼야
이 대표는 "감치명령을 현재 방식인 서면 고지가 아니라 공시 송달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공시 송달이란 상대방의 거주지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 앞의 경우처럼 주소를 이전해 버린 경우, 일부러 받지 않은 경우 등 송달이 불가능할 때 소송 관계 서류를 법원게시판에 일정 기간 공고해서 송달이 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감치명령이 공시 송달로 바뀐다면 지금까지 양육비 채무자들의 위장전입도 소용없게 된다.
최우석 변호사는 "감치를 집행할 때 경찰이 강제로 문을 열수 있는 예규상의 적극적인 집행이 가능해야한다"며 "주소 이전이 너무 손쉬운 데다 주민등록법 위반 범죄를 처벌한 사례가 없어 양육비를 안 주고 버티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주민등록법상 허위로 주소를 이전하는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규정돼 있으나, 실제로는 이 역시 무용지물이다.
이영 대표는 "성장하는 아이들이 양육비가 없어서 힘들거나 결핍되는 부분을 막아야 한다"며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서영교 더불어민주당(서울 중랑구 갑) 국회의원이 지난달 9일 대표 발의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이를 보완하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서 의원은 현재 양육비 채무자들이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점에 착안해 미성년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국가가 직접 양육비를 대지급하고 그 비용을 회수하는 양육비 대지급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개정안을 냈다.
이 대표는 "통과된 법이 잘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향후엔 양해연의 아이들 중 아픈 아이들을 돕고 싶다"며 "양육비 이행원은 현재 업무가 매우 과중해 광역 지자체마다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변호사는 "양육비 관련 법제도의 미비점과 기타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양해연 등 관련 단체와 양육을 맡고 있는 한 부모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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