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집단면역'에 빨간불 켜졌다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2021. 4. 1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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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부족·백신 부작용·4차 유행이 원인
돈을 싸들고 가도 백신을 구하기 힘든 상황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11월 집단면역'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코로나19 백신 물량이 부족해 접종 속도를 내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인 데다, 주력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의 부작용까지 확인됐기 때문이다. 당장 상반기 접종률 20%라는 목표도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집단면역은 통상 사회 구성원의 70%에서 항체가 형성된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 국민 약 5200만 명 가운데 3600만 명 이상이 백신을 맞아야 하는 셈이다. 백신별로 항체 형성률이 다른 만큼 사실상 국민의 90% 정도가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11월 집단면역을 달성한다는 목표로 2월26일부터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다. 우선 1차 목표는 6월까지 접종 대상자 1200만 명 가운데 접종 거부자를 제외한 1000만 명을 접종해 접종률 20%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 정도만 돼도 감염병 확산세를 어느 정도 억제하면서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상반기 중 1000만 명 이상이 백신을 접종받으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감염 확산을 제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는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첫 접종을 시작한 2월26일부터 4월15일까지 백신을 맞은 인구는 약 120만 명이다. 이 속도를 6월까지 연장해 보면 약 300만 명이 접종을 마치는 셈이다. 상반기에 1000만 명 이상을 접종한다는 1차 목표의 3분의 1 수준이다. 4월15일 국내 접종률은 약 2.3%로 방글라데시(3%대)와 르완다보다도 낮다. 3월5일 접종을 시작한 르완다는 38일째인 4월11일 접종률이 2.8%로 한국보다 높다.

하루 평균 2만4000명 수준인 접종 속도를 8만~9만 명까지 올려야 상반기 목표인 접종률 20%에 근접할 수 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보건소 등 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 접종 속도를 낼 수 있다. 독감 백신도 10~12월에 1500만~2000만 명을 접종한다. 코로나19 백신을 주말에 수십 또는 수백 명 접종하는 속도로는 상반기 1000만 명 접종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이제는 돈을 싸들고 가도 백신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현재 백신 물량을 쥐고 있는 미국과 같은 나라를 상대로 최정상급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백신 빈혈' 상황에 처한 국제사회 

실제로 세계 각국이 '자국민 우선 접종' 전략을 추진하면서 국제사회는 백신 부족 상태에 빠졌다. 영국은 유럽연합(EU)과 계약한 대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공급하지 않은 채 자국민 접종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이에 맞서 EU는 유럽에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생산공장의 백신 반출을 금지시켰다. 미국도 자국의 백신 수출을 막고 자국민에게 우선 접종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백신 생산시설을 갖춘 인도도 자국에 우선 공급하기 위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수출을 잠정 중단f한 상태다. 

백신 주권이 없는 우리나라는 직격탄을 맞는 형국이다. 국내 도입 물량이 줄줄이 축소되고 도입 시기도 늦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역 당국은 고육지책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차 접종만으로도 예방 효과가 86%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 등을 근거로 2차 접종용 비축분을 1차 접종에 사용하면서 버티는 중이다. 이를 위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1·2차 접종 간격을 10주에서 12주까지 늘렸다. 

사실 이 방법은 후속 물량이 계획대로 도입되는 것을 전제로 한 임시방편이다. 4월14일 화이자 백신 12만5000명분이 국내에 도착하는 등 후속 백신은 소량씩 도입되고 있다.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4월8일 기자회견에서 "2분기 도입 물량 관련,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으며 화이자 백신 등 다른 백신은 당초 계획대로 도입 물량이 확정됐다. 도입 시기는 개별 제약사와의 특수 계약관계 때문에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 상반기 1200만 명 접종 목표에 차질이 없도록 꼼꼼하게 점검 중"이라고 밝혔다. 

올 상반기 도입이 확정된 백신 물량은 964만4000명분이다. 다만 권 장관은 최근 "상반기 도입할 백신이 2080만 회분(1040만 명분)"이라고 밝혀 확정된 물량 외에 175만6000명분이 추가 도입될 것임을 시사했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2분기 중 이 물량을 모더나·노바백스·얀센 백신으로 충당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백신의 초도 물량과 공급 일정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다. 모더나 백신은 5월 도입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이 수출을 막고 있어 국내 도입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우리가 확보한 2000만 명분의 노바백스 백신은 2분기부터 도입될 계획이었으나 원자재 부족으로 생산이 6월로 늦춰지면서 3분기에 1000만 명분, 4분기에 1000만 명분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얀센 백신 보급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제약 부문 계열사인 얀센이 만든 백신은 1회 접종만으로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데다, 일반 냉장고 온도에서 보관 가능해 지구촌 백신 공급난을 해소할 유력 후보로 전망됐다.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4월12일 얀센 백신 접종자 중 드물고 심각한(rare and severe) 혈전이 나타난 사례 6건을 근거로 사용 중단을 권고했다. 얀센 백신 접종 후 혈전증이 나타난 접종자는 모두 여성이며, 연령은 18~48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우 드문 부작용이지만 혈전이 생기는 부위는 다양하다. 뇌 정맥에 혈전이 생기면(뇌정맥동혈전증·CVST) 타이레놀을 먹어도 심한 통증이 계속되며 시력이 흐려지는 증상이 생긴다. 간·비장·신장 등 내장기관에서 나온 혈액이 모이는 정맥에 혈전이 생기면(내장정맥혈전증·SVT) 울혈(장기에 피가 모인 상태)과 혈액 순환 장애로 복통이 발생한다. 폐동맥에 혈전이 생기면 호흡이 힘들어지고 흉통이 생긴다. 다리 정맥에 혈전이 생기면 다리가 붓는다. 혈소판이 감소하면 접종 부위에 좁쌀만 한 붉은 점(출혈반)이 생기거나 쉽게 멍이 든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이 백신의 접종을 중지하거나 도입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방역 당국은 "얀센 백신 허가 사항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논의가 필요하다. 질병관리청에서는 해외 동향을 살펴보면서 전문가 회의 소집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등 일부 국가는 부작용이 발생한 백신 대신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투여하기로 했지만 우리는 대체 투여할 백신이 없다. 올 상반기 도입이 확정된 백신 물량 964만4000명분 가운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런데 국내 주력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도 접종 후 희소 혈전증 부작용이 확인됐다.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의약품위험성평가위원회(PRAC)는 4월7일 기자회견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시 매우 드물게 혈소판 감소가 일어나는 혈전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3월22일까지 영국과 EU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 2500만 명 가운데 혈전 부작용을 보고한 86명을 분석한 결과다. 약 30만 명 가운데 1명꼴로로, 혈전증 발생률 자체는 매우 낮아 '매우 드문 부작용'으로 분류됐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30세 이상만 접종

희귀 혈전증이 주로 젊은 층에서 발생하지만 특정 연령대의 접종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EMA는 "코로나19를 예방하는 전반적인 이점이 부작용의 위험을 능가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독일과 영국 등은 30세 미만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아닌 다른 백신을 사용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후 혈전 증상이 3건 보고됐으나, 이 가운데 2건은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나머지 1건은 인과성은 인정됐으나 혈소판 감소 증상이 없어 EMA의 부작용 사례 정의에는 맞지 않았다. 방역 당국은 "유럽에서 보고된 혈전 사례의 대부분은 낮은 혈소판 수치와 일부 출혈을 동반하는 매우 드문 특이 혈전증으로 국내에서 보고된 사례는 EMA 사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연령에 제한을 두기로 했다. 30세 미만은 백신 접종으로 인한 이득이 희귀 혈전증으로 인한 위험보다 크지 않은 점을 고려한 것이다. 코로나19 예방접종전문위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의 연령별 이득과 위험 분석 결과에 따라 위험 대비 이득이 높지 않다고 평가된 30세 미만에 대해서는 접종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일시 보류했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4월12일부터 재개했다. 희소 혈전증은 조기에 발견하면 항응고·혈전 치료를 통해 고칠 수 있다. 다만 접종 후 15분~1시간 이내에 발생하는 아나필락시스와 달리 희소 혈전증은 접종 후 4~14일 이내에 나타나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은경 추진단장은 "정부는 의료계, 전문가와 협력해 이상 반응 발생 시 신속하게 치료하고, 이상 반응 감시·조사·심의를 신속하게 진행하면서 관련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이 재개되지만 일부 연령층이 제외됨에 따라 정부의 접종계획은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김 교수는 "본래 계획보다 접종 물량이 부족하고 접종 시기도 늦춰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희소 혈전증 부작용까지 발생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백신의 접종은 연령 제한을 두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상반기 1000만 명 접종 목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렵게 됐다. 물론 모더나·노바백스·얀센 백신이 계획대로 도입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현재 정부가 도입 예정이라고 하는 백신도 우리 영토로 들어와야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백신을 조기에 확보하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실제로 백신 불안감 속에 접종 동의율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접종이 재개된 감염 취약시설 종사자의 경우 접종 동의율이 88.4%(9만8474명 중 8만7095명)에 달했지만, 특수학교 교사와 유치원, 초·중·고교 보건교사 등 학교·돌봄 종사자의 접종 동의율은 70%(5만9365명 중 4만1535명)로 다소 낮은 편이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예컨대 백신 접종 후 요양시설의 감염이 줄어들었다는 등의 효과와 유효성을 잘 설명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65세 이상에 백신을 접종해 중증이나 사망 위험이 감소하는 중이다. 접종 자체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접종 대상을 추가하거나 제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백신 안전성 문제는, 접종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줘야 한다. 6월 이후에는 백신 접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변이 바이러스로 시작한 4차 유행파

백신 접종률 70%는 백신만 확보하면 가능한 목표다. 그러나 국민의 70%가 백신 접종을 마쳤다고 집단면역이 형성될지는 미지수다. 집단면역이란 백신의 효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변이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한 4차 유행으로 감염재생산지수가 높아지면 요구되는 집단면역 수준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4차 유행은 사실상 세계적으로 시작됐다. 미주와 유럽, 아시아 대륙 등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특히 4차 유행은 변이 바이러스가 주도하는 양상이다. 백신 접종으로 감소세를 타던 각국의 감염자 수가 변이 바이러스 확산 후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우리도 변이 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변이 바이러스는 총 379건이다. 이 중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는 324건, 남아프리카공화국발 변이 바이러스는 46건, 브라질발 변이 바이러스는 9건이다.

김 교수는 "인간이 백신을 접종하면 기존 바이러스는 사라지지만 내성을 가진 변이 바이러스는 살아남는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백신으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는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남아공ㆍ브라질발 변이 바이러스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 이미 연구로 확인됐다. 특히 칠레나 바레인은 백신 투여량이 많은데도 확진자가 증가세다.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 속도를 높이는 이유도 변이 바이러스가 주종인 4차 유행파가 본격화하기 전에 코로나19를 졸업하기 위해서다. 집단면역 달성이 그만큼 어렵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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