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보내는 편지]아들아! 하늘나라 수학여행은 잘 하고 있니?
단원고 2학년 5반 이창현 군에게 어머니 최순화씨가
편집자주
세월호 참사 7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유족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췄다. 생때같은 목숨들이 서서히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을 뜬 눈으로 지켜봐야 했던 시민들의 삶도 그날 이후 달라졌다. 트라우마는 끊어진 닻처럼 가슴 속 깊히 내리박혔다. 4월은 어김없이 거센 바람을 낸다. 하루 또 하루 노란 리본을 하릴없이 매듭짓다 보면 언젠가는 나아질까. 세상은 잊으라고, 이미 잊히고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를 상실해버린 이들이, 바다로 보내는 편지는 다시 묻는다. 아무도 모르게, 우리가 진짜 잊은 게 무엇인지. 끝내 잊힐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창현아!
수학여행을 떠나던 그날도 벚꽃이 만개했었지.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이 피어나 하얗게 웃는 모습을 보니 너와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
하늘나라 수학여행은 잘 하고 있는 거지?
엄마가 사는 지구별은 작년부터 코로나19에 점령돼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아주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어. 어디를 가든 집 밖으로 나갈 때는 마스크를 써야 하고 손소독도 수시로 해야 하고 마음대로 여행을 다닐 수도 없어. 네 명 넘게 모여 밥 먹는 일도 힘들어졌고 그래서 사람들 간의 왕래도 뜸해졌어.
날마다 코로나19 뉴스를 접하는 것도 일상이 됐고 하루에 마스크를 세 개씩 빨아서 다리미로 다리는 일도 엄마의 일상 중 하나가 됐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전 세계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모습은 만화나 영화에서 보던 지구 종말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이게 다 인간들의 탐욕으로 인한 결과래. 이익을 얻겠다고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니 잠자던 바이러스들이 깨어나 갈 곳을 잃어 인간 삶으로 들어온 거지. 그래서 엄마도 어떻게 하면 친환경적으로 살아갈까를 염두해 두고 생활하고 있어.
아이고, 재미없는 바이러스 얘기만 늘어놓았네.
너와 친구들이 하늘나라 수학여행을 하고 있듯이 416가족협의회 엄마 아빠들도 늘 모여서 같이 행동하고 있어. 어느새 가족 이상의 끈끈한 동지들이 됐다고 할까.
수학여행을 떠난 너희들이 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여태 하늘나라 수학여행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투쟁하고 있거든. 너희들은 배가 기울어가는 그 아찔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구조 신호를 보냈고 구조 신호를 접수한 해경이 당연히 구해줄 거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현장에 도착한 해경도 해군도 왜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
그걸 알려달라고 8년째 정부와 싸우고 있는데 아직도 진실에 닿기까지는 좀 먼 것 같아. 참 이상하지?
304명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렸다는 결과는 명백하게 나와 있는데 그 원인은 잘 모르겠고, 그 원인을 자세하게 알 필요 없다는 태도들 말야. 그런다고 포기할 엄마 아빠가 아니지. 엄마 아빠도 이미 싸움꾼이 다 됐거든.
단식, 삭발에 노숙, 서명전, 피켓팅, 촛불집회 등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진상규명을 피해자인 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방법을 동원해 해볼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는 건데, 해도 해도 안되니까 지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억울해서 울기도 해. 하지만 너희들이 당한 고통만큼은 아니라서 너희들 생각하며 잘 이겨내고 있어.
한 가지 안 해본 건 고공농성인데 고공농성을 하려면 국회 지붕 위나 청와대 지붕 위에서 해야만 효과가 있을 텐데 아직 거기까진 뚫지 못했어. 날 수 있는 옷이 곧 나올 수 있다는데 그게 개발돼 나온다면 국회 지붕이나 청와대 지붕 위에서 고공농성을 시도해 볼 것 같아.
만 7년, 햇수로 8년째인데 아직 진상규명을 못했다는 게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미안해서 죽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래도 계속할게. 이건 엄마 아빠의 일이니까.
여기 일은 엄마 아빠들이 알아서 잘할 테니까 너희들은 하늘나라 우주여행 잘하고 있어야 돼. 알겠지?
이맘때면 비염 때문에 고생했었는데 비염은 좀 나아졌어? 창현아!
친구들이랑 라면 먹을 때 참 행복해 했었는데, 새로운 라면이 나올 때 마다 우리 창현이가 저 라면을 먹으면 얼마나 행복해할까를 생각해보곤 해. 누나는 비빔면을 좋아하는데 새로운 비빔면이 나왔나봐. 맛이 궁금해? 궁금하면 누나한테 물어봐. 알겠지?
네가 앉았던 식탁의 빈자리. 비어 있는 너의 책상, 먼지 쌓인 자전거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엄마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하지만 엄마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 아들아!
산책도 잘 나가고 스트레칭도 자주 하며 건강 챙기고 있고, 아빠도 토요일엔 여전히 축구하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하늘도 맑고 날이 참 좋다. 엄마는 이제 청와대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단식 기도 하는 분들 뵈러 나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날은 맑지만 바람이 차가우니 단단히 차려입고 다녀올게.
오늘처럼 매일매일 창현이랑 인사했으면 좋겠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타임머신 타고 그때로 돌아가자. 창현아!
2021. 4. 14.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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