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편집위원회] 소수자 젠더 이슈 잘 짚었지만, 후보 정책 검증 분석 부실

정환봉 2021. 4. 16.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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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거대양당 후보 동향 보도 넘치고
시장 후보로서의 비전보다
정치적 경쟁 구도에 집중 아쉬워
성비위 문제가 원인이 된 선거
성평등 정책 집요하게 물었어야
청소년·20대 표심 보도 인상적
이후에도 깊이있는 분석 나왔으면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부산시장 등 재보궐선거가 지난 7일 마무리됐다. 불과 1년 전 총선과 정반대의 선거 결과는 매서운 민심의 힘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지난 12일 오후 5시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9기 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은 <한겨레>의 4·7 재보궐선거 보도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회의에는 김민정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경미 위원(섀도우캐비닛 대표), 김보림 위원(청소년 기후행동 활동가), 김준범 위원(한라홀딩스 부사장), 임자운 위원(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 홍윤희 위원(장애인이동권컨텐츠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황세원 위원(일in연구소 대표)이 참여했다. 한겨레에서는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과 김영희 콘텐츠 총괄, 정환봉 소통데스크가 함께했다.

김민정 오늘 이야기를 나눌 주제는 재보궐선거 보도다. 지난 선거 시기 한겨레 보도에 대한 말씀을 부탁드린다.

김경미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20대 남성이 페미니즘에 반대해 오세훈 시장을 뽑았다는 분석이 많았는데, 이 인터뷰를 통해 민주당이 여성 정책에 치우쳐 ‘이남자’(20대 남성)가 떠난 것이 아니라 젊은층이 여당을 심판한 것이라고 짚어준 점이 인상 깊었다. 적절한 타이밍의 인터뷰였다. 선거 이후 나온 ‘성찰 없거나 공세만 하거나…4·7 선거에서 ‘성평등 이슈’ 지워진 까닭’이라는 기사도 좋았다.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586이 왜 일반 시민들보다 더 정치권력의 성폭력 문제나 젠더 이슈를 소화하지 못하는지 선거 내내 답답했다. 이 문제를 한겨레가 잘 짚어줬다. 이후에도 더 파고들었으면 좋겠다. 아쉬웠던 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로남불’이 민주당을 연상케 한다고 투표 독려 문구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한 결정과 관련한 기사다. 보수 정당이 여당일 때 선관위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으면 진보진영이 이 정도로만 다뤘을까. 조금 더 파고들어 정치학자나 여당의 생각과 입장을 확인해 보도했어야 한다고 느꼈다.

김민정 오히려 선거 결과 이후 나온 보도들이 더 재미있었다. 그 이전 보도의 경우 거대 양당 후보자들의 행보에 대한 내용이 너무 많고 정책이나 공약 분석 보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정책 평가 기사 역시 지면에는 거대 양당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소수정당이나 후보자 정책은 소홀히 다루는 느낌이었다. 칭찬하고 싶은 점은 소수자 차별, 혐오 발언에 대한 비판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퀴어축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발언이나 오세훈 시장의 ‘문재인 중증 치매 환자’ 발언, 오태양 미래당 후보의 펼침막 훼손이 잘못된 일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짚어주고 페미니즘 공약을 내건 후보들이 온라인에서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며 이를 비판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신선한 시각의 기사라고 생각했던 것은 공직선거법에서는 후보자의 배우자나 가족들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정상가족을 가진 후보들에게만 유리한 규정이라고 짚은 기사다. 이 밖에도 서울·부산시장 후보의 청소년 정책 진단이나 청소년들의 표심 기사 등도 한겨레에서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박원순 전 시장의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 불렀던 의원들이 박영선 후보 캠프에서 물러난 지면 기사에 ‘악재’, ‘불똥’ 같은 제목이 달린 건 이 문제를 너무 선거공학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줬다.

황세원 나 역시 그 제목은 상처가 됐다. 종합적으로 보면 한겨레의 재보궐선거 기사 전반에 실망감을 느꼈다. 도시에 대한 비전과 철학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것이 시장 선거다. 하지만 한겨레 보도는 시장 선거라는 의미보다 체급을 높이기 위한 정치인의 경쟁 구도에 더 집중한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오세훈-안철수 단일화 관련 보도다. 단일화 때까지 매일 보도가 나왔지만, 두 사람의 시장으로의 비전을 비교 분석해주는 기사는 한번도 없었다. 지방선거인지 총선인지 대선인지 상관없이 비슷한 방식의 보도를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의제나 비전을 중심으로 한 선거 보도가 많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임자운 정치 기사에서 기자들이 가장 삼가야 할 자세가 정치인의 말을 단순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언론이 정치인의 확성기 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의 발언이 중요하긴 하지만 반드시 분석과 평가가 있어야 기사 가치가 있다. 그런 면에서 한겨레는 후보의 말을 전달할 때도 어떤 전략과 배경에서 나오는 것인지, 팩트체크를 해보니 어떤지 등을 함께 보도해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론조사 결과 기사도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끊임없이 말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보였다. 다만 정책 검증은 정말 부실했다. 역대급 정책 실종 선거였지만 그럼에도 오세훈-안철수 후보 단일화 이전까지 둘의 정책을 비교하는 기사가 하나도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이후 공약 검증 시리즈가 나온 적이 있지만, 성평등 정책 비교는 없었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서울·부산시장의 권력관계에 의한 성비위 문제가 원인이 됐다. 이렇게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 우리 사회가 한발 더 나아가려면 성평등 정책과 의식이 강화되는 선거가 돼야 했었는데, 일단 후보들이 이에 대해서 경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언론이 이를 견인했어야 했다. 민주당의 2차 가해 발언 비판에 그치지 말고 공약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말하게끔 한겨레가 집요하게 질문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보림 이번 선거를 두고 20대 여성은 진보고 남성은 보수라는 이야기들이 다른 언론에서 굉장히 많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20대들은 잘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아까 언급된 박 전 최고위원 인터뷰 기사와 ‘‘분노의 스윙 보터’ 20대…남녀 표심 뜯어보니’ 기사는 인상적이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20대 남성의 투표 결과를 단순히 보수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탈이념화의 요소가 있다고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설명해주는 대목이었다. 또 소수정당 후보들이 20대 여성의 지지를 많이 받았지만, 실제 득표율은 높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한 부분도 눈길을 끌었다. 다만 나 또한 정책을 다루는 것에는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거대 양당의 기후 정책을 비교하는 기사는 있었지만, 나머지 후보들의 정책에 대한 분석은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

김준범 20대의 표심이 갈린 것에 대한 추가적인 분석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20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보수와 진보에 관해 관심이 없다. 그런 프레임에 가두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현재 정권에 대한 분노, 젠더 이슈 등 다양한 쟁점들이 있는데 정확하게 20대들의 표심이 어떤 것인지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김영희 20대 아들과 토론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듯한 적이 있다. 우리 세대는 선거 때마다 ‘이번 투표가 앞으로의 한국 사회를 좌우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20대들은 이것이 잘못되면 ‘다음 투표에 내가 바로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른 세대의 사고방식으로 20대를 바라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겨레는 앞으로 계속 20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도를 하려고 한다. 선거 보도와 관련한 지적에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선거 국면에 들어가면 언론사는 사진 크기와 포즈까지 맞춰야 하는 등 많은 제약이 있다. 한겨레가 어젠다를 던지고 그 기준에 비추어 어디가 더 우세하다고 평가하기도 어려운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성평등 정책 관련해서는 이번이 가장 페미니즘 공약을 내건 후보들이 많은 선거라는 내용 등을 따로 보도했고 이 과정에서 소수정당을 조명했다. 오히려 거대 양당의 경우 별다른 관련 공약이 없어서 제대로 못 다룬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소극적 보도로 보였을 수 있다. 선거 보도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다.

김경미 한가지 제안하고 싶다. 곧 여당 당대표 선거가 있을 텐데, 독자들은 당대표로 거론되는 정치인들을 잘 모른다. 한겨레가 이들이 어떤 생각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있는 보도를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경마식 보도가 아니라 당대표 후보들이 과거 무엇을 했는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기사가 많았으면 좋겠다.

김민정 민주당 2030 의원 5명이 재보궐선거 이후 반성문을 내놨다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언급한 대목 때문에 공격을 받고 있다. 한겨레가 그런 공격은 지나치다는 사설을 내놓은 바 있는데, 사설의 태도가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이후 보도에도 그런 관점이 유지되면 좋겠다.

임자운 강성 여당 지지자들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의사 표현을 계속하는데 민주당 지도부가 이를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이번 정부·여당의 패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겨레가 이런 부분을 더 과감하게 지적해줬으면 좋겠다. 단적으로 박 전 시장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했을 때 2차 가해가 많았는데, 이럴 때 한겨레는 2차 가해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을 넘어 청와대와 민주당 지도부가 왜 가만히 있냐를 지적하는 데까지 나아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세원 재보궐선거와는 다른 쟁점이지만 읽다가 놀란 글들이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칼럼이나 기사들이다. 노골적으로 ‘정치를 하지 말라’는 훈수나 경고가 담겨 있는 칼럼은 읽다가 당황할 정도였다.

김경미 비슷한 생각을 했다. ‘투 머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톤이 절제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정 칼럼에서 비판의 톤을 높이면 기사에 부담이 갈 것 같다. 최근 한겨레가 윤 전 총장 장모의 농지법 위반 관련 보도를 하고 있는데, 이미 그러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팩트체크나 보도에 신중함과 철저함이 필요할 것 같다. 재보궐선거 보도 외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자.

홍윤희 한겨레가 에이비시(ABC) 부수인증제와 관련해 보도하고 스스로 유료 부수 부풀리기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한 점은 칭찬하고 싶다. 최근 <한국방송>(KBS)에서 신문들이 뭉치로 해외 꽃시장에서 팔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유료 부수 부풀리기가 사회적 문제로 크게 확대됐는데 한겨레 기사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이봉현 칭찬을 해주셨지만, 한겨레 입장에서는 칭찬을 들을 만한 일인가 생각을 하게 된다. 당사자이기도 하고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과문을 썼다. 더 일찍 잘못된 관행을 끊어냈어야 한다는 고민을 하면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자신의 문제를 반성할 때는 늘 더 빠르고 적극적으로 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민정 유료 부수 부풀리기 관련해서는 타 언론에서 전혀 말하고 있지 않을 때부터 한겨레가 계속 보도하고 공식적으로 사과도 했다. 상대평가이긴 하지만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다. 입장을 안 밝히거나 ‘우리는 안 했다’고 하는 언론도 있다. 이후 제도 개선과 관련해 의제를 지속해서 제기하면 반성하는 마음이 실제로 빛을 보지 않을까 한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녹취 설선정

■ 열린편집위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트렌스젠더 인권 보도 박수

부수 조작 관행 반성 돋보여

9기 열린편집위원들은 2021년 3~4월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 가운데 20개를 ‘좋은 기사’로 추천했다. 이 가운데 위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기사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기획 기사’를 포함한 트랜스젠더 인권 기사였다. 이 기사를 추천한 황세원 위원은 “트랜스젠더 김기홍씨가 지난 2월 세상을 떠났을 때만 해도 언론이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한겨레가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모습이 시대를 대표해 책무를 다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1. 3·31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기획 기사
임재우·김미향 젠더팀 기자, 이재호·전광준·김윤주 사건팀 기자
심사평: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트랜스젠더 인권 이슈를 보도하는 태도에 박수를.”

2. 73년 걸렸다…죽어서도 살아서도 그리던 ‘무죄’
허호준 전국팀 선임기자
심사평: “한겨레에서만 볼 수 있었던 깊이 있는 4·3 기사였다.”

3. 끝모를 성착취물과 ‘삭제 전쟁’…“숨은 가해자들, 처벌 우습게 봐”
김미향 젠더팀 기자
심사평: “엔(n)번방 등 성착취 사건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좋은 기사였다.”

4. 문체부, ABC협회 신문부수 부풀리기 확인
김효실 문화팀 기자
심사평: “주요 신문사가 외면한 가운데 잘못된 관행을 인정하고 반성한 것이 돋보였다. 언론계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한겨레가 적극적으로 나서길 기대한다.”

5. 결혼해야 정상가족? 시집간 딸은 출가외인?…시대 못 따라가는 공직선거법
김양진 전국팀 기자
심사평: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제대로 짚은 신선한 기사였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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