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혹성탈출' 현실로? 사람·원숭이 혼합배아 실험 첫 성공
미국과 중국 과학자들이 사람 줄기세포를 원숭이 배아에 이식해 정상적으로 자라게 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계는 돼지 같은 다른 동물의 몸에서 사람 장기(臟器)를 키워 환자에게 이식하는 이른바 이종(異種) 장기 이식을 실현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연구가 무분별하게 진행되면 사람과 같은 의식을 가진 원숭이가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소크연구소의 후안 카를로스 이즈피수아 벨몬테 박사와 중국 쿤밍과학기술대의 지웨이지 교수 공동 연구진은 15일 국제 학술지 ‘셀’에 “사람 피부세포에서 유래한 줄기세포를 긴꼬리원숭이의 배아 132개에 각각 25개씩 이식해 배양접시에서 20일까지 키우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동물서 이식 장기 얻는 키메라 연구
연구진은 수정한지 6일이 지난 원숭이 배아에 사람 줄기세포를 이식했다. 이후 10일이 지나자 배아 103개에서 여전히 사람 세포가 발달하고 있었지만 19일이 지나자 배아 3개에서만 사람 세포가 생존했다.
그럼에도 배아에서 사람 세포의 비율은 이전 연구보다 매우 높았다. 평균 3~4%의 배아 세포가 사람 세포였다. 한 배아는 7%나 됐다. 사람 세포는 원숭이 세포와 통합돼 특정 장기로 자랄 세포 형태로 분화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벨몬테 박사는 “유전자 활동을 분석해 사람과 원숭이 세포의 통합을 촉진하는 분자 대사경로를 파악했다”며 “이 대사경로를 조절하면 재생의학에 보다 적합한 종의 배아에서 생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이른바 ‘키메라(chimera)’ 장기 연구의 일환이다. 사자의 머리에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한 그리스 신화 속 동물처럼 다른 동물의 배아에 사람 장기 세포를 키워 갈수록 부족해지는 이식용 사람 장기를 얻자는 것이다.
지난 2017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나카우치 히로마쓰 교수는 시궁쥐의 몸에서 생쥐 췌장을 자라게 한 다음, 이를 당뇨병에 걸린 생쥐에게 이식했다. 당뇨병은 치료됐다. 키메라 장기의 질병 치료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그해 벨몬테 박사는 사람 줄기세포를 돼지 배아에 이식했다. 수정란을 대리모 암컷 돼지의 자궁에 이식해 3~4주 배양하자 세포 10만개 중 하나 꼴로 사람 세포가 자랐다. 그에 비하면 이번 연구는 다른 동물 배아에서 사람 세포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늘린 것이다.
미국 예일대의 알레한드로 데 로스 앙헬레스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에 “이번 논문은 줄기세포와 이종 키메라 분야의 기념비적 성과”라고 말했다. 미네소타대의 대니얼 게리 교수는 “한 종의 세포가 다른 종의 배아에서 생존하기 위해 적응하는 작동원리를 알려준다”고 평가했다.
◇영화 혹성탈출의 현실화 우려도
사람과 원숭이의 키메라 배아 실험은 중국에서 진행됐다. 미국에서는 정부 연구비를 받고 키메라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기관에서 윤리심사를 거쳐 실험이 진행됐지만 여전히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과학공학의학원은 지난주 발표한 보고서에서 키메라 연구에 대해 사람 신경세포가 동물의 뇌로 들어가 정신 능력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화 ‘혹성탈출’에서처럼 사람과 같은 의식을 가진 영장류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번 연구에서 신경체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우이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는 만큼 명확한 연구 기준이 제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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