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만 노려' 차로 들이받고 커피 뿌리고..도대체 왜?

윤경재 2021. 4.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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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방법원


■지난해 10월 18일 새벽 1시 10분..승용차, 인도 걷던 20대 여성 갑자기 들이받아

김해의 한 도로에서 승용차 한 대가 인도를 걷던 20대 여성 2명을 갑자기 들이받았습니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여성들에게 다가가 병원에 가자고 말했지만, 여성들은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운전자는 자신의 차에 타지 않는다는 이유로 두 여성을 다시 다짜고짜 폭행했습니다. 주먹과 발로 두 여성의 얼굴과 몸을 마구 때렸고, 두 여성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나란히 전치 5주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정확히 한 시간 뒤인 새벽 2시 10분

운전자 48살 A 씨는 이번엔 김해의 한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승강기를 함께 탄 20대 여성의 목을 감싼 뒤 가지고 있던 흉기를 들이대며 협박했습니다.

■20여 분이 지난 새벽 2시 33분

오피스텔 건물을 나와 다시 승용차를 타고 배회하던 A 씨는 승용차를 타고 있던 또 다른 20대 여성을 발견하곤 집까지 뒤쫓아 갔습니다. 여성이 사는 빌라 현관문 앞까지 따라간 A 씨. 여성이 집으로 들어간 뒤 닫힌 문을 열어 따라들어가려 했지만, 비밀번호가 맞지 않아 다시 빌라에서 나왔습니다.

■ 뒤이어 새벽 3시쯤...여성 5명 상대로 한 무차별 범행 막 내려

A 씨는 김해의 한 도로를 운전하다가 길 가던 60대 여성에게 창문을 내려 길을 묻겠다고 말을 걸었습니다. 여성이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자 A 씨는 차에서 내려 여성을 뒤쫓았습니다. 50분 전 오피스텔 승강기에서 20대 여성을 위협했던 흉기로 이번엔 60대 여성의 손목을 찔렀습니다. 여성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현장에서 도망갔고, 그제야 여성 5명을 상대로 한 2시간 동안의 무차별적 범행이 막을 내렸습니다.

■ '여성혐오범죄' 징역 5년…심신미약 주장 항소

창원지법은 지난 1월 A 씨에게 특수상해와 특수협박, 주거침입미수, 전자장치부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여성에 대한 혐오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고 흉기로 협박한 죄질이 무겁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15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A 씨는 약물 과다복용 등 심신미약에 의한 범행을 주장하며 형을 낮춰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지난달 20일 경남 창원 지역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전거를 타고 여성에게 커피를 뿌리고 도망간 남성을 찾는다는 글이 올라왔다./시청자/


■ 혼자 있는 여성에게 커피 뿌리고 신체 노출

지난 2월 말, 경남 창원의 SNS에 한 남성으로부터 커피 테러를 당했다는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자전거를 탄 남성이 창원 도심을 돌아다니며 혼자 있는 여성들만 골라 커피와 물을 뿌리고 도망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찰이 잡은 피의자는 32살 B 씨. B 씨는 훔친 자전거를 타고 창원 도심을 휘젓고 다니며 20명의 여성에게 침을 뱉거나 커피를 뿌리고 달아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피해자는 대부분 20대, 일면식도 없는 여성들이었습니다. B 씨는 3차례에 걸쳐 여성 앞에서 바지를 벗어 신체를 노출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B 씨가 자전거를 훔치는 CCTV 화면 갈무리/경남경찰청/


경찰 조사 결과 B 씨의 범행 동기 역시 '여성혐오'였습니다. 신진기 창원중부경찰서 수사과장은 B 씨가 과거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처벌받은 뒤 여성들에 대한 적개심을 쌓아왔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두 피의자 모두 '심신미약' 주장

B 씨 역시 경찰 조사에서 우울증 등의 심심 미약에 의한 범행을 주장했습니다. A 씨와 B 씨 모두 여성혐오범죄 이유로 심신미약을 주장한 것. 하지만 경찰은 B 씨가 자전거를 훔쳐 타고 마스크를 바꿔쓰며 경찰 추적을 피했고, 수사를 받는 와중에서도 자신의 범행 내용이 담긴 기사를 검색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에서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은 채 검찰에 구속 송치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엔 경남 김해에서 연유와 달걀 등을 섞은 액체를 여성에게 뿌린 20대 남성이 검거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범죄라며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 여성계 "의식→문화→제도 바꿔야"

잇따르는 여성혐오범죄의 이유를 여성계는 '사회문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여전히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차별문화가 여성을 범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겁니다.

이경옥 창원여성살림공동체 대표는 여성을 단순히 미워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문화에서 여성혐오 범죄가 비롯됐다고 말했습니다.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하지, 차를 끌고 밖에 나오느냐"라고 말하곤 했다던 과거의 남성 중심적 문화의 연장선이 여성혐오범죄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며 누군가의 용기를 북돋아 줬을 수도 있는 말은 이제 스토킹 범죄를 상징하는 문구가 됐습니다. 의식이 바뀌면서 범죄로 보지 않던 행위를 범죄로 인식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바뀐 의식이 확산하자 스토킹처벌법이란 법률도 만들어졌습니다.

이경옥 대표는 여성을 범죄의 대상으로 대하는 사례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범죄라는 인식이 늘어나면서 사건화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스토킹처벌법이 만들어진 것처럼, 이런 의식의 변화가 여성과 또 다른 약자를 보호하는 문화와 제도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윤경재 기자 (econom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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